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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Aug 28. 2021

승무원을 꿈꾸는 한 소녀

사막의 지름길보다 오래 걸리는 에움길이 향기롭다


소녀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장래희망: 스튜어디스라고 적혀있다.



그 소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대학 진학에 앞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교무실을 들어갔다.



"선생님 저는 항공운항과를 가서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대학 전공으로 항공운항과를 가겠다니 담임선생님은 미쳤다며 꾸중을 하셨다. 평범한 수학, 과학에 우등한 이과 여학생이 2년제 대학을 간다니, 승무원을 한다니. 뜯어말리셨다.



처음에는 무조건 안된다고 화만 내시던 선생님이 또 상담을 하면서 자신은 과학교육학과를 나왔는데 같은 과를 나와서도 승무원이 된 동기도 있다며 설득을 하셨다. 일단 잘하는 이공계열을 더 깊이 공부하고 승무원은 이공계를 전공해도 할 수 있다고 설득되어 완전한 이공계열의 4년제 대학을 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 동안 그 선생님을 원망했다. 지금은 그 선생님께 감사하다. 4년제 대학을 갔기에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고. 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에겐 선택권이 많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승무원이 빠르게 될 수 있는 길로 단순히 항공운항과를 갈 생각이었다. 고등학생으로서 넓은 시야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의생명을 전공하며 교양 수업들은 좋아하는 영어와 운동으로 꽉 채웠다. 흥미로운 철학, 정치학, 스페인어 등의 수업도 들었다. 승무원이란 꿈을 마음속 한편에 항상 두고 실험실에 들어가고 의생명 전공 공부들을 했다.



대학교 1학년의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 학교의 인재개발원에서 승무원 코스를 진행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보자마자 지원해 매주 강의를 들었다. 마치 나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강의 같았다. 승무원 그루밍을 하고 현직 내항사 외항사 승무원분의 강의를 듣고 모의 면접을 봤다. 외항사를 담당하시던 전직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 강사분께서 대학교 1학년이던 나에게 말했다. “학생은 에미레이트 항공이랑 잘 어울려요. 나중에 에미레이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에미레이트 항공도 잘 몰랐고 아직 철부지 없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 말은 수년이 지나서야 에미레이트 항공 면접을 보게 되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강사님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것인가. 에미레이트 파이널 인터뷰를 보고 두바이로 이민을 갈 줄 알았지만 떨어졌다.










인재개발원에서 한 학기의 코스가 끝나고 그곳에서 만난 언니와 승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모아 총 10명으로 이루어진 Happy Flight이라는 스터디그룹을 결성했다. 공대, 자연대, 인문대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승무원이라는 하나의 같은 목표로 모였다. 교내에서 제공해 준 코스를 발판으로 우리는 자체적으로 매주 학교 도서관 회의실에 모여 스터디를 했다.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양력(lift)*부터, 영어 토론, 웃는 연습 등을 재밌는 게임과 함께 했다.


*Lift is the force that directly opposes the weight of an airplane and holds the airplane in the air.

양력(揚力): 중력에 반대되는 힘으로 비행기의 날개에서 생겨 항공기를 공중에 띄우는 힘.







Happy Flight 맴버들과 여름방학때 갔던 여행

 Happy Flight이라는 스터디 그룹은 대학생활 중에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었고 아직까지도 소중한 인연 들이다. 감사하게도 유명 학원이나 과외 없이 스스로 준비할  있는 힘이 여기서부터 시작됐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내항사보다는 전 세계에서 온 크루들과 일한다는 점, 선후배 사이에 seniority가 덜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외항사에 더 끌리게 되었다. 만약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항공운항과를 갔다면 2년 만에 내항사인 한국 항공사만을 준비했을 확률이 높다. 항상 선택권을 넓혀 놓는 것이 좋다.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항공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세계적인 항공사들을 생각하고, 승무원을 하려는 이유가 다문화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면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든 플랜 B, C, D 그리고 F 정도까지.










내가 정말 싫어했던 내 꿈에 반대했던 선생님을 지금 돌아봐 생각하니 정말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풍성한 경험의 시작도 다 선생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 분야를 전공하지 않아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러했고 오히려 새로운 분야의 또 다른 것을 공부하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공부는 나의 흥미에서 나온 열정 그 자체로 흡수력과 파장력이 뛰어났다.




그렇게 직접 경험해보니 선생님 말이 맞았다. 과학을 전공하고도 승무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것도 그냥 되는 것 말고 아주 더 재밌게 말이다. 늦게 말씀드리지만 고3 화학을 가르치시던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때 나는 인상을 쓰며 입을 삐쭉거리며 공부만 하고 온갖 애교와 감사는 영어 선생님께만 했었는데. 십 년이 지나고 보니 실질적인 조언을 해 주셨던 화학 선생님께도 참 감사하다.










그리고 전공과 다른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꿈을 아직 이루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꿈은 늦게 이룰수록 좋다고. 초반에 그리고 과정 중에는 힘들다고. 맞는 길인가 싶고 계속 떨어지고 다른 경험을 하고. 그런데 그 과정이 미치도록 소중하다고. 그 과정이 있었기에 꿈을 이뤘을 때도 그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소중함이 남다르다.



카타르에서 가장 힘들다는 트레이닝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도 마음가짐에서 나왔다. 나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기에 단단한 마음으로 트레이닝에 임할 수 있었다. 사실 치열한 한국의 교육으로 단련이 돼있기도 했다. 첫날 혹은 첫 주에 못 견뎌 포기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크루들도 있었다. 그래서 트레이닝이 끝날 때쯤에는 처음 시작했던 인원수가 아니다.




현재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그 과정이 참 소중한 시간이라고 지금 그 과정에 있는 당신은 모를지라도 소중한 과정 속에 빛나고 있고 내면의 단단함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어쩌면 꿈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게 축복일 수도 있다. 지금 꿈을 꾸며 두근거리는 그 순간이 이미 빛나기 때문이다.




사막의 지름길보다도 돌아가고 오래 걸리는 먼 에움길*이 더 향기롭다고. 그 향은 잊을 수 없다고. 꿈과 가까워졌던 그 소녀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그 향기로운 길에선 울기도 춤을 추기도 좌절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가싯길 같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꽃길의 순간이었다니 그 순간에는 왜 몰랐을까.



*에움길: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

A long way around. 지름길의 반대말.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원하던 것이 없을지라도 괜찮다. 그 길 자체가 이미 충만했기에.




그러니 길의 끝에 다다르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가도 된다.

닿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빛나는 당신은 모른다.





You are dreaming and shining!





Love,

Liz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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