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하루는 그와 카페에서 나가는 길이었는데, 그의 지팡이가 카페 문틀에 ‘쾅’ 하고 부딪혔다.
“아이고.”
놀람 반, 걱정 반에 나도 모르게 곡소리가 나왔다. 아마 그의 흰지팡이가 어딘가에 부딪히고, 이어서 내가 놀라는 소리를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카페를 나와 몇 걸음 정도 함께 걷다가 그가 말을 꺼냈다.
“아까, 저 지팡이 부딪혔잖아요. 놀라셨죠. 그런데 부딪혀도 괜찮아요. 사실 이렇게 지팡이가 쾅 하고 어디에 닿으면 깜짝 깜짝들 놀라세요. 그런데 사실 부딪혀야 해요. 지팡이가 부딪혀야 제가 안 부딪힐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은 제 몸이 어디에 부딪혀도 괜찮아요. 제가 팔꿈치를 잡고 따라갈 때 몸이 닿거나 부딪히면 제가 불편할까봐 일부러 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길에서 철퍼덕 넘어져도 괜찮아요. 정말 많이 넘어져 봤거든요. 다시 일어나서 걸으면 돼요.”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해방된 것 같은, 이상하게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지팡이가 벽에 가볍게 한 번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데, 그는 나에게 살면서 수없이 넘어져 보아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안심시키는 그가 그 누구보다도 당당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 곡소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이 덜 넘어지고 덜 부딪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나는 그와 몇 차례 만나면서 이를 마음속으로 늘 기억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은 시각장애인이 걷기 좋은 길이 아니니까. 오히려 위험한 길이니까. 변화가 필요한 도시이니까.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선명한 충격이, 나의 제한된 상상력을 자각하면서 느낀 부끄러움이 그때까지 나의 의지를 견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A 씨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려면 그런 익숙함이 선행되어야 함을 그때 조금 예감한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놀라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에 그를 인터뷰하기로 한 것은 ‘앎’의 정도를 ‘만남’의 척도로 측정할 수 있으리라고, 그와 만날수록 이전에는 몰랐던 누군가의 고충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터뷰는 점점 대화가 되었고, 내가 '이해'라고 명명한 것은 실은 특별한 관계를 쌓는 벽돌 같은 것이었다. 그는 부딪히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영리하고 용감한 인간이었다. 그만의 자신감 넘치는 쾌활한 성격은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인 것은 분명 그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그의 삶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한 사람을 담아내기에 '시각장애인 인터뷰이 A 씨'라는 호칭은 어쩌면 너무나도 작은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다시 떠올렸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카페에 도착한 나는 계속 우왕좌왕거렸다. 잔뜩 긴장한 모습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목소리만큼은 차분하게 내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키오스크의 메뉴를 차근차근 읽어주고 음료가 나오자 빨대와 함께 그의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컵에 넘치도록 크림 거품이 올라온 핫초코가 자꾸만 그의 코에 묻는 것을 보고 티슈를 갖다 주었다. 문장만 보면 일상적이어야 할 이 모든 과정이 전부 너무나도 어색했다.
두 번째 만남 때는 분식점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계란지단이 올라간 볶음밥을 시킨 그는 접시가 너무 넓어서 자꾸 음식을 식탁에 떨어뜨린다며 웃었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이제 조금은 그와 함께 밥을 먹는 방법을 알 것 같았다. 처음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배우듯, 식사예절을 배우듯, 나는 그와 보내는 시간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면 기다렸다. 식탁에 있는 휴지, 수저, 반찬은 말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실 그는 혼자서도 그 분식점에 와서 밥을 먹은 적이 많았다. 내가 도와주면 조금 더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도움이 식사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고, 나중에는 그런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낯가림이 많은 나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사귀는 모든 과정이 그렇다. 처음에는 탐색전이 필요하다.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래서 어떤 대화 주제가 좋을지도 잘 모른다. 또 어떤 것을 도와주면 좋아할지, 어떤 것을 도와주면 주제넘는다고 생각할지도 조심스럽게 확인해야 한다. 그 어색함의 시간이 지나면 점점 관계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러고 나면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던 행위도 점차 숨 쉬듯 당연한 것이 되어간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매번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노래에 따라 멜로디와 박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음악의 문법은 배우면 배울수록 익숙해지는 것이다. 남들보다 노래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충분히 연습하면 애국가나 교가 정도는 거뜬히 부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는 가수가 아니니 엄청난 레퍼토리를 가질 필요는 없다. 집에서 흥얼거릴 콧노래를 체화하듯, 누군가와는 그렇게 가까워지는 것 같다.
A 씨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엄청난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와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이야기를 하는 모든 과정이 실은 여느 만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분명 신기해하고 분노했던 순간들이 많고, 글에 주로 담긴 것도 그런 순간들이지만, 그것이 우리 사이의 전부는 아니었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다 뿐이지, 실은 모든 관계 맺기의 과정처럼 독특하고 고유했으니까.
몇 번의 만남만에 문득 이제는 많은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좁은 길을 걸어가다 머뭇거릴 때는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준다. 버스를 함께 탈 때는 장애인과 동반자 1인까지 받을 수 있는 교통비 혜택을 누리기 위해 교통카드를 꺼내지 않고 기다린다. 사소한 것들도 점점 의식적인 행동보다는 몸에 익은 습관처럼 느껴진다. 그의 지팡이가 쿵 부딪히는 것이 잔뜩 걱정이 되었던 날을 지나, 그와 다시 만났을 때는 충돌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혹시 그의 지팡이가 탁탁 칠 필요가 없고 구를 수 있는 고급 지팡이로 바뀐 탓도 있으려나.
몇 번의 부딪힘은 더 잘 맞물리기 위한 과정이다.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긴장감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는 수많은 찰나들을 느낀다. 나는 생각지 못한 사람과 그런 찰나들이 조금 더 많이 생기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A 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작은 파동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고 하며, 나의 욕심을 포장해주고 응원해주었다.
A 씨가 덜 부딪히고 덜 넘어질 수 있는 도시를 꿈꾼다. 모든 길에 유도블록이 있고 처방전과 약통에 점자 스티커가 붙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전에, A 씨가 부딪히거나 넘어져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서로 살갗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서로 맞물리고 스며드는 꾸준한 역동 속에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