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침이 일찍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산기슭에 자리를 잡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새들의 지저귐으로부터 아침이 열린다. 날이 밝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른 아침, 맑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서면 온몸이 상쾌하다.
산 입구에 들어서면 우람한 밤나무가 가장 먼저 반긴다. 숨이 멎을 듯 밤나무 꽃향기가 자욱하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맑은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새들이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맑고 고운 소리로 합창을 한다. 새들뿐만 아니다. 나무도 숲에 오는 첫 손님에게 일제히 경례라도 하는 것만 같다.
다소 비탈진 곳에 나무계단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지난봄 나무계단을 만들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착하게 생긴 젊은 외국인 노동자 세 명이 일을 하다 말고 급히 길을 비켜주었다. 나무계단을 천천히 오르면서 그들의 수고가 고맙게 느껴졌다. 힘든 일을 해야 하는 노동현장에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을 지나가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어설프게 나무 계단을 만들던 그 젊은 청년들은 지금쯤 또 어딘가에서 산엘 오르는 이들이 편안히 오를 수 있도록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스무 개 남짓 되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널따란 길이 구불구불 펼쳐진다. 나는 그 길을 사색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카시나무가 양옆으로 즐비하게 서서 박수를 치는 것만 같다. 잎사귀를 따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아카시꽃향기에 취해 매일 사색의 길을 찾았다.
아카시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다웠다. 꽃은 밤새 떨어져 하얗게 수를 놓고 떠나갔다. 그 길을 남편과 함께 걷던 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혼자일 때 더 감동을 받는지 알 수가 없다. 홀로 걸을 때면 자연이 건네는 소리가 더 크고 맑게 들려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언어를 듣기 위해 눈을 감는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면 내 몸은 이내 초록으로 물이 들고,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만 같다.
지난 늦봄,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오랫동안 머무른 일이 있었다. 처음 보는 나무였다. 거기다 처음 맡아본 향긋한 꽃향기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잎사귀는 크고 탐스러웠고, 꽃도 연보랏빛으로 귀티가 흘렀다. 꽃이 다 질 무렵에서야 오동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산책길을 나설 때면 자그마한 돗자리부터 챙긴다. 오동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노라면, 오동나무 꽃향기가 온몸을 향긋하게 물들였다.
올해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유난히 자주 비가 내렸다. 아쉽게도 오동나무꽃은 한꺼번에 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에서 아직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가 아니었으면 며칠이라도 더 나무에 매달려 향기를 뿜어냈을 것을. 이제 다시 내년 봄이 되어야만 꽃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오동나무아래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주 내린 비를 원망했다. 그러다 군에 간 아들이 비가 자주 와서 훈련이 없어 편하게 보내고 있다는 편지가 생각나 활짝 웃었다.
오동나무꽃은 내년에도 피지 않겠는가. 그 꽃향기를 느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안 되는 사람 속에 내가 포함된 것만으로 행복했다. 오동나무로 만든다는 가야금과 거문고의 연주라도 듣게 되는 날이면, 나는 연보랏빛 꽃과 함께 향기를 떠올리리라.
이른 아침 숲이 울창한 곳에서 만나는 바람은 선들바람이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부딪히는 바로 그 순간 내 꼿꼿하던 영혼은 바람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영혼을 불어오는 선들바람에게 맡긴다.
이른 아침에 부는 바람은 한낮에 부는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키를 늘려가는 나무들 아래 선들바람에 몸을 떠는 이름 없는 풀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들은 내게 꽃을 선물한다. 이제 막 세수를 한 얼굴로 방긋 웃는 새하얀 꽃에게 눈길이 머문다.
오솔길의 길섶에서 눈여겨보는 이도 없는데 홀로 맑은 얼굴로 꽃을 피우고 지운다. 녹음을 뚫고 가느다랗게 사선으로 내려온 햇살 몇 조각을 먹고 피어난 꽃이라서 저리 맑고 투명한 꽃빛인가. 아니, 은은한 달빛을 먹고 자라서 저리 고운 것인가. 이름도 모르는 꽃에게 사로잡혀 발걸음을 멈추고 꽃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본다. 꽃이 예쁘다. 자세히 보니 더 예쁘다고 한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자세히 보았다.
아침산책길 끝자락에 다소곳이 절이 지어지고 있다. 절에 얹어질 기와를 봉양하라는 안내판이 놓여있다. 매번 다음에 올 때는 지갑을 가져와서 식구들 숫자대로 기왓장을 봉양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많은 이들의 소망이 담긴 기왓장들이 즐비하게 서서 나를 올려다본다. 대부분이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내 소망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을 모르고 너무 자만했다. 이제라도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아침 산책을 한 뒤로 몸이 한결 가볍다. 새들의 재잘거림, 나무가 내어주는 맑은 공기, 나무 아래에서 소곤거리며 피어나는 이름 모를 풀꽃들과 친구가 된 지 석 달째다. 이른 아침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해질 무렵에 지갑을 들고 다시 산책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