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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윤재 Jul 19. 2024

미세공격

여덟 번째 이야기

  사회과학 전공인 A 씨는 수업 시간에 미세공격(microagression)에 대해서 발표할 일이 있었다. 미세공격은 누군가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이 일상 속의 사소하고 가벼운 말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미세공격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공격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성립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자가 자신이 하는 말의 함의를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한국말 잘하시네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도 미세공격이 될 수 있다. 악의 없이 칭찬의 의미로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결국 한국에 사는 ‘한민족’이 아니면 한국어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서 장애인을 상대로 한 미세공격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 보았지만 적절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직접 겪은 내용으로 발표를 하기로 결심했다. 미세공격은 그 특성상 피해자도 그것이 모욕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짚어주기 전까지는 차별적 표현을 들었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A 씨는 자신의 일화를 같은 강의의 수강생들에게 소개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미세공격인지 아닌지 의견을 듣고자 했다.   

  

사례 1

  시각장애인인 A 씨는 테이블에 있는 키오스크로만 주문 가능한 설렁탕 집에 들어갔다. 그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수 없어서, “말로 주문이 가능할까요?”하고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주인은 주문을 받아주었다. A 씨는 주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설렁탕이 나오고 나서는 기분이 묘해졌다. 식탁 위에 놓인 반찬과 양념의 위치가 보이지 않아 소금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주인이 그에게 다가와 소금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얼마나 배고팠으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A 씨는 주인이 자신에게 ‘맹인이 보호자도 없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다니! 쫄쫄 굶은 게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키오스크 주문을 할 수 없다면 나가라고 하는 식당들도 있으니 이 설렁탕 집은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기분이 상한 채로 설렁탕을 먹었다. 


사례 2

  시각장애인인 A 씨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타려는 버스가 온 것 같은데 버스 번호가 보이지 않아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번호를 물어보았다. 행인은 친절하게 답해주고 A 씨와 함께 버스에 탔다. 함께 버스에 탄 후, 행인은 A 씨에게 자꾸만 질문을 해왔다. 시각장애인은 버스를 어떻게 타는지부터 시작해서, 밥은 어떻게 먹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까지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었다. 여러 개의 질문에 전부 답을 듣고 나더니 행인은 A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안 보여서 힘들 텐데 세상을 정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구나!” A 씨는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 발표를 듣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례 1과 사례 2의 클라이맥스였던 “얼마나 배고팠으면?”과 "세상을 정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구나!”는 미세공격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은 시각장애인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A 씨를 혼란스럽게 한 한 학생의 첨언이 있었다. 그 학생은 사례 2에서 마지막 감탄문뿐 아니라, 그 앞에 행인이 시각장애인의 일상에 대해 던진 여러 질문들 또한 미세공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버스를 타지도, 밥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말이다.

  A 씨는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론을 내리기에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행인이 정말 몰라서, 궁금해서 물어보았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질문자가 시각장애인은 그런 것들을 못하리라고 단정지어버렸다면 질문의 직접적인 동기와 상관없이 미세공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선의의 마음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의문문과 감탄문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의문문(화장실에 어떻게 가요?)은 정말 궁금했을 것이라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감탄문(!)이나, 설의법을 이용해 의문문(?)으로 변장한 감탄문(화장실에 어떻게 가요?!)은 그런 변명의 여지도 없다.

  수업시간에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학교에서 가까워 가끔 가던 분식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그곳 사장님은 테이블에 반찬을 놓아주면서 “반찬 주면 집어먹을 수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A 씨는 혼자 반찬 하나 집어먹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무력해졌다. 같은 의도더라도 “반찬 드실 때 도와줄 건 없니?”라든가, “반찬은 어떻게 놓는 게 편하니?”와 같이 물어봐 주었으면 했다.

  가끔은 의도가 좋아도 표현이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어쩌면 의도와 표현은 애초에 불가분의 관계라, 어떤 표현을 선택하는지까지가 그 사람의 의도를 완전하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른다. 사려 깊은 사람은 사려 깊은 표현을 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혹시 내가 미세공격을 한 적은 없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한 나에게 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다고 말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미세공격이 아니라 ‘대공격’을 받고도 식당에 버티고 앉아 끝까지 밥을 먹은 한 지체장애인의 이야기를 했다. 신문에도 실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장애인이었다. 강남에서 출입문에 턱이 없어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식당을 어렵게 어렵게 찾아 들어간 그에게, 식당 주인은 자리가 많은 것이 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다고 나가라고 했다. 그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며 최대한 오래 식당에 머물렀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내가 식당에 한 번 입장을 못한 건 사소한 일이지만, 나 말고 다른 장애인들도 식당에 와서 밥을 못 먹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문제제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A 씨가 늘 부당한 상황에서 가만있지 않아 왔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버티면, 다음번에는, 그리고 어쩌면 다른 장애인은 고집을 피우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또, 어쩌면 말재주가 좋아 반박할 수 있으면 참지 않는 그의 성격이 한몫 했을 지도 모른다. 

  하루는 흰지팡이를 짚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A 씨가 이야기하는 그 길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은 나도 가본 길이라 알고 있었다. 그 넓은 길의 여러 곳 중에 하필이면 유도블록 위에서 두 중년 여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장애인에게 유도블록은 배경 같은 것이니까, 용도는 알지만 쓰이는 것은 본 적이 없는 것이니까. 나는 A 씨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A 씨는 자신의 통행 방향에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흰지팡이가 한 여자의 정강이를 툭 쳤다. 

  “죄송합니다.” 

  지팡이든, 몸이든 누구와 부딪히면 자동적으로 그가 하는 말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든 상관없었다. 상황 파악은 일단 사과를 하고 나서 시작된다.

  “지팡이를 앞으로 내놓고 다니면 사람이 다치잖아!”

   여자가 A 씨에게 짜증을 냈다.

  “죄송해요. 그렇지만 지팡이를 앞으로 안 내놓고 다니면 제가 다쳐요.”

  A 씨도 참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혹시 자신이 ‘나쁜 사람 만들기 화법’을 쓰는 것 같냐고 나에게 물었다. 여자에게 자신이 한 말을 미안하게 만든다는 뜻이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미안해야 마땅한 상황이었건만.

  여자는 우물쭈물거리더니 이상한 궤변을 펼쳤다.

  “그렇게 지팡이를 안 내놓고 다녀도 우리가 피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A 씨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바닥을 치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였기에, ‘우리’가 주체가 된 이 논변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지팡이를 안 내놓고 다니면 피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런 헛소리에 가장 효과적인 반박은 자신도 어거지로 반박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아까 못 피하시던데요.”

  그의 이 답변을 듣고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논리적 구조라는 것이 박살 난 듯한 이 문장의 향연 속에서 최후의 통쾌한 일격은 A 씨가 가했다는 점에서 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굳이 생각해 보자면 "당신이 못 피한 것이다"라는 응수는 적절하다. 누군가 흰지팡이를 이용하며 걸어오면 바닥에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넓은 길에서 유도블록 위에 서 있다가 피하지 못한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이 맞다.

  실제 상황에서도 그의 재치가 통한 모양이다. 두 여자는 아무 말도 못 하더니 갑자기 A 씨가 버스 타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는 여러 번 자신이 순간 대처 능력이 좋다고 말했다. 분명 그의 천성 때문도 있겠지만, 그 능력의 일부는 긴가민가한 상황에서도 매번 순간 대처를 해야 했던 그의 기나긴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배시은, 아직도 이런 일이···“휠체어 못 들어와” 출입 거부한 음식점, 경항신문, 2024.02.0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204151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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