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고 긴 리코더를 부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이들 창의력을 보존하고 길러주는 데에 소질이 있었던 내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다양한 그리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장기자랑 발표회도 열었다. 신문의 삽화들을 오려 산신령 이야기를 꾸민 나는, 창의력 시간마다 순서가 돌아오길 미적지근한 시간에 반하여 마음 졸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B가 종종이라기엔 거의 매번 일등을 차지했다. 그는 그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색 조합에 감이 있었다. 적당히 반항적인 그는 주변에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나는 그런 영향력과 관심받기가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 오, 정도만 되는 얕게 튀는 학생이었다.
장기자랑 발표회는 연말에 열렸는데 학부모까지 초대하는 거대 행사는 아니고 순번을 돌아가며 재능을 공유하는 학생용 피로연 같은 거였다. 당시 나만의 무기, 이야깃거리를 찾아 헤매던 난, 부모를 설득해 클라리넷을 배우는 중이었다. 스펀지밥의 징징이가 부르는 그 악기는 남들과 달라지고 내 특별함을 드러내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도구였다. 학예회 일정이 교탁에서 선생님의 육성을 통해 공지된 날, 나는 개중 말을 트고 지냈던 L에게 다가가 리코더와 클라리넷 합동 연주를 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그 기다랗고 두꺼운 리코더로 할아버지의 괘종시계였던가, 그 음악을 연주하면 L은 순간 학급 대중의 이목을 독식했다. 난 그걸 선망했다. 그래서 비슷한 크기의 클라리넷을 고른 걸지도 모른다.
나는 거절을 염두하고 물었지만, 실제로 거절당하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거절은 쉽고도 냉정했다. 리코더는 함께 불고 연습하는 무리가 있었다. 외딴곳의 클라리넷에게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장기자랑 본 날, 난 교탁을 치운 교실 앞 중앙에서 징글벨락 악보를 펼쳐두고 고단히 내 악기를 연주했다. 마디마다 엉성함이 하나씩 끼어있던 내 연주는 산타를 부르고 빨갛고 하얀 성탄절 장식을 음표로 내뿜으며 교실을 둘렀다. 선생님은 연주가 참으로 멋지고 훌륭하다며 간곡히 감탄해 주셨다. 좋은 분이셨다. 내 5학년 때의 민망하고 외로운 연말은 그런 식으로 마무리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