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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Oct 20. 2021

카타르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Give yourself permission to rest





뛰던 발걸음을 멈춰 땅에 누워서 녹아버리고 싶었다. 사바사나를  채로.





New journey in Seoul

카타르에서 정리해고가 된 후, 한국에 돌아와 2주의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면접을 보고 새로운 일들을 구했다. 합격한 두 곳은 대기업 호텔의 고위직과 중소기업인 룰루레몬의 에듀케이터 직무였다. 이 둘 중에서 굉장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꿈을 꾸던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정리해고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은 나에게 매일 또 메이크업으로 나를 꾸미고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매니저로써 호텔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연봉과 직위는 더 좋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란 생각에 룰루레몬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생각해 요가 브랜드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요가와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에 회사에 앉아서 일하던 때에 비하면 정신적 피로는 덜했지만 육체적 피로가 굉장했다. 입에 구멍도 나고 코피도 나고 피곤한 날은 바로 앞의 호텔에서 머물고 다음날 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주 5일의 스케줄 근무에 하루 종일 서 있고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매주 홍콩에서 오는 물류 박스들도 정리해야 했다. 몸이 힘들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가 몸이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가는 나의 평생 딜레마이다.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항상 고민이지만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수년째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요가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요가 관련 사람들과 더 소통을 할 수 있고 복지로 요가 수련비를 지원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틀의 랜덤으로 쉬는 날은 그 전날 일한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다음 날 또 일을 가야 했다. 피로한 상태에서도 틈틈이 서울의 새로운 요가 스튜디오들을 돌아다녔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이렇게 일을 구해서 할 수 있다는 것에 어쩌면 미래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일했다.





Check-in to my soul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룰루레몬의 목적인 세계 모든 사람들의 잠재력을 뽑아내 성장하는 것과 비전인 더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희미해져 갔다. 나조차도 더 나은 삶을 살기는커녕 무의식적으로 바쁜 삶을 살며 좀비가 되어가는 것 같았고 몸으로만 수련하는 요가는 영혼 없는 움직임에 불과했다. 게다가 타인의 기준에 의한 평가와 강요받는 성장, 그리고 항상 밝고 긍정적이어야만 하는 상황은 나에게 압박적이었다. 즐기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닌 세일즈 골과 고객만을 중시해서 룰루레몬의 가치 중 하나인 'Fun'은 찾기 어려웠고 'Pain'이 그 자리를 대신해갔다. 그 고통마저도 감사하며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를 지속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상황을 참는 것이었고 맞지 않기에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적으로 더 악화되어가는 나의 마음 상태를 인지했었고 심히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Power of writing

퇴사하기 전 마지막 달, 나는 매일 글을 썼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점심시간에 틈틈이 글을 썼다. 나의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전부였던 꿈을 잃은 것에 대한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꽤 컸고 나는 괜찮은 척을 하며 바로 새로운 일을 하고 나 스스로를 폭력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슬픔이 있는지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무의식적 바쁜 삶에서 벗어나 최소 6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자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시간을 가지며 '나'를 위한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동네 요가원을 다니며 수련 전후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시간을 보냈고 다음날 알람을 맞추지 않고 밀린 잠을 푹 자며 회복하는 나날을 보냈다. 이 전에 일을 하며 흥청망청 폭음과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을 폭식했던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과 내가 먹는 음식에 온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일들을 서둘러 빨리 해내야 할 필요도 없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행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며 서서히 회복해가고 내 얼굴엔 생기가 돌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The struggle is part of my story

여유를 찾아가면서 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고 자연스럽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새로운 길들을 열어갔다. 카타르에서 있었던 생생한 모든 일들과 내가 느꼈던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기억들을 글로 써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과 그로 인한 슬픔을 온전히 느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슬픔을 숨기지 않고 내 삶의 일부로 마주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영어를 섞어 어눌하게 말하고 글쓰기도 어려워하는 내가 꾸준히 글을 써나갔다. 그리고 세 번의 도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요가도 더 깊게 공부를 하고 싶어 집중해서 요가 지도자 과정도 들었다.

 



이런 일들을 한국에 오자마자 했어야 했나? 카타르에서 오자마자 쉬기만 했었으면 좋았을까? 도 생각해 봤지만 아니다. 삶에는 up & down이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방치하지 않고 인지하고 최선을 선택해 가며 잘못된 선택을 해도 그 안에서도 배울 점을 얻고 다시 나로 회복해가면 된다. 요가 브랜드에서 일을 한 것에 후회는 없다. 덕분에 새로운 요가 스튜디오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미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동료들이 영감도 되었다. 요가 브랜드에서 일을 하며 지금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응원하는 소중한 인연들을 얻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다시 한번 나 자신의 상태를 인식해야겠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땅으로 녹아내렸던 나는 글이라는 새싹으로 천천히 솟아나고 있다. 이 새싹이 트기 까진 불안함, 걱정, 실패, 기쁨, 환희, 감동 등의 비료들이 있었기에 나라는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씨앗이 눈물을 머금고 돋아났다. 돋아난 이파리에 스치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의 느낌이 좋다. 시원한 비도 느끼며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자라나며 지구 위 존재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간결한 삶을 준비하는 시간과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느긋함을 소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신체에 관용을 베푸는 시간과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도 잃지 않아야 한다. 희미하게 들리는 마음의 소리에 더더욱 귀 기울이며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어보자.





힘들고 지친 마음이라도 그대로 느껴보고 다독이며 새로운 맑은 숨을 불어넣어 주자. 정신없고 긴 하루를 보낸 나날들도 있었구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늘 위의 구름처럼 둥둥 떠오르게 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자. 안 좋은 생각마저도 그대로 느끼고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기에 다 괜찮고 우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의 사랑임을.  사랑은 항상 존재한다. 보이지만 않을 뿐 흐르고 있다. 밖으로 흐르던 사랑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스스로에게 주어보자. 그 에너지를 모아 내 안으로 보내 회복을 했을 때 그 사랑의 흐름을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Flow

항상 나의 상태는 어떤지 나의 감정에 체크인을 해보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껴보자. 주변에 감도는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찬 향기를 듬뿍 들이쉬어 보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이 다시 땅속에 녹아내려도 매번 새싹을 피울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길러보자.




카타르항공에서 하지 못한 비행보다 더 소중한 비행은 내 안으로의 비행이었다.




Nothing can dim the light which shines from within.




Heal yourself first, the rest will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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