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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Jul 02. 2021

한 번도 비행해 보지 못한 승무원

( feat. 카타르항공 정리해고 )


Cabin crew who never flew.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로비에 어떤 크루가 울먹이며 건물 보안을 담당하는 Alex를 붙잡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Are they gonna really send us back? Did people really sent back last week? Is it true? Please tell me the truth. 정말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있는 건가요? 정말 저번 주에도 사람들이 떠나갔나요? 이게 사실인가요? 제발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크루 숙소이기에 건물 내 security, maintenance를 제외하곤 모두 크루이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정리해고가 진행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 시기이다. 평소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던 Alex는 나를 불러 Lizzy도 트레이닝 중에 있는 한국인이라며 물어보라고 했다.



바로 울먹이던 크루도 한국 분이었다. 트레이닝을 짧게 받은 크루들부터 차례로 돌려보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난 트레이닝 마지막 일주일을 남겼고 그분은 마지막 하루 디칭(ditching)과 Wing day만 남겨두고 observer flight을 갈 예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뒤에 트레이닝을 시작한 사람들이 먼저 돌려보내지고 있었다.


*디칭: 위급 시 바다에 착륙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대비.​ 비상착수.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몇 주 째 이 상황이 지속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걱정 속에 대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닝을 최근에 받은 사람부터 돌려보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우리 배치에 있는 whatsapp 채팅과 아는 크루들과의 정보 교류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분은 나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하며 내가 돌려보내지게 되면 그 과정을 알려 달라고 했고 나는 거절했다. 지금 슬픔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에게 기다려 보자고 하고 내 방으로 올라온 내 눈에는 그녀의 슬픔이 들어왔다.










사실 트레이닝이 첫 번째로 중단됐을 때는 좋았다. 주 6일 매일 아침 새벽 5시쯤 일어나 헤어, 메이크업 그루밍을 준비하고 6:40 am pick up bus를 타고 7:30am에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상상했던 승무원이 아니었다. 엄청난 security와 safety 절차가 있었고 방대한 양을 엄격하게 배우고 실행해야 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 공부할 때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담당해서 체크해야 하는 보안 절차가 엄청났고 승객이 탑승할 때도 단순히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passenger profiling을 하는 것이었다. 비상시 도울 수 있는 ABP(Abled bodied passenger)와 수상하거나 비행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의 승객도 파악해야 한다.



나는 기종 Airbus 319, 320, 321, Boeing 777(200er, 300er), 787을 트레이닝받았다. 6개월 혹은 1년이 지나고 A350 혹은 A380 트레이닝도 받아 미국, 호주 비행을 시작한다고 했다.



각 기종에서 모든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각 비행기의 안전 도구의 위치, 주의사항과 사용법을 숙지했다. 비행기 문을 여닫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도 비행기마다 다르고 문을 열기 전에 체크해야 하는 것들이 7가지 정도가 있다. 잘 못 열었다간 Evacuation slide가 펼쳐질 수 있다. 이 외에도 하이잭이 있을 때 범인을 체포하는 코드와 기술,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했을 때, 산소가 부족할 때, 기압이 낮아졌을 때(decompression) 혹은 어느 부분에서 불이 났을 때의 대처법들을 drill로 바로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암기해 매일 recap 시험을 보고 sep에서는 mockup이 되어 있는 실제 상황에서 연습하고 또 엄격히 시험을 본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쉴 수는 없다. 밤 새 공부해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때 소원은 잠을 푹 자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트레이닝이 중단되고 잠시 여유롭게 쉴 시간이 생겨 나의 과부하된 뇌를 식히고 푹 잘 수 있어서 좋았다. 꿀 같은 2주의 트레이닝 중단이 끝났고 다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조금 쉬며 에너지도 충전되었고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다시 트레이닝에 집중할 준비가 돼있었다.











그런데 카타르와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급증했고 국경들도 닫히기 시작했다. 트레이닝이 재개된 지 2주 만에 두 번째로 트레이닝이 중단되었다. 중단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트레이닝이 언제 다시 재개될지 혹은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 속에 도하에서 현지의 삶을 살았다.



주로 크루들은 해외에 비행을 가서 장을 보지만 난 도하 현지에서 장을 봐 요리를 해 먹었다. lulu라는 인도에서 온 대형마트, 가격대가 좀 있는 monoprix, 까르푸, Al meera 등의 현지 마트에서 장을 봤다.



lulu에서 사온 간식들



나는 인도산 초록 망고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인도산 망고 두세 개를 사서 상온에 놔뒀다 말랑해지면 냉장고에 먹기 전 두세 시간 넣어 놓은 후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루루에서 망고를 고르는데 어떤 인도 부부가 나에게 망고 고르는 법을 알려줬고 쓸 거라고 예상했던 초록 껍질의 망고 안은 찐 노란 달콤한 망고가 숨어있었다.



그리고 가끔 바람도 쐬러 코니쉬나 펄을 갔다.

최애 산책 코스 Corniche



Beautiful Pearl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트레이닝이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restrictions 들도 강화되어 lock-down 이 되었다. Pharmacy, food를 제외하곤 모든 곳이 문을 닫고 park, beach 등의 출입도 제한이 되었다. 다니던 요가원도 문을 닫았다.




카타르 항공 내에서는 더 엄격해졌다. 크루 간 다른 숙소의 방문이 금지된 것이다. 이제 거의 큰 숙소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숙소에서 매일 명상과 요가를 하며 정신을 잡고 극복하려 노력했다.


요가원 같았던 내 방


거실의 벽면 앞에 앉아 했던 명상



예상했던 것처럼 나의 차례가 다가와 본사에 불려 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인을 하고 이틀 뒤인 한국행 비행기표를 받았다.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선택권은 없었다. 다음 날 유니폼과 트레이닝 책 등 모든 것을 반납했다. 이틀 만에 카타르 리얄을 최소 유로나 달러로 바꿔야 했고 한국에서 가져온 137kg의 짐과 추가로 현지에서 구매한 엄청난 짐들을 처리하고 싸야 했다. 그 당시 요가를 수련하다 팔목을 다쳐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어 같은 건물에 살던 인도인, 러시아인 친구가 짐 싸는 걸 도와줬다.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도와준 감사한 친구들이다.



한국 비행이 거의 새벽 1시쯤이라 밤 10시쯤 공항으로 출발을 하면 됐다. 그 전 7시쯤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 총 18명의 배치 친구들이 모여 먼저 떠나가는 한국 크루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보스니아, 태국, 콜롬비아, 파나마 등 다양항 국가에서 온 배치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사진을 찍었다. 트레이닝을 하며 울며 웃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낮에는 땡볕에 너무 더워서 밖에서는 해가 지고 만날 수 있어요.










8년간 20번이 넘는 시도 끝에. 승무원의 꿈을 포기했을 때, 마지막으로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계 최고의 항공사인 카타르항공에 최종 합격을 했다. 최소 5년은 비행을 해야지 하고 갔던 카타르에서는 트레이닝만 받고 코로나로 인해 4개월 만에 다시 한국행을 했다. 인생은 한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감사히 하는 것, 지금 이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해서 일어난 것이란 믿음을 잃지 말자.



중동에서 많이 쓰는 말이 있다.


inshallah 인샬라 


신의 뜻대로.


카타르에서 머물던 Al Mansoura 동네의 숙소




이렇게 카타르항공에서 정리해고로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되었지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카타르에서 보통 카타르항공 승무원도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경험하고 내 내면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동에서의 몇 달의 삶은 또 나를 바꾸었다.



주변 환경은 자주 바뀔 수 있겠지만 내 안의 평화와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호흡하며 항상 현재를 살자.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ve got, where you are"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다들 코로나로 인해서 변화된 삶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같지 않은 상황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 호흡에 집중해볼 수 있는 시간.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해보자.



Inhale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Self love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Patience 인내와


Gratitude 감사함을 함께 들이마시고




Exhale 숨을 깊게 내쉬면서


Let go of everything that doesn't serve of your well being and happiness  나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Anxiety 걱정과

 

Negativity 부정적인 생각들을 함께 내쉬어 버리자




Be the complete watcher of what's happening around you and within you.


I send you love and light.


Hope you have a wonderful rest of your day.




진심을 담아 사랑을 전합니다.


나마스떼,

리지



Namaste with love,

Liz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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