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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선 나는 음악도 듣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는 음악도 듣지 않는다. 화해도 하지 않는다.

by 백요선



나는 여기서는 음악도 듣지 않는다. 화해도 하지 않는다.


혼자이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을 때쯤이었다. 작년 봄, 도피하듯 급하게 휴가를 내고 남해로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택시 기사님마저 "뭐 이런 곳에 숙소를 잡았어요?"라고 묻는 시골 마을인 두모 마을에 말이다.

두모 마을은 정말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전체 가구 수가 10채 정도라 했나. 동네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어서 음식을 꼭 들고 들어와야 한다. 농담 삼아 단식원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왔다.


그 한적한 곳에서 며칠간을 혼자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잠에 들었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드디어 혼자 있을 수 있음에 안도했다. 특히나 이곳의 아침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요하고 따사롭다. 숙소 바로 앞으로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이라는 당산나무가 한눈에 보인다. 정갈하고 깨끗한 기운 덕분에 당산나무 아래에서 빈 소원들은 정말 이루어질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남해의 초저녁은 을씨년스럽고 어둡고 축축하다. 언제 따사로움이 있었냐는 듯이.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숨는다. 엉겁결에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꿈이었는데. 꿈을 이룬 셈이다.


두모 마을에서 옆마을까지 매일을 혼자 걸었다. 하루는 날 잡고 섬으로도 가보았다. 작은 통통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 섬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그 숲 속 깊을 혼자 걸을 때는 앞으로는 무섭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말자 다짐했다.

정말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정말로 무서울 때는 무섭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더군다나 나는 굳이 이곳까지 내 발로 걸어 들어왔다.


이곳의 무신경함이 마음에 들다가도 불현듯 화가 치민다. 계획에도 없는 시골살이를 일단 해볼까 싶다가도 백반집 김치찌개가 9,000원이라는 사실에 정신을 차린다. 회사가 있는 성수동도 김치찌개가 9,000원이다. 처음 보는 백반집 아주머니는 나에게 반말로 푸념한다. 애호박 하나에 3,000원이 넘는다고, 이거 팔아봤자 남는 거 하나 없다고.

바로 이런 때에 시골에 와있음을 체감한다. 반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거나 반말로 응수하는 나도 시골에 온 김에 너스레를 떨어봤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어머 정말요? 진짜 비싸네요."

애호박 시세는 모르지만 오르긴 오른 것 같아 계좌이체를 해드렸다. 반찬도 남기지 않았다.


수입은 절반도 훌쩍 넘게 줄어버리고 지출이 엇비슷하다면 거길 제 발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건 텅 빈 숲 속보다도 더 무서운 곳일 것이다. 자율출퇴근도 재택근무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이라도.

그러고 보니 남해에는 트집 잡을 것들이 더 있다.


여기는 벌레가 많다. 빛도 부족하다. 음식도 2인분부터만 주문이 가능하다. 나라면 1인분 음식을 내놓고 여행자 친화적인 식당으로 이름을 알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그 사람들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잠든다.


"모든 게 아빠의 빈자리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은 어떤 빈자리는 빈자리인 채로 두어야 한다고 했다.


헤어진 전 애인과 죽은 아빠.

나는 그들을 앞에 두고 혼자서 커피도 마시고, 2인분부터만 파는 멸치 쌈밥도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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