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학원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학원'이라는 의미와 좀 달라서 실제로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시스템일 거다. 그래서 '학원 가면 뭐 배워?'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좀 뚝딱거리게 되는데.. 수업 내용도 좀 상상 밖의 일이라 쉽게 설명하기 어렵고 근본적으로 배움보다는 기회를 사러 가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결혼 정보 회사 같달까. 나는 중개비를 내고 학원은 내게 데뷔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연계, 제공해주면 실전에서 성사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나의 몫인. 회비를 내는 동안은 실전 스킬 향상을 위한 팁을 꾸준히 쌓아 갈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에서 연기자를 뽑는데 공개 오디션을 하지 않고, 연계가 되어 있는 몇몇 연기 학원들에만 오디션 소스를 주면, 학원 수강생들만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움은 덤이고, 학원비는 일종의 오디션 참가비 같은 거다. 그래서 '독학하면 안 돼?' 같은 순진한 질문에 종종 말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작사 학원은 수강료가 꽤 비싸다. 문제는 이걸 할부로 결제할 수가 없다는 건데, 이유는 다음 달에도, 다다음 달에도 같은 금액을 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훨씬 비싼 물건을 사도 효용이 있다면 '좋은 소비였다!' 하고 말겠지만, 작사 학원에 쓰는 돈은 당장의 쓸모를 계속 의심하게 되는 소비라 괴롭다. 투자의 효과가 있는 걸까, 투자의 가치가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는데 이런 소비를 매달 반복해야 하는 일은 가난한 노동자에겐 심장이 벌렁거리는 일이다.
남의 집 자식들 다 다니는데 우리 아이 기 죽일 수 없어 매달 눈물의 교육비를 납부하는 엄마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다 큰 나 녀석의 꿈을 뒷바라지 하느라 등골이 휘는 텅장 주인이 되어 버렸다. 작사 학원비를 내기 시작하면서 매달 고정지출 항목과 비용을 정리해, 줄일 수 있는 항목을 궁리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은 수강료를 결제하고 나서 마음이 심란해 또 여기저기서 작사 학원 관련 후기를 찾아봤다. 찾아볼 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은 적이 없는데, 이 불안과 의심에 공감받고 싶은 것인지 자꾸만 찾아보게 된다. 수많은 글을 읽었고, 익숙한 절망을 반복했다. 아마 한 번쯤 작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서치해 본 사람들은 알 테지만 이 업계에는 성공 후기란 걸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학원에 돈을 퍼붓다 정신 차리고 중단한 썰, 짧은 경험으로 만족한다며 비싼 취미생활 했다는 후기, 오랜 도전 끝에 결국 작사가란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 같은 글들만 넘쳐난다.
실제로 주변에도 작사를 배우다 그만둔 지인들이 여럿 있는데, 시작한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만둔 이유는 같다. 가능성이 없어서. 재능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너무 바늘구멍인 거다. 그런데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려고 애쓰는 동안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거다. 꾸준히 문을 두드리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줄줄 새는 돈을 모른 척할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 돈을 꼴아박고 나면 매몰비용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얼마를 더 투자해야 하지?'와 '앞으로 그만큼을 더 투자했을 때 된다는 보장이 있나?' 라는 물음표들이 지망생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작사가 지망생들은 늘 초조하다. 이번엔 될까, 다음엔 될까. 언제까지 도전할 수 있을까. 지금 그만두면 여태까지 한 게 너무 아깝지 않나. 조금만 더 해 볼까. 나한테 가능성이 있긴 있나. 운이 좋아 데뷔를 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 일을 지속할 재능이 있나. 이런 생각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잠을 줄이고 약속을 없애가며 눈물과 분노의 습작을 한다.
모든 지망생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작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본업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시생들과는 다르다. 작사가가 되기 위해, 근로 활동을 하지 않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들 각자의 현생을 살아내며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치열하게 노랫말을 짜낸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매일매일 가사를 쓰는 전업 작사가들보다 좋은 시안을 낼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거다. 밀려드는 의뢰를 지망생들에게 양보하면야 좋겠지만, 의뢰인 입장에서 프로 시장을 두고 아마추어 시장을 선택할 이유도 없거니와, 전업도 전업끼리 영원히 경쟁하는 무한 '선택받기' 시스템에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등단한 적 없는 신인'에게만 기회를 주는 '신춘문예'란 어쩌면 참으로 아름답고 공정한 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세월을 지나다 보면 구멍을 막아주는 두꺼비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내 두꺼비가 되어줄 데뷔곡을 잉태하기 위해 오늘 밤도 힘을 내보자. 다음 수강료 납부일은 눈 깜짝할 새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