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과 내면의 방어기제를 만나는 시간
상담학을 전공했지만, 가장 어려운 내담자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학부 시절, 상담 이론과 기법을 배워갈수록 한 가지 깨닫게 되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진실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이었다.
전공만 상담학도였지, 정작 내 안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직면(Confrontation) 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직면이란 단지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가 무의식에 눌러놓았던 진실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결코 쉽지 않은 심리적 작업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감정, 진심, 혹은 회피하고 싶었던 자기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래서 직면은 종종 아프고, 벅차고, 두렵다.
정신분석학에서 자아(Ego)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작동시킨다.
방어기제란, 불안에서 자신을 무의식적인 전략으로 일시적인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심리적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거나 스스로를 속이면서라도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의 일환이다.
그리고 크게 성숙한 방어기제, 미성숙한 방어기제, 신경증적 방어기제로 나뉘어 그 수가 15가지 이상이나 된다. 그러나 빈번하게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그걸 성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는 무의식에 갇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억압(Repression)을 중심으로 우리 마음이 어떻게 감정을 감추고 우회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억압 (Repression)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나 기억을 무의식 깊이 눌러두는 것이다.
마음속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나 기억을 무의식 깊숙이 눌러두는 방어 방식이다.
마치 감정을 지하실에 밀어 넣듯,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억압된 감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신체적 반응으로, 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 폭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며 삶 속에 충돌과 고통을 만들어낸다.
직면은 바로 그 억압된 감정들을 마주하는 것이며 이 작업은 감정의 어둠을 조심스레 조명 아래 꺼내 놓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직면을 고통스러워하며 이는 상담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담자는 동행자다.
동행자란, 상담자와 내담자가 맺는 상호 신뢰의 약속 안에서,
내담자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그 아픔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거나 상담을 전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상담자로서 나를 돌볼 용기를 내는 중이다.
이전부터 무의식의 층위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전공 외 범위에서 정신분석학 서적을 읽기도 하고,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을 공부해 나갔다.
그리고 내 아픔을 성찰의 글로 적으며, 이제는 전문가로서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내고 있다.
이 글도 그런 용기의 일부다.
오늘도 작은 화면 앞에 앉아, 마음의 언어를 꾹꾹 눌러 타이핑한다.
조금 서툴고, 아직 부족한 상담자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도 성숙을 향한 과정이라 믿는다.
「그런 하루가 오면, 지금 이 글이 깊은 의미가 되어주겠지.」
조금씩 성숙해지고, 여물어 가는 그 과정 속에서— 이런 진심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이 글에 오래 머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같이 걸어가며, 한 발씩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