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리랜서다. 9년째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은, 최상위 포식자들을 제외하면 우리가 일을 선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대충대충 연차를 쌓으며 물경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괴롭고 피곤한 일이다. 남들보다 눈에 뛰려면 워라밸이며 온앤오프 같은 건 안중에도 없게 된다. 삶이 곧 나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내가, 또 프리랜서 지망생이라니. 프리랜서라는 단어에 지망생이라는 말이 붙으니 정말이지 농담 같다. '탈출기' 같은 단어가 붙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희박한 희망의 끈 하나를 붙들고 매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특히나 악명 높은 작사가 지망생이라니.
유명 작사가로 자리잡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공무원이었던' 같은 말이 붙는다. 그들은 퇴근 후에 밤마다 가사를 썼다. 이게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가능해요!' 로 들리는가? 작사를 배워 본 사람은 안다. 이 말들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아도 누구든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생활을 커버해줄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어요' 라는 뜻이다.
가능성은 희박하고, 약속의 순간은 존재하지 않고, 시간과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 일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보통은 데뷔를 목표로 하지만 데뷔 후가 더 문제고, 데뷔한다고 수입이 보장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데뷔만 보고 달려가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거절을 감당해야 한다. 200개 정도의 시안을 내고 마침내 데뷔를 했다는 사람을 보면 200번의 거절을 견뎌낸 그 시간들에 숙연해진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건, 탈락을 반복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지원하고 제출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탈락 같은 건 안 하고 살 수 있다. 탈락은 늘 하던 사람만 한다. 탈락할 만해서 계속 탈락하는 게 아니고, 시도하는 사람이 또 다시 시도하기 때문이다. 오디션만 100번 떨어졌다는 사람은 오디션을 적어도 100번 본 거니까. 오디션을 한 번도 안 보면 한 번도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거절과 실패를 굳이 나서서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걸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이제는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를 눈물의 기로에 세우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의 작은 목표다.
가끔은 속상하다고 징징거리겠지만, 자랑스럽게 탈락하며 사는 순간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이 탈락 노트가 후에 데뷔 노트, 전업 작사가 적응기, 프로의 삶 같은 이야기로 이어지는 날을 기약하며. '지망생'이라는 말에는 '하고자 하는' 이라는 의미가 꾹꾹 담겨 있다. 얼마나 귀여운 단어냐. 세상의 모든 지망생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