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9시가 되면 ‘이상한 복지센터’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느리고 특별한 순간들로 가득했던 하루들이 모여 어느덧 1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뒤돌아보면 결국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상한 복지센터’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인연들을 만났고, 어떤 어르신은 조금 더 길게, 또 어떤 어르신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유성을 가지고 있듯, 어르신들 역시 각자의 색깔을 빛내며 삶의 막바지를 걷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순간들을 함께했기 때문일까요. 함께하던 어르신께서 진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면, 매번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아쉬움과 어르신이 걸을 앞으로의 길이 조금은 더 향기롭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며칠 후 요양원으로 가시게 된 맹 어르신과의 인연도 그러했습니다.
맹 어르신과의 첫 만남은 꽤 강렬했습니다.
2023년 7월 10일, 폭우가 쏟아지던 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적이 드문 사무실로 한 어르신이 들어오셨습니다. 노란 우비를 입고 우산을 한 손에 꼭 쥔 어르신은 문을 열자마자 귀가 따갑도록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세찬 빗소리조차 모두 묻혀 버렸습니다.
“여기!!! 도둑년!!! 도둑 요양보호사 나와!!! 어서!!! 어디 숨었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저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어르신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백발에 샛노란 비옷, 하얀 장화, 그리고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새까만 선글라스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께 다가갔습니다.
다가오는 저를 본 어르신은 다시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년아!! 도둑년 요양보호사 어디에다 숨겨주었느냐!”
아무래도 치매 어르신 같았습니다. 그렇게 판단하자 어르신의 고함도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복지인이라면 이런 상황쯤은 괜찮지’ 하는 생각으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어 저도 모르게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치매 어르신과 큰 문제없이 이 난관을 해결하게 해 주세요.’
기도의 효과였을까요.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던 어르신이 갑자기 해맑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웃으며 소통의 문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르신, 어떤 도둑년이 어르신 물건을 훔쳐 갔나요? 혹시 전화번호를 알고 계세요? 전화번호를 알아야 빨리 찾을 수 있거든요.”
제 말을 들은 어르신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노란 비옷을 벗고 어깨에 메고 있던 지갑 속 휴대전화를 꺼내 주셨습니다. 전화번호부에서 ‘요양보호사’를 검색하니 열두 명이 넘는 이름이 떴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요양보호사가 바뀌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최근 통화한 번호를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네, 여기는 이상한 복지센터장이고, 저는 센터장 금옥이라 합니다. 맹 어르신께서 이곳에 와서 요양보호사를 찾고 있어서요. 그런데 최근에 통화내역을 보니 선생님하고 통화한 내역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근래에 어르신을 돌봤던 일이 있으십니까?”
“아이고, 거기가 어디라고 가셨대요. 말도 마세요. 어르신께서 만두하고 양파 훔쳐 갔다고 도둑년이라고 오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요. 어르신한테 무슨 일 있나요?”
“무슨 일은 없습니다, 어르신을 관리하고 계신 센터장님께 연락하셔서 빨리 요양보호사를 보내주라고 하세요.”
목소리가 상냥한 요양보호사는 난감해하더니 본인이 센터장한테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싶었지만, 집 주소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어제 이상한 복지센터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와 통화한 내역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제 되었다 싶어 다시 주민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마천2동 주민센터이지요? 저 이상한 복지센터장 금옥입니다. 혹시 맹 어르신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아이고, 센터장님.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시래요. 아! 맹 어르신이요. 알고 말고요. 그런데 맹 어르신이 지금 센터장님 센터에 계시는 거예요?”
주민센터 직원은 바로 기초생활수급자이신 맹 어르신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선 직원에게 아침에 이상한 복지센터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한 후 어르신 집 주소를 요청하였습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어르신 댁을 알려 주었고, 어르신을 차에 태우고 안내받은 주소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치매가 있으셨지만 맹 어르신은 집에 누가 오면 대접하는 예의를 잊지 않으시는 어르신이셨습니다.
“센터장, 점심시간 되었는데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요,”
“아닙니다. 사무실 일이 바빠서 가봐야 합니다. 어르신 혼자 멀리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저는 어르신에게 절대 밖에 혼자 나오면 안 된다고 간곡히 부탁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맹 어르신을 담당하고 계신 k 재가 복지센터장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k 센터에서는 맹 어르신을 꽤 오랫동안 보살펴 왔다고 말씀하셨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센터장님, 사실 좀 힘들었어요. 참 좋으신 어르신인데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맹 어르신은 날이면 날마다 요양보호사가 뭘 훔쳐 갔다고 하면서 3일에 한 번씩 요양보호사를 교체했어요. 휴…. 저희도 모시고 싶은데 이제 요양보호사를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이상한 복지센터에서 좀 해주실 수 없을까요? ”
그렇게 ‘이상한 복지센터’와 맹 어르신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맹 어르신 댁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에게는 절대로 가방을 들고 가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자 도둑이라고 의심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2년 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중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맹 어르신의 치매 증상이 악화하였고, 환청과 환각이 심해져 집에서 요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맹 어르신은 요양보호사에게 갑자기 매일매일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여 혼자 있기 너무나 무섭다며 계속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워서 혼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맹 어르신은 혼자 살고 계셨기에 여러 차례 요양보호사가 잠을 함께 자 주기도 하고 서비스 시간을 밤 20:00~23:00로 서비스를 진행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하였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가고 어르신 혼자 아파트에 남게 되면 여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빨리 이사 가라고 한다는 환청과 환각이 계속되어 다시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알람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화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상한 복지센터와 인연을 이어 나간 지 벌써 2년 3개월이 되던 때입니다.
지금까지 맹 어르신은 결혼을 하지 않으시고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예전에 압구정에 살 때 가까운 지인에게 10억을 떼었다는 그것과 수양아들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증세가 점점 심화하자 결국 맹 어르신에게 핸드폰을 받은 후 수양아들 전화번호를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핸드폰에는 수양아들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이상한 복지센터 센터장 금옥입니다. 맹 어르신 수양아들 맞습니까? “
”네, 맞습니다. “
”아드님 맹 어르신께서 급속도로 치매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여 도저히 어르신을 3시간으로 서비스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요양원에 입소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수양아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맹 어르신을 용인에 있는 요양원으로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맹 어르신은 요양원에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소풍 가는 소녀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짐을 보자기에 차곡차곡 싸 두시며 “냉장고는 아들이 가져가고, 장롱과 옷은 요양원에 가져갈 거야”라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2025년 10월 어느 좋은 날 오전 11시가 되면 맹 어르신은 요양원으로 가십니다.
누구나 동백꽃처럼 화려한 시간이 있고, 또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맞기도 합니다. 맹 어르신께서 요양원에 가셔서 잘 적응하시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저 역시 ‘이상한 복지센터’와 맹 어르신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과 어르신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교차하는 2025년 가을의 어느 날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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