여섯 번째 이야기
어느 날은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그가 다녔던 맹학교를 함께 둘러보았다. 교정 전체를 누비며 소개해주는 그의 모습이 무척 들떠 보였다. 땡볕을 피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다음, 나는 맹학교가 내가 다니던 학교들과는 무엇이 비슷하며 무엇이 다른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별 건 없죠?”라며 머쓱한 듯이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네, 제가 다니던 학교랑 비슷해요.”라고 답했다.
그는 전시회를 소개하는 안내인처럼 눈여겨 볼만한 곳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는 이료훈련을 위한 해부학 실습실이에요. 무서운 모형들이 모여 있어요.”
“여기 4층 계단에서 복도로 들어가는 이 지점이 사고 다발 지점이에요. 세 갈래 길인데 시각장애인들끼리 다니니까 자주 부딪혀요.”
“생각보다 모든 곳에 유도블록이 있지는 않죠? 외부인들은 맹학교면 모든 곳에 점자가 있고 할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교실들 가운데로 생활지도부가 옮겨왔어요. 복도에서 사람들이 자꾸 뛰니까 못 뛰게 감시하려고 왔다나.”
“도서관이 너무 좋아졌어요. 제가 다닐 땐 자동문이 아니라 그냥 미는 문이었는데.”
교정 내의 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있는 별관까지 나를 데려간 그는, 여기까지 투어를 온 것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사람의 여섯 해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을 이렇게나 속속들이 함께 거닐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이었다. 복도에서는 A 씨가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음악 선생님도 마주쳤다. 선생님은 A 씨에게 잘 지내고 있냐는 따뜻한 안부 인사를 건네면서 나에게 눈길을 보내시고는 “친구?”하고 물어보셨다.
인터뷰를 위해 알게 된 친구라... 서로 아직까지도 존댓말을 하는 친구라... 학교에 갑작스레 찾아온 외부인인 나의 정체를 무어라고 밝혀야 이상해 보이지 않을지 고민하던 사이에 그가 “네.”하고 끄덕여 보였다.
그날은 처음으로 아무 질문도 준비해 가지 않고 그를 만나러 간 날이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조심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베베 꼬인 태도를 내던져 버리기로 결심한 날이기도 했다.
빵집에 도착해 아무 주제 없이 시작된 그 날의 대화는 유달리 재미있었다. 그는 사춘기 소년처럼 킥킥거리면서 맹학교는 성대모사의 성지라고 말했다. 시각으로 사물을 식별할 수 없어 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 중에는 반드시 소리의 박사와 마술사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가 전·현직 대통령과 그 외 유명한 정치인들의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유명인이 실제로 앞에 온 것 같은 생생함이었다. 나의 호응에 힘입어 그의 유쾌한 장기자랑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물론 모든 성대모사의 종착지는 필연적으로 선생님, 교수님 성대모사이다. 그의 학창시절 또한 선생님 성대모사와 관련된 일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모방 욕구를 처음으로 자극한 것은 중학생 때 처음 만난 K 선생님이었다. “자, 너네들 다 왔지?”에서 ‘ㅈ’ 발음은 전부 영어 ‘z’처럼 하면서 그는 몸소 그 선생님의 말투를 시연해 보였다. 성대모사의 귀재들이 잔뜩 있는 맹학교에서 성대모사 대상이 되는 것은 모든 교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그 선생님은 특히나 사랑받는 소재였다. 그가 입학하기 3년 전에 맹학교에 처음 온 그 선생님은 자신을 따라 하는 학생은 모조리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므로 선생님 면전에서 직접 성대모사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십 대 아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학생들은 암암리에 K 선생님을 늘 따라 했다. A 씨가 중학생이던 시절 선배 한 명이 축제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했다가 반성문을 쓰는 엄벌에 처해진 것은 그야말로 학교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A 씨 또한 선배들의 문화를 계승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했다. 한 번은 다른 선생님 시간에 K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했다가, 누군가의 고자질로 K 선생님에게 한 대 맞고 싶냐는 장난스러운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반성문을 쓰게 해오라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들어와서는 “너 나 따라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 내가 싫어하는 거면 하면 안 되는 거야.”하고 한 번더 핀잔을 주는 것으로 끝냈다. (물론 A 씨는 나에게 이 말을 재현할 때도 모든 ‘ㅈ’ 발음을 ‘z’로 만드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한참 수업을 하던 중 텔레비전이 켜지지 않자 “왜 TV가 안 켜져...”라고 하더니, “너희 방금 내가 한 말 또 따라 할 거지!”라고 말씀하셨다. A 씨는 선생님이 마음을 읽은 기분이 들어 소름이 쫙 돋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전학 온 학생이 생기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학생에게 맹학교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와 억양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학생이 K 선생님 수업시간에 사달을 냈다. 선생님 수업시간에 선생님 성대모사를 하는,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 A 씨는 선생님이 역정을 낼까 잔뜩 겁에 질렸다. 그런데 K 선생님은 수년간의 수모에 이제는 반쯤 포기를 한 것인지, ‘z’ 발음이 잔뜩 들어간 ‘치.’ 한 음절로 응수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K 선생님의 성대모사도 비교적 자유로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되었다. A 씨는 거기에 자신의 공도 어느 정도 있다며 깔깔 웃었다. 성대모사에는 꽤 엄격했지만, 하굣길에 하수구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걱정 어린 우스갯소리를 하시던 K 선생님을 그는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후로 선생님 성대모사를 해 동급생들을 속이는 장난은 최고급 기술이다. A 씨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이 기술을 선보인 바 있었다. 야자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그는 “자율학습이 종료되었습니다.”라는 고정 멘트를 감독 선생님의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짐을 싸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때 진짜 감독 선생님이 등장했다.
“끝났다고 한 적 없는데 왜 다 움직여?”
그러고는 방금 들린 음성을 복사-붙여넣기라도 한 듯이 선언했다.
“자율학습이 종료되었습니다.”
A 씨와 시각장애인 친구들 사이에는 소리에 대한 민감함을 공통분모로 하는 정교한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익살스러운 시각장애인들에게 정치인들의 토론회나 청문회는 유행어를 폭발적으로 만들어내는 대형행사이다. 또 서로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전화를 걸면,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열차 소리만 듣고도 몇 호선인지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소리에 관심이 구어에 담긴 규칙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와 만나면 A 씨는 각종 음운 변동이나 문법 규칙에 대한 가설을 찾고 토론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는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섬세한 소리의 세계를 그의 손을 잡고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평소의 나는 보이는 것으로 점철된 최신 유행과 화제를 따라가느라 급급하다. 그런데 그의 희극적인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의 상상력을 한 번 더 자극했다. 모든 사람이 함께 교감하고 깔깔 웃을 수 있다면, 서로 사이의 비슷함을 발견하고 독특함을 예찬하는 것이 전부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A 씨는 자신이 소통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 청각장애인이라고 이야기했다. 주로 청각으로 소통을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수화 등 시각으로 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맹학교와 농학교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도 거의 교류가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같이 하는 행사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옆에만 있지 하나도 교류가 없어요.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같은 장애인일지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지금 상황에서는 서로 소통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웃고 함께 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길을 공유하는 일만큼이나 마음을 공유하는 일에도 아직 우리는 무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