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My November 2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씨 Nov 22. 2024

성난 사람들

11월 22일






운전을 하기 시작한 건 5년 전쯤이었다. 장롱 면허를 10년 넘게 갖고 있다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운전을 시작했다. 사실 운전할 필요를 못 느껴서였기도 하고 막상 도로에서 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하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엄마가 어깨수술을 받으면서였다. 길을 걷다 넘어져서 어깨뼈가 부서진 엄마는 어깨에 쇠판을 대고  조각을 맞추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재활기간 동안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이참에 엄마차로 운전을 시작해보자 싶었다. 신랑과 주말에 학교 운동장에서 한번 연수를 하고 바로 혼자 도로 주행을 시작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혼자 차를 주행해서 갔다. 뒤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크게 붙이고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공포의 부산 도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엄마의 병원이 있는 곳은 부산 시내에서도 복잡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천천히 달려 나갔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병원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려보니 등뒤에는 땀이 흥건했고 사타구니 사이가 쥐가 날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어쨌든 혼자 해본 나의  도로주행이 무사히 끝났고 나는 자신감을 얻어 그 뒤로도 여러 곳을 운전해서 다녔다. 사람들이 출근하고 비어있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연습도 하며 차와 친해졌다. 그 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운전을 시작한 것이라 생각될 만큼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뿌듯했다.


흔히 운전자는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나보다 빨리 가는 '미친놈',

나보다 천천히 가는 '답답한 놈',

그리고 '멀쩡한 나'.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베스트 라이버가 되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를 운전을 하며 푸는 사람도 있고, 범사에 조심하자 하는 조심조심형도 있다. 도로 위에서 그 차가 가는 모습을 보면 그 운전자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대략 짐작이 가고는 한다. 특히 출퇴근시간에는 다들 예민해져 있어서 인지 도로 위가 성난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마치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차량처럼 칼치기를 해서 위험천만하게 운전해 나가는 운전자를 보면 신랑은 늘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급하면 집에서 좀 일찍 나오지 이 사람아."


맞는 말이지만 그 사람도 일찍 나올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사실 나의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로 위에서 화가 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없고, 자신의 삶에 여유가 없다. 내 삶을 하루하루 살아나가기도 벅차고 바쁜데 도로 위에 일면식도 없는 내 눈에 답답한 사람들의 입장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운전을 하며 난폭운전자를 한 번씩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화가 솟아오르고는 한다.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차선변경을 해서 무작정 끼어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나의 깊은 화를 담아 클락션을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곧 그런 나의 모습을 후회한다. 클락션을 그렇게 세게 울리고 나서 그 상대의 차가 알아 들었다면 그나마 마음이 좀 낫지만, 사실 그렇게 운전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 클락션의 울림으로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것 같았다. 깊은 화남으로 울린 클락션과 내 감정의 요동은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있던 내 아이를 놀라게 하거나 그 소리에 의해 나의 감정이 더 예민하고 격해짐을 느꼈다. 그 뒤로 가능하면 운전하며 생기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격한 말을 하거나 클락션을 크게 울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결국 내가 내뱉는 말들과, 클락션 소리, 감정의 격노는 메아리처럼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으로 인해 나의 소중한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힘들지만 그런 순간을 만나면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먼저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은 상황에 감사하고, 상대차량의 운전자를 위해 기도하려 한다. 그 사람의 하루에 평안이 깃들기를 축복한다고. 이렇게 하고 나면 화를 내고 클락션을 크게 눌려 보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통쾌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 <성난 사람들>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워킹데드로 이미 유명한 스티븐연 주연작이라 망설임 없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었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BEEF인데, BEEF란 속어로 '불평'이나 '불만'을 뜻한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는 BEEP(자동차 경적소리)와도 유사하다. 드라마는 이 자동차 경적음으로 인한 보복운전으로 시작된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도급업자 스티븐연과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앨리웡, 이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한 사람의 행복이 결코 '성공'이나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 드라마가 보복운전의 끝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화난 상태에서 난폭운전자를 만났을 때 머릿속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을 현실화시켜 버린 드라마 같다. 결국 갈 때까지 가고 마는 이 보복운전의 끝은 두 사람 내면의 삶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 분노, 좌절등을 서로에게 거울처럼 비춰준다.



우리가 타인의 삶을 통해서 마주하는 진실은 타인의 부정적인 모습이 결국 내 모습이라는 아이러니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 심지어 마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막히는 도로에서 마주친 앞차 운전자들 또한 모두 예외 없이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이는 반응은 곧 우리 내면의 결점을 그대로 비춰줍니다. 타인이 각자의 삶을 살도록 놓아두세요. 우리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자신 뿐입니다.

<타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캐런 케이시-



사실 우리의 현재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생각을 바꾸면 충분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둘러보면 이 문제가 문제점이라고 인식한 나의 생각을 바꾸면 대개 쉽게 해결된다.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옳은지 의심해 보고, 과거나 미래에 갇혀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며, 우리는 삶에서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빛나는 성벽>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미국의 소설가 델마톰슨은 2차 세계대전중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훈련에 나가고, 46도가 넘는 통나무집에서 종일 더위와 싸우며, 창밖에는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곳은 감옥과 다름없다며 차라리 형무소가 나을 것 같다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로부터 돌아온 편지에는 단 두줄만이 쓰여있었다.


" 감옥 문 창살 사이로 밖을 바라보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흙탕물을 바라보고, 한 사람은 반짝이는 별을 바라본다. "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자신이 처한 상황의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며 그녀는 대자연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베스트셀러 <빛나는 성벽>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내 생각만 변했다. 생각을 돌리면 비참한 경험이 가장 흥미로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는 매 순간 성난 사람들로 살아갈지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부디, 스스로를 성난 사람들의 분노와 불평 속으로 밀어 넣지 말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