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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May 09. 2021

내 삶을 변화시킨 세 가지 터닝 포인트

Prologue:Three turning points in my life


안녕하세요. 앞으로 글을 써 내려갈 리지입니다. 첫 장을 펼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십 대 때 너무 열심히 살았었던 거 있죠. 그중 저에게 일어났던 중요한 일 세 가지를 얘기해드릴게요.




1. 미국 교환학생 California State University

고등학생 때부터 꿈이었던 미국 교환학생,
하지만 턱걸이로 지원한 낮은 학점과 낮은 영어점수, 딸리는 영어면접으로 계속 떨어졌다..

교수님께 다섯 번째 추천서를 받아 3학년 2학기 교환학생을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 도전했다. 영어로 된 교양과목은 모두 수강해 영문학과 수업들을 듣고 원어민 교수님들께 찾아가 모의면접을 요청했다.

드디어 마지막 기회의 면접을 보는 도중..! 다른 뛰어난 옆의 면접자들을 보니 느낌이 싸했다. 이렇게 또 떨어지는 건가.. 점수가 높고 이미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밀리는 건가. 면접이 끝나가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해보라고 한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상체는 거의 튀어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고 나는 꼭 가야 한다고 그동안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것들과 가서 이룰 것들을 다시 말하며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합격을 했다! 합격 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아지고 도와준 교수님들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칠전팔기로 미국을 간 나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무용학과 수업을 청강하고 대학 댄스팀에 들어가고 술과 노래가 있는 기숙사의 flat이나 친구네 아파트는 항상 파티였다. Bay Area에서 지내며 매주 Bart를 타고 San Francisco를 가고 방학 때마다 Los Angeles를 갔다.

정작 전공과목인 면역학, 독성학 등은 밤새 공부를 했는데도 F를 받았다. 교환학생 다녀와서 학점이 2점대로 더 낮아졌다...

하지만 1년 살다온 미국은 내 영어실력을 심하게 업그레이드시켰다. 10년은 살다 온 것처럼 늘었다. 한국에 온 후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공강인 날에는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영어 전시해설사로 일하고 국제 행사들에서 통역을 하고 영어학원강사 영어 과외 등 영어 관련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를 하고 나니 겁이 없어졌다. 영어권 나라는 어디서든 가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날 바로 미국행을 택했다.

평생 California에서 살아야지 하며 지원한 인턴쉽은 비자 문제로 호주 Sydney로 바뀌어 15시간 비행을 해 급 호주로 가게 되었다.

미국 생활을 하며.. 그 안에서도 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난 일, 미국 엄마가 생기게 된 일,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친구와 다시 만난 일, 생애 최고의 등산, 독립일, 크리스마스 파티, 다시 돌아갔을 때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된 기회 등 평생 못 잊을 추억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비행을 가고 싶었던 SFO, LAX  


2. 요가 Yoga  

호주 인턴쉽과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공계 전공 특성상 대부분 석박사 과정을 밟는다. 전공 친구들은 연구실에서 일하거나 의학 관련 회사에 취업을 하거나 시험공부를 했다.

하지만 미국과 호주를 갔다 온 나는 취업 혹은 석사 둘 다 과연 내가 행복한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한국에 온 후 상황은 같았다. 취업 혹은 석사.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연구직은 전혀 아니기에 취업을 택했다. 하지만 취업준비는 쉽지 않았고 끊임없는 서류 탈락과 면접 탈락을 했다. 전공을 살려 제약회사나 의학계열 해외영업직을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그리고 취업을 거의 포기했을 때, 항상 미래의 비전을 앱과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마지막으로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지원한 구글에 최종 합격을 했다.

구글을 다니며 원래 운동을 좋아했기에 근처 운동을 찾던 중 이사 온 집 앞에 요가원을 발견했다. 주 2회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수련을 했다. 업무와 상사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 요가는 정말 큰 위로와 힘을 주었다. 요가를 수련했기에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요가를 더 수련하며 나를 위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삶을 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퇴사 후, 2개월간 준비해 피트니스 대회를 나가고 요가 수련을 계속했다. 그 후 시작한 요가 브랜드에서의 일은 일을 가는 것이 힐링 하로 가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월급은 반 이하로 낮아져 월세와 원래 라이프스타일은 모아둔 자금으로 충당을 했다.


3. 카타르항공 Qatar Airways 

요가를 하며 키운 내 안의 힘으로 오랜 꿈이었던 승무원을 다시 도전해나갔다. 8년 동안 준비한 승무원, 그동안 떨어진 20여 개가 넘는 항공사들과 면접들. 그리고 합격한 카타르항공! 꿈꾸던 승무원이 되었다!

한 5년 정도는 살 것을 계획하며 137kg의 짐을 가지고 카타르의 수도 도하로 떠났다. 드디어 트레이닝이 끝나가고 세계 여행을 시작하려던 찰나,

코로나로 국경이 막혀 비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한국에 오게 되었다.

카타르의 경험으로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전 세계로 비행은 못했어도

지금까지 이 모든 과정이

이미 세계여행이었단 것을,


지금도 우리는 여기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더 나은 자신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차린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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