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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November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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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20. 2024

시의적절

11월 20일





딸아이와 잠자리에 들기 전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  그림책을 읽었다. 아름다웠던 거인의 정원에서 아이들이 사라지자 정원에는 따뜻한 봄과 꽃들이 사라지고 추운 겨울과 눈바람만 가득했다. 인은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아름답게 가꾸어도 아이들이 없는 정원은 봄과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을. 높게 만들어 쌓았던 울타리를 없애고 아이들이 다시 정원을 찾아오자 거인의 정원에 다시 아름다움이 찾아왔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허락할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내고 드러낸다. 종종 언제 그 아름다움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조바심으로 아름다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는 한다.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은 과연 언제 일까?


김승호 회장은 자신의 저서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서 중용(中庸)에 대해 '때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업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선수다.
사업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고수다.
하지만 선수나 고수도 사업하는 때를 아는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가장 좋은 때, 때는 아는 것'... 그때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표현들을 들을 때마다 '시의적절'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시의적절의 사전적 뜻은 "그 당시의 사정이나 요구에 아주 잘 맞음"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의 잔디를 관리하려면 잔디가 적당히 자랐을 때 깎아야 한다. 또 군데군데 잡초가 보이면 뿌리째 뽑아야 잡초가 번지지 않아 잔디를 잘 관리할 수 있다. 그렇게 잔디를 잘 관리하려면 잔디가 얼마만큼 자랐을 때 깎아야 가장 시의적절한 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잘 가꾸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때'를 알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사랑을 갖고 잘 지켜보고 가꾸어 주어야 한다.


김승호 회장이 말한 '사업하는 때를 아는 것', '중용이란 때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나만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때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의 정원을 잘 가꿀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잘 지켜보고 나의 정원에 잔디는 얼마만큼 자랐을 때 깎아줘야 적당한지 알아야 한다. 불안이나 두려움, 우울등 부정적 생각들이 깊게 뿌리내려 잡초처럼 번지지 않도록 그때그때 뽑아줘야 한다. 잡초를 뽑아낸 자리에 어떤 예쁜 꽃과 나무를 심어 잘 자라게 할 것인지, 그 꽃과 나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며 잘 키워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쁜 꽃이 피는 날도 올 것이고, 나무들이 열매를 맺어 탐스럽게 빛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정원에서 꽃이 피고 탐스러운 열매들이 열린 장면들만 바라보며 나도 저런 정원을 갖고 싶다 소망했는지도 모른다. 그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 사람의 정원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들인 노력과 정성, 시간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시의적절함을 알기 위해서는 잘 지켜보아야 한다. 가끔은 지치고 지루한 날 들이 계속되어 이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나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생각으로 사랑으로 기다리고 가꾸어주어야 한다. 거인의 정원이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사랑'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존재 자체가 사랑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거인의 마음만이 오직 정원을 아름답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이따금 '아이를 좀 더 빨리 낳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내 몸이 좀 더 젊었을 때 낳았다면 아이를 낳는 게 덜 힘들었을 수도 있고, 좀 더 에너지 넘치게 아이와 놀아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시의적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나에게 가장 좋은 때에 나의 아이가 왔다는 생각을 하면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는 것이다. 좀 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면 아이와 더 잘 놀아줄 수도 있고 아이를 낳고 기를 때도 에너지가 더 넘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덜 성숙해서 아이를 키우는데 미숙했을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다 보면 결국 지금이 나에게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정원을 잘 보살펴주고 지켜보며 사랑으로 가꾸어 주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만약 내가 초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고개 숙여진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시의적절은 '지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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