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업은 방송작가다. 프로그램마다 매번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이 직업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크레딧에 이름 박제' 라는 것이다.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으로 등록돼 있는데, 신청 서류를 제출할 때 온갖 계약서 사본과 함께 크레딧 화면을 캡쳐해 보냈다. 구성작가협회라는 곳이 있는데, 이 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 기준은 크레딧에 내 이름이 얼마나 올라갔느냐이다. 크레딧은 내 커리어이자 포트폴리오고, 크레딧이 곧 내가 일했다는 증거다.
막내작가 시절엔 방송이 끝날 때마다 기다렸다 보는 내 이름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남자친구가 화면에 뜬 이름을 찍어 보내주는 다른 작가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정말 착했고 우린 별다른 갈등도 다툼도 없는 사이였는데, 20대 후반 뒤늦게 시작한 내 첫 직업의 첫 프로그램의 첫 방송 날, 내 이름을 봐주지 않은 것이 미치게 서운해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서운함이 잊히지 않는다. 그놈의 크레딧이 뭐길래.
지금은 연차가 많이 쌓여 큰 감흥이 없을 법도 하지만, 여전히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이 나는 참 좋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정갈하게 적혀 있는 페이지를 가만히 본다. 어차피 내가 기억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할 이름들이지만 꼭 책을 덮기 전 의식처럼 그 이름들에 시선을 둔다. 영화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유난히 그런 면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무려 30여 년을 내 시선을 훔쳐간 짧고 강렬한 이름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음악방송 화면에 나오는 '작사', '작곡' 뒤에 붙는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였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전주와 함께 등장하던 그 이름들은, 엔딩크레딧처럼 모든 게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일부러 보지 않으면 볼 일 없는 이름들보다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름들이었으니까.
그 당시엔 하교할 때 레코드샵에 들러 새로 나온 카세트테이프를 사는 게 낙이었는데, 집에 오면 접혀 있는 가사집을 촤라락 펴서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작사가/작곡가와 곡 타이틀을 먼저 확인하고 마지막 땡스투까지 읽은 뒤, 가사집을 보며 한 바퀴 들어보는 것이 순서였다. 좋아하는 그룹 오빠들의 앨범에, 오빠들 이름이 작사/작곡에 들어가 있으면 그 이름을 닳도록 봤다.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오빠들이 된 것 같고 그랬다. "너네 오빠들 자작곡 있어?" 같은 말로 유치한 기싸움을 하기도 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내가 했어. 내가 했다고!!! 이건. 내가. 했어!!' 라고 티 내고 싶은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이름을 남기는 일이 좋다. 세컨잡을 고민할 때 '본업과 병행할 수 있을 것', '장소의 제약이 없을 것', '불로소득을 창출할 것' 이라는 조건들 이전에 '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이라는 첫 번째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난 필명을 만들지 않았다. 요즘은 한 사람이 한 곡을 책임진다기보단 여러 명의 작업물을 조금씩 취합하는 추세라 수많은 쉼표로 작사가나 작곡가의 이름들이 나열되긴 하지만, 원 오브 뎀이면 좀 어떤가. 간지가 조금 떨어질 뿐 기회는 더 많아진 걸 수도 있으니까.
이제 프로그램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이름 말고,
반질반질한 앨범 자켓에 박제되고 멜론에 박제되는 이름을 갖고 싶다.
Dreams come true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