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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Sep 23. 2021

승무원을 포기했을 때, 삶은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 ft. 생생한 카타르항공 최종 합격 과정 )









리지 너는 외항사 승무원 되기에는 토익 점수가 너무 낮아.



대학생 때 같이 스터디를 했던 어떤 언니는 내가 외항사 승무원이 되려면 최소 토익 900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쉽게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지만 그 당시 이과생 대학생의 나로선 노력해서 겨우 800이 나왔다. 1학년 때 600점대를 받았던 것에 비해선 많이 오른 상태였다. “넌 토익 800점이지만 노력해서 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넌 토익 800점이라서 900은 돼야 할 수 있는 외항사 승무원은 안 될 거야”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 언니와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그 당시 나의 꿈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나를 낙담시키는 사람을 만나 어울렸다. 그럼에도 계속 응원을 해줬던 다른 언니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서로의 고락을 공유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도 않은 일을 말하고 가능성을 보지 못하며 낙담시키는 비관적인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아 그런 사람도 있구나 교훈 정도로 필요하지만 이 두근거리는 삶을 함께 즐겨나가기엔 필요하지 않다. 이젠 과감히 인지하고 그런 사람을 나 스스로를 위해 멀리하고 끊어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그 무한한 잠재력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삶의 토익이 200점 이어도 900점 이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사실 점수는 상관이 없고 노력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자격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확실하게 믿지 않아도 된다고 그땐 나 스스로를 의심했었지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꼭 전하고 싶다. 당신 안의 가능성의 크기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Courage > Discourage

Possibility > Impossibility











Lizzy you are way too smart to be a cabin crew.



어떤 사람들은 내가 승무원이 되기에는 너무 똑똑하다고 하였다. 의생명을 전공하였지만 난 마스크를 쓰고 실험실에 있기보단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가치를 따라 해외를 가니 승무원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달랐다. 힘든 일을 하는 직업을 왜 되고 싶은지 이해를 잘 못하고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데. 내가 자격이나 능력이 안되면 되도록 노력하면 되고 이 일을 하기엔 아까운 인재라 해도 내 가치에는 낮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걸어 다니는 UN이라고 생각한다. 외항사는 가장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일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다국적 동료와 함께 일하는 기관 1위가 UN 2위가 에미레이트 항공이다.



주변에 여러 말이 있어도 내가 하고 싶기에 죽기 전에는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로 외항사 승무원이란 꿈을 항상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서비스직이라 해도 천대받을 수 있는 3d 직업이라 한들 쉽게 될 수 없었다. 무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면접에 떨어졌다. 그 덕에 샵을 가지 않아도 헤어, 메이크업은 혼자 거뜬히 해내고 어느 웬만한 면접에서든 기본 태도나 질문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4년제 이공계생이 국제기관에서 인턴을 하고 온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카페 알바를 했다. 내가 나중에 40, 50이면 이런 경험을 하긴 힘들 것이다. 나의 전문 커리어나 비즈니스가 있기 이전에 경험해 보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된다.











One last chance?


위와 같이 외항사 승무원에 대해 진심이었지만, 이십 대 후반 퇴사를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준비했던 싱가포르 항공을 떨어졌을 땐 이 전에 떨어졌을 때 왔던 현타들보다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와 이젠 정말로 승무원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며 이제 완전한 포기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항공 말고도 지원했던 카타르항공 지원 두 달 후, 갑자기 다음 주 부산에서 있는 오픈데이에 invitation이 온 것이 아닌가! 첫 *인비를 돌렸을 때 난 받지 못하고 연락도 없었다. 그래서 서류부터 탈락했나 보다 했지만 두 달 후 2차로 돌렸을 때 인비가 온 것이다. 참고로 중동의 항공사들은 연락과 절차가 굉장히 느리고 급작스러운 편이다.


*인비(invitation) : 항공사에서 지원받은 서류를 보고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호텔로 면접 오라는 초대장 혹은 cv drop을 통과해 다음 단계로 초대한다는 증서와 같은 것.






Back in Ireland,

the very first open day for Qatar Airways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 때 카타르항공 워크인 인터뷰를 갔었다. 인비도 없이 그냥 참여하면 되는 것이었고 약 200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난 cv drop인 첫 단계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카타르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해외 오픈데이에서도 그것도 첫 번째 단계에서 떨어지다니 그전에 에미레이트는 파이널까지 갔었는데. 그리고 옆에 나보다 확연히 그루밍도 좋지 않고 영어를 못 하는 브라질리안 여자가 cv drop에서 인비를 받는 것을 보았을 땐 이너피스가 유지되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인은 모두 떨어졌다. 바로 국적탈이었다. 이전에 한국인을 너무 많이 채용해 그 당시 한국인을 채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떨어졌기에 아일랜드에서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외국계 기업을 다니고 요가도 수련하게 되어 돌아보면 잘 된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서울에서 카타르항공의 부산에 있는 호텔로의 인비를 받았지만 막상 기쁘지만은 않았다. 아일랜드의 여유로운 오픈데이의 cv drop에서도 떨어졌는데 서류를 미리 걸러 인비 받은 사람만 올 수 있는 3000여 명이 참여하는 더 경쟁률이 치열하고 확률도 낮은 한국 오픈데이에서는 당연히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부산까지의 교통료, 숙박료, 새로 시작하는 일을 무리해서 빼고까지 가야 하나 심히 고민을 하였다. 일부러 유럽 면접 투어나 가까운 동남아로 오픈데이만을 위해서 가기도 하는데 같은 나라에서 기회가 생긴 거니 해외도 아닌데 가보자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 가면 평생 후회를 할 것 같아 당연히 1단계에서부터 떨어질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숙고 후에 갈 것을 결심했고 부산까지 간 김에 바다를 보고 놀다 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그 당일 바로 파티를 할 수 있도록 파티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주로 면접 보러 가는 사람은 그 면접이 이루어지는 호텔이나 근처 조용한 호텔을 예약하기 마련이지만 난 어차피 떨어질 걸 알았기에 그날 떨어지고 혼자 바로 자유롭게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가자고 생각해서 파티 게하 예약을 한 것이다. 당연히 다음 단계로 통과하지 못해 다음 날 면접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in Busan


드디어 카타르항공 면접을 보러 부산을 갔다. 마음을 비웠지만 그래도 떨렸다. 다음날 면접을 위해 전날 밤 불금을 자제하고 금주를 하고 마스크팩과 네일도 하고 면접 준비를 하였다.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아래층이 빠라 시끄러운데다 6인실이라 제대로 잠을 잘 못 잤다. 면접 당일 좁은 게스트하우스의 방바닥에 앉아 셀프로 헤어와 메이크업을 준비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꼼꼼히 화장을 했고 속눈썹까지 붙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연아 원피스를 입었다. 평소 면접 때 입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가져오지도 않았다. 어차피 첫 단계에서 떨어질 거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입기로 결심했다.








CV drop

나는 1시 면접으로 배치 6, 리크루터 5 였다.


-Invitation 이메일 프린트

-Applicant id 적힌 resume

-여권사이즈 사진

-영문 최종학력 증명서


위 서류들 챙기고 게하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셀프로 준비한 후 12시 반에 호텔에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에 커피를 먹었다. 평소 면접과 같지 않게 굉장히 편안하고 느긋하게 간식도 먹으며 일층 로비를 즐겼다. 편하게 입고 왔다가 옷이랑 구두는 호텔 1층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다. 그리고 면접 장소인 2층으로 올라가면 왼쪽이 면접장(interview room) 오른쪽이 대기장(waiting room)이었고 나는 1시 배치라 거의 1시 딱 되었을 때 waiting room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20pm쯤 내가 속한 배치 6을 모두 불러 면접장으로 이동 후 리크루터 넘버에 따라 일곱 줄로 섰다. 배치 6 안에도 일곱 명의 리크루터가 있었다. 이런 수많은 배치와 리크루터가 오는 경우의 오픈데이는 수천 명의 면접자가 있는 한국의 특수한 경우였다. 내가 속한 recruiter 5번 줄에 두 번째로 섰다. 그냥 빨리 끝내고 놀고픈 마음도 있었어서 빨리 걸어서 앞쪽에 섰다. 내 앞에는 한 분만 있었고 그다음이 바로 내 차례였다.




Qatar Airways Recruitment Day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리크루터는 늦여름 더위 때문인지 아침부터 많은 면접자를 봐서인지 피로해 보이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난 활짝 웃으며 다가가 최선을 다해 대답을 했다.


CV drop에서 크게 받은 질문 3개이다.

- What do you do?

- What qualification do you have to be a cabin crew?

- What sense is most sensitive in your body and why?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하는데 난 온 경험을 다 쏟아내 어필을 했지만 듣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로 훑으며 어피어런스를 체크했다. 이때도 속으로 아 인비 받기는 글렀구나 못 받나 했다. 마지막 질문을 받고 나의 대답이 끝났을 때 감동적이게도 다음 단계로의 인비테이션을 받았다. 리크루터는 다음 단계에 올 때는 원피스 말고 흰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오라고 했다. 팔이 보여야 해서 그러는 거면 이게 케이프 원피스지만 들추면 내 팔이 보인다며 그대로 입으면 안 되냐 했지만 안된다 했다. 서울에 놓고 온 면접복이 스쳐갔다. 가져올걸.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하고 가려는 나에게 리크루터는 부탁 두 개를 했다. 호텔 직원에게 에어컨을 켜 달라고 하고 앞의 면접자가 끝나면 다음 면접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다른 직원을 불러 달라고 했다. 내가 너무 편하게 말을 해서 면접자로 안 보였던 것일까 속으로는 엄청 떨렸는데. 받은 인비테이션을 고이 접어 소중히 들고 고맙다고 또 하고 받은 부탁 두 개를 해결해 주러 호텔 직원들을 찾아 문의하고 double check까지 한 후에 숨을 돌리며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cv drop을 통과해 인비를 받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cv drop만 통과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 면접을 가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가족인 엄마에게 1단계를 통과했다고 전화를 하려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감정을 추스른 후에야 전화를 해 소식을 전했다.










Assessment Day


다음 단계인 assessment day는 이틀 후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게하 파티는커녕 하루 만에 이틀 후에 있는 다음 단계의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서면으로 가 승무원 면접복 대여샵을 돌며 고민하다 백화점으로 가 자주색 스커트를 사려 하니 35만 원이었다. 일단 누드색 브라와 나시를 샀다. 이번에 올 때 블랙 원피스만 가져와 속옷도 블랙과 핫핑크 색밖에 없었다. 흰 블라우스 안에는 입을 수 없는 색의 이너웨어들이었다. 그런데 마침 나와 같은 상황의 싱가포르항공 스터디를 1:1로 같이 했던 동생 Y도 기대를 안 했던 인비를 받은 것이다. 나는 예약된 게하를 버리고 그 동생과 면접을 보는 호텔에 같이 머물기로 했다. 어쎄스먼트 데이 날이 달라 그 동생이 옷도 빌려주고 같이 준비하며 큰 힘이 되었다. 그 동생이 기도도 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드디어 assessment day, 또 탈락의 위기들이 다가오고 어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못지않은 두근거림이었다. 영어 테스트에서 반이 떨어졌고 꽤 어려웠던 영어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며 반신반의했다. 사람들과 얘기하며 내가 틀린 문법의 문제가 계속 생각나고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과 발표를 들으러 홀에 다 모였을 때 반 정도의 번호를 부르며 호명된 번호의 사람은 나가라고 했고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인터뷰 과정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순서대로 내 번호쯤이 부를 차례일 때 내 번호를 부르지 않고 지나갔다. 그 지나가는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가까스로 영테를 통과하고 다음 암리치(Arm reach), 스카첵(Scar check)과 또 다른 2:1 면접을 보았다. 세계 최고의 항공사 카타르항공은 채용에 굉장히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자하고 심리학자 리크루터들도 두고 있다. 난 2:1 면접에선 두 명의 심리학자들과 면접을 보았다.






받은 여러 질문 중 기억에 남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How much would you like to get every month to make you not use your phone forever?



내가 평생 동안 핸드폰을 쓸 수 없게 하기 위해 평생 매달 얼마를 받고 싶은지였다.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나는 매일 카카오톡을 사용한다부터 시작해 내가 sns에 중독되어 완전히 끊으려 했던 얘기까지 구구절절 TMI 토크를 했다. So, how much? 그래서 얼마냐고 해 난 그 당시 서울에서 월세를 내고 자취했기에 2000달러라고 했다. 렌트비와 생활비 정도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리고 나에게 속눈썹을 붙인 거냐며 파이널 인터뷰에 오게 된다면 그땐 때고 올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당연하다고 했고 이때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면접자들은 만약 너의 남은 일생이 어떻게 되는지 적힌 책을 읽을 것인지와 같은 다양한 심리학적인 질문들을 받았다. 2:1 면접을 보고 또 홀에 다 모여 파이널 인터뷰를 가는 소수의 번호들만 불리고 나머지는 떠나야 했다. 긴장의 긴 기다림 끝에 파이널리스트를 발표했고 내 번호가 파이널리스트에 불렸다. 파이널 인터뷰는 그 당일 밤이나 다음날 혹은 다 다음날 보게 되는데 이것도 랜덤이다. 난 바로 그날 당일 밤 파이널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Final Interview

이제 속눈썹을 떼고 파이널 인터뷰를 위해 숨을 고르고 준비해야 했다. 새벽부터 그루밍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긴장된 면접 과정에 배고프고 지쳤었다. 어쎄스먼트데이와 파이널 인터뷰에는 꼭 생명의 간식을 가져가야 한다. 난 죽을 뻔했는데 같이 파이널리스트에 든 어떤 분이 서류를 작성할 때 준 고구마 말랭이 한 조각을 먹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분은 내 다음으로 파이널 면접을 보았고 우린 같이 부산역에서 밀면을 먹고 KTX를 타고 서울로 함께 올라왔다. 그분은 지금 나의 친한 동생 D가 되어 이번 추석 연휴에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었다. 함께 파이널 인터뷰를 보고 밀면을 먹은 추억은 서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파이널 인터뷰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부여잡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던 것처럼 했다. 리쿠르터들은 나를 알아보고 속눈썹을 떼고 왔냐고 해서 난 떼고 왔고 뗀 부분에 화장을 살짝 고쳤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 파이널 인터뷰에서 받는 온갖 나의 삶과 승무원이 되기 위한 자질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모든 질문에 진실되고 털털하게 답을 했다.



파이널 인터뷰가 끝나고 서울역에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도착해 다음 날부터 후련한 마음으로 서울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파이널 인터뷰를 보고도 끝이 아니다. 본 후에 reject 메일이 오면 떨어진 것이고 온보딩 메일이 오면 통과한 것이다. 나에겐 파이널 인터뷰 며칠 후 온보딩 이메일이 왔다! 바로 파이널 인터뷰도 통과한 것이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서류와 전신사진을 첨부해야 한다. 하지만 다음 단계인 온보딩 링크에서 떨어지는 링크탈도 있다. 다행히 나는 photograph received email을 받고 통과해 또 다음 메디칼 등의 단계를 진행하고 DOJ(Date of Joining) confirmation email을 두 달이 넘은 후에야 받았다. DOJ, 드디어 최종 출국 날짜를 받아 최종합격을 한 것이다. 이 전까지도 영영 연락이 안 올 줄 알고 언제 다음 단계로의 연락이 확실히 오나 하며 서울에서 일을 하며 가끔 여행도 하고 있었다.





카타르항공의 숙소에서도 느꼈던 코로나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이미 합격도 하기 전인 채용 과정에서도 있었다. 어쩌면 내 모든 삶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이 항상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어찌 됐든 좋았다. Either way is good처럼. 카타르에 남아 비행을 할 수 있었다면 비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고 지금 한국에 돌아오게 됐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또 좋다. 지금 현재 미래에 대해 불안함과 걱정이 있다면 삶은 어찌 됐든 계속 흐를 것이고 결과가 어떻게 됐던 지금 이 순간, 다가올 순간들도 어찌 됐든 좋을 것이다. 앞으로 당신이 가게 될지 모르는 두 길 다 좋다. 그러니 걱정은 조금 내려놓고 이덜 웨이 이즈 굿을 생각하자.










이 모든 카타르항공을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은 글로 표현한 것 이상으로 아직까지 생생하게 모든 장면이 기억난다. 왜 나한테는 이런 불행들이 일어나는 걸까 원망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위장된 축복이었다. 지금 일어나는 불행 같아 보이는 모든 것들도 미래에는 감사하고 축복할 일일 것이니 지금 그 상황을 축복하라. 축복하지 않아도 최소 받아들이고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지금 갖고 있는 모든 불안감과 걱정을 사랑으로 바꾸자. 내가 요즘 하는 노력이지만 아직 쉽진 않다. 그러나 균형을 유지하며 너무 걱정에 빠져 살지는 않도록 하고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낙관적인 앞날들을 상상하며 오늘 하루를 또 보내 본다.





Sometimes life take you in a direction you never saw yourself going. But it turns out to be the

best road you have ever taken.





Some people come in your life as blessings.

Some come in your life as lessons.

- Mother Tere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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