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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Oct 16. 2021

제논의 천사, 인도에서 온 쁘리띠

카타르 생활의 한 줄기 빛이었던 당신



카타르에 살던 숙소 제논은 낡았어도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친절할 수 있나 느끼게 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한 명은 인도인 친구 쁘리띠이다.


*현재는 정리해고가 진행된 후 제논에 남은 소수 인원의 크루들이 다른 건물로 옮겨지고 제논은 더 이상 카타르항공 승무원 숙소로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In the elavator of Zenon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는 날이 없는 주 6일의 트레이닝과 매일 보는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했기에 한 번 장을 보러 갈 때 양손 가득 식량을 비축해서 왔다. 장을 보고 우바를 숙소 앞에서 내려 아이디카드를 찍어 문을 열었다. 로비의 시큐리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인도인으로 보이는 크루가 같이 탔다. 웃으며 Hi How are you? 하고 서로 인사를 해 본다. We live on the same floor! 그리고 우리는 같은 층으로 간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리는데 내 짐이 무거워 보인다며 드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그 짐을 들어 우리 집 안까지 들어다 주었다. 카타르에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자기는 같은 층 바로 근처에 산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해줬다. 그리고 물을 주고 우리 집에는 없는 와이파이를 사용하라고 하며 편히 쉬라고 하였다. 문은 잠그지 않고 사니 언제든 편하게 오라고 그리고 나중에 인도 음식도 해 주겠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음에 밥 먹자 같이 언제 일 지 모르는 빈말일 수도 있지만. 쁘리띠는 말한 모든 것을 정말 나에게 그 이상으로 해 주었다.

Action speaks louder than words.




그렇게 같은 층의 이웃으로 지냈다. 인도에서 시작된 요가를 인도인인 쁘리띠에게 우리 집에서 알려주기도 하고 쁘리띠네서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쁘리띠는 비행하며 나는 트레이닝을 받으며 제논에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로 인해 트레이닝이 중단되어 한창 요가 수련에 집중하던 중 오른쪽 팔목이 꺾인 채로 돌아 바닥에 넘어져 금이 갔다. 병원에 가 팔에 깁스를 해서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을 때. 매번 자신의 밥을 할 때마다 내 양을 덜어 주곤 했다. 왓츠앱으로 나의 아침, 점심, 저녁을 묻고 저녁에는 이걸 해줄게 하며 자신의 집으로 불러 인도 음식들을 해줬다.






차나 마살라(Chana masala), 야채 볶음밥 (Veg fried rice)
계란 볶음밥(Egg fried rice), 우파마(Upma)

 




우파마(Upma)라는 인도식 아침밥에 과자를 부숴 넣어 섞어 주었다.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며. 멕시칸 칠리 빈즈에 나초를 부숴 넣어 먹는 것처럼 정말 맛있었다. 병아리콩(Chickpeas)이 잔뜩 들어간 진한 향의 차나 마살라(Chana masala) 그리고 주로 달(Daal)이라는 노란 콩, 야채와 밥을 라이(Rai)라는 검은 겨자씨, 지라(Jeera)라는 커민(Cumin), 카레 가루 등의 온갖 인도의 향신료를 넣은 요리를 해 주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던 향기가 감미로워졌다. 그리고 난 한국에 돌아오기 전 카타르의 룰루(lulu)라는 인도 대형 마트에서 인도 향신료를 사서 한국에 가져왔다. 쁘리띠가 요리해 주던 것처럼 모든 음식에 넣어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서.




나는 트레이닝이 중단되어 도하에 계속 있었지만 쁘리띠는 비행을 다녔다. 비행을 다니며 아기 새를 둥지에 두고 떠다는 엄마처럼 비행을 하고 이틀 뒤에 돌아온다며 그동안만 잘 있고 돌아오자마자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도하에 있을 때도 비행 스탠바이(stand by)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항상 스탠바이를 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일인 마냥 슬퍼했다. 떠나는 것이 확정되기 전까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옆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계속 불어넣어 주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인도에서 가져온 핑크색 옷 세트 위아래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다음에 인도에서 더 예쁜 옷을 나에게 선물로 준다며 지금 가진 옷들 중에선 이걸 주는 거라며.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예쁜 쿠르타(Kruta)와 파자마(Pyjama)였다. 핫 핑크 색의 파자마 바지는 한국에 돌아와 다른 옷들과 함께 빨래했는데 같이 빨래한 모든 옷에 핑크 얼룩이 생겼다. 단독 세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의 - 쿠르타(Kruta), 하의 - 파자마(Pyjama)





한국으로 출국 전, 나의 다른 친구들과 쁘리띠도 함께 짐을 싸는데도 도우러 와주었다. 설거지 건조대는 낡아 도하에서 새로 샀었다. 하지만 이건 한국에 무조건 안 가져가는 건데 쁘리띠는 여기서 새로 산 새 제품이니 꼭 한국에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난 한국에 이미 있거나 없으면 거기서 새로 또 사면된다고 했다. 그렇게 도하 내 숙소의 모든 물건들을 다 한국으로 짐을 싸 보내려던 쁘리띠이다. 난 내 방에서 옷 정리를 하는데 나의 주방 물건들 짐을 싸주는 쁘리띠의 충격적인 행동을 발견했다. 바로 내가 쓰던 행주까지 짐을 싸 놓은 것이다.   




  쁘리띠! 나는 이건 정말  가져가도 괜찮다고 버려도 된다고 했다.  외에도 정말 많은 물건을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말 괜찮냐며 가져가서 쓰는  좋지 않냐고 되묻곤 했다. 그렇게  더미의 짐을 쁘리띠에게 가지라고 했다. 나의 가구들 사소한 물건들 그리고  물건들도 쁘리띠가 앞으로 비행을 하는데  대신 유용하게   있게. 뜯지도 않은  스타킹  박스도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원피스도 하나 주었었는데 한국 비행  챙겨가 한국 스타일로  입었다며 나에게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었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중요한 일에만 아껴서 입겠다는 쁘리띠에게 다음에 만날   좋은 한국에서 가져간 원피스를 선물하고 싶다.










병원 한번 가보지 않은 중동에서 팔목에 금이 가다니. 처음에는 팔이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팠고 엑스레이 후 깁스를 했을 땐 오른손 전체를 못 써 불편했다. 불편한 상황이지만 이로 인해 주변 친구들의 진실한 도움들에 감동이 넘쳐났다. 힘들 때 곁에서 도와주었던 친구들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팔이 불편해 나를 도우러 와준 친구들끼리도 친구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팔이 부러졌다는 불행과도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수없이 감사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몸이 건강하다고 행복하지만은 않고 다친 곳과 아픈 곳이 있는데 이렇게 마음이 더 행복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팔을 다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India and South Korea

그리고 몇 달 후 쁘리띠도 코로나로 인해 나와 같은 정리해고가 되어 인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카타르의 같은 건물에 살던 우리는 인도와 한국에 떨어져 있어도 항상 연결되어 있다. 쁘리띠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버님이 내 팔목이 괜찮냐며 물으셨다. 지금은 깁스도 풀고 건강해요!




넓지만 낡은 건물에 홀로 외로울 수 있었던 카타르 생활에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쁘리띠에게 감사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주고받았던 왓츠앱 메시지들을 다시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까지 나를 챙겨줬었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이다. 카타르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의 등엔 날개가 달렸었고 어떤 사람들의 가슴엔 리본이 달려있었다. 나에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도 같았고 소중한 선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살 만 하구나 어떤 힘든 일도 같이 해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트레이닝 매뉴얼의 내용들이 아니라 이런 친구들과의 시간이었다. 비록 글이지만 카타르에서 느꼈던 잊을 수 없는 인도의 향기와 쁘리띠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넘쳐흐르는 감사함을 담아보았다. 결국에 우리는 언젠가 다시 비행을 할 수 있게 되던 아니던 삶의 끝에 죽음을 맞게 된다. 그때 나의 삶의 이야기를 묻는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분명 주변 사람들도 날개나 리본을 달고 다닌다. 하지만 그것은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There are people with the wings or ribbon on them. However, only who is willing to see through heart sees it.






Hard time produce your greatest gift.







The only people worthy to be in your life are the one's that help you through the hard times and laugh with you after the hard time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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