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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27. 2020

눈치보지 말고 1인 1크랩

서른이 되기 전에 떠난 내 생애 첫 해외여행 - Episode Ⅲ

다른 건 몰라도 싱가포르에서 무조건! 반드시! 꼭! 먹고 싶었던 한 가지. 칠리크랩이다. 한식 중에서도 특히나 게장과 꽃게탕을 사랑하는 나이기에 칠리크랩을 안 먹고는 도저히 싱가포르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블로그와 가이드북을 샅샅이 뒤져 찾은 칠리크랩 맛집 중 가까운 곳이 클라키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약제라는 것. 싱가포르에 무선 인터넷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USIM을 사지 않고 곳곳의 무선 인터넷에 빌붙어 살고 있었는데 전화를 하려면 USIM이 있어야 했다. 예약하러 클락키까지 가기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 애매한 상황. 물론 일정을 바꾸고서라도 갈 만큼 칠리크랩을 먹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지만 찾아보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로비 직원한테 부탁해보는 건 어때?”

“오~ 굿아이디어다! 그 정도 영어는 내가 또 할 수 있지.^^V”


숙소를 나오며 로비 직원에게 내가 찾은 음식점을 알려주고 예약을 부탁했다. 저녁 7시, 성인 2명. 한방에 예약 성공! 이제 가서 먹기만 하면 된다.

그날 저녁, 예약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한창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물론 바깥 테라스 테이블까지 빈 곳이 없었다. 종업원 안내에 따라 예약된 자리로 이동했다. 테라스에 앉고 싶었지만 우리 자리는 가게 안쪽, 안에서도 가장 구석이었다. 첫날밤 클라키에서의 라이브 펍이 생각나는 자리였다.


“설마 우리 배려해 준 건가? 말 못 걸게 하려고?ㅋ”

“그르게~ 만날 구석이네. ㅋㅋ”


곧 메뉴판이 왔고 우리는 고르고 말고도 할 것 없이 칠리크랩을 시켰다. 그리고 하나 더, 블랙페퍼크랩도 시켰다. 남자 둘이 하나 시키면 모자를 것 같고, 칠리크랩 못지않게 블랙페퍼크랩도 제법 평이 좋아 맛보고 싶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슬쩍 옆 테이블을 훔쳐봤다. 우리 또래의 연인들인 것 같은데 칠리크랩 하나 두고 오순도순 살을 발라먹으며 므흣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쳇! 쫌 부럽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칠리크랩 선명하게 보였다. 과연... 일단 비주얼 합격! 스멜도 합격! 비주얼, 스멜 합격이면 맛은 보나 마나다. 내 경험상 크랩은 절대 맛을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칠리크랩이 나왔다. 곧이어 블랙페퍼크랩도. 자,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는데... 친구와 난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


“이건 뭐고, 요건 뭐지?”

“글쎄다... 사실 나 랍스터도 제대로 먹어본 적 없어서 잘 몰라.ㅎㅎ”

“ㅋㅋㅋ 나도 꽃게만 먹어봤지 이런 건 처음이야~”


그렇게 잠시 앞에 놓인 연장들과 머리싸움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쓸 줄 아는 연장들만 사용해 먹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집게를 나머지 한 손은 그냥 맨손. 우리의 다섯 손가락은 조물주의 위대한 발명품이 아니던가? 여기에 힘이 더해지면 돌이나 쇠가 아닌 이상 못 먹을 게 없다.


“타닥! 타닥! 쾅!...”


집게와 손이 엇나가는 바람에 접시를 크게 내리치고 말았다. 다행히 접시가 깨지지는 않았는데, 그 소리에 반경 옆옆 테이블 안의 손님들까지 우리를 쳐다봤다.


“I’m so sorry~^^;;”


민망함에 얼른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았다. 특히나 바로 옆 연인 테이블의 여자는 마치 놀라운 광경이라도 본 듯 눈을 동글해져 있었다. 그리고 난 정확하게 눈동자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칠리크랩 한번, 블랙패퍼크랩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한번.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느낌 상 마치 걸뱅이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왜? 뭐 어때서? 남자 둘인데 1인 1크랩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빈정이 조금 상했지만 내가 먼저 저지른 일이 있으니 그냥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다시 왼손에는 집게, 오른손은 맨손을 앞세워 크랩과의 싸움 시작! 승자는 당연히 나다. 칠리크랩과 블랙페퍼크랩, 두 마리 모두 속속들이 발라먹었다. 옆 테이블 그 기분 나쁜 연인이 언제 갔는지도 모를 만큼 집중해서. 칠리크랩 맛은 그런 맛이었다. 옆에 누가 사라져도 모르는 맛. JMT!!!


크랩계의 양대산맥, 칠리크랩(좌)과 블랙페퍼크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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