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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윤재 Jul 19. 2024

홀로 서기, 함께 서기

다섯 번째 이야기

  A 씨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대학원서를 쓸 날이 다가왔다. 맹학교에서는 안마사가 되기 위한 직업교육인 이료교육을 받기 때문에 졸업 후 바로 일을 하는 학생도 있지만, 최근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도 많다. A 씨의 친한 1년 선배는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행정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A 씨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을 도울 방법에 대해 더 많이 배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 선배와 같은 학교의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치열한 입시를 치르는 고3 시절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그는 동갑내기 비장애인 학생들에 비해 신경 써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우선 대입 전형에 대해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각 대학의 입시요강을 확인하려고 해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점자나 음성표시가 없다. 컴퓨터에 탑재되어 있는 텍스트 음성 변환 프로그램을 사용해도 내용이 누락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중요한 정보들이 이미지로만 표시되어 있어 프로그램이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각 대학에 일일이 전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에 가족 없이 혼자 남게 된 그는 또다시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고민에 빠졌다. 주거와 자립의 문제가 끈질기게 그의 10대와 20대를 따라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기숙사 입주를 생각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부모님이 함께 입주를 도와주면 좋은데 기숙사에 보호자가 출입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교내 시각장애인 도우미 시스템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맹학교에 다닐 때도 기숙사에 살기를 꺼렸던 그가 이런 환경에서 기숙사를 선택할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입학 때처럼 한 번 더 거대한 도전을 결심하는데, 대학가에서 자취를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자취생활 앞에서 두려움이 앞섰다. 그동안 주변에서 장애의 정도가 그만큼 심한 시각장애인이 자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저시력 정도로 주변 사물은 약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취를 하기도 했지만, 그처럼 전맹인 사람이 선뜻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를 과천에서 서울까지 통학해본 사람이고,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두려움이란 금방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교에서 20분 거리에 있으면서, 지자체의 시각장애인 활동보조사 지원 범위에도 해당하는 교집합의 위치를 찾아 자취방을 마련했다. 금요일에 공강이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모님이 계신 세종으로 내려갔던 것을 제외하면, 일 년간 평일 대부분을 이 자취방에서 생활했다. 물론 비장애인과 똑같은 자취생활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혼자 살면서 스스로 힘으로 해낸 일도 많지만 눈이 안 보여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전맹인 사람이 불을 사용하는 요리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밥솥에 밥만 지어놓고, 활동보조사가 사 온 반찬과 함께 먹어야 했다.

  그의 좌충우돌 자취생활은 가을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의 누나가 불가피하게 그의 자취방으로 들어오면서 세 살 터울인 누나와 처음으로 단둘이 살게 된 것이다. 이는 보기보다 복잡한 사건이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사춘기 이후에는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왔던 그였지만, 그래도 누나의 입장에서는 시각장애가 있는 자신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는 마음의 부채가 있었다. 게다가 단둘이 살게 된 이후로는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누나가 맡아서 하면서 또 신세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될 수 있는 대로 청소, 설거지, 그리고 밥솥에 밥짓기 등을 도와보았지만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누나와 함께 들어온 누나의 강아지였다. 예전에 나는 그에게 안내견을 써볼 생각을 한 적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은 개를 싫어해서 안내견을 이용해 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 중에도 당연히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너무 당연한 이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그에게 누나의 강아지는 갑자기 마주친 골칫덩어리 같았다. 이런 여러 문제로 1년 계약이 끝나갈 무렵에는 부모님이 계신 세종에서부터 왕복 6시간을 통학한 적도 있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사춘기 때도 부려본 적 없던 응석을 마지막 딱 한 번 부리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누나에게 빚을 지는 느낌도, 강아지와의 아찔한 동거도 부모님과 함께 살면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는 큰 마음을 먹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서 누나랑 나랑 같이 살면 안 돼요?” 

  의외로 어머니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내내 통학을 했던 아들을 생각해, 이제는 어머니가 서울에서 세종까지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차를 끌고 통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결심으로 그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서울의 새로운 집에서 어머니와 누나와 셋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아침밥과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행복해했다.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온 이후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도 점점 익숙해진다고 했다.

  “이렇게 일이 년을 엄마랑 같이 살고 나면, 다시 혼자 나가서 살 힘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누나랑 둘이 사이좋게 지낼 힘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강아지까지 같이요.”

  세상 풍파 다 맞은 것 같아 보이다가도, 이럴 때 그는 티 없이 맑은 스물한 살 대학생 같았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의 새로운 집에 잠깐 들르게 되었다. 그의 집 현관에 들어선 순간 강아지가 나에게 후다닥 달려들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뽀뽀를 하려고 자꾸만 폴짝폴짝 뛰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그맣고 하얀 강아지에 한눈에 반해 나는 사진을 잔뜩 찍었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강아지가 되게 순해요. 아무나 막 좋아해요.”

  나는 엉거주춤 강아지를 들어 안고는 나를 향해 헥헥거리는 그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작년에는 골칫거리, 올해는 익숙한 친구인 아이가 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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