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잠들지 않는 밤 거실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잠든 고요함 속에서도 거리의 불빛들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득, 까만 밤하늘에 떠있는 별빛들이 그리워졌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가던 시골 친척집이 있었다.
부산에서는 1시간 남짓 거리였지만 명절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1시간을 3시간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골 친척집에 가는 것이 참 좋았다.
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강 씨 집안 묘비가 크게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을 쭉 따라 들어가면 왼쪽으로 나란히 세 채의 집이 지어져 있다. 집 앞에는 호수가 있었고, 세 채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뒷산은 자연을 수놓은 병풍처럼 멋들어졌다. 큰집과 작은집 마당의 한쪽에는 외양간이 있었고, 집 앞 호수에는 오리들이 놀고 있었다. 외양간에서 나는 소똥냄새와 닭백숙 냄새가 섞여서 갈 때마다 늘 묘한 고소함이 풍겨져 나왔다.
큰집과 작은집 그리고 맨 안쪽에는 큰집에서 운영하시는 가든이 있다. 동네에서 꽤나 유명했던 이 가든은 오리백숙과 닭백숙 맛집이었다. 원래 집 세 채 중에 한 채는 나의 친할아버지댁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셨고 부산으로 이사를 나오시면서 큰집에서 집 한 채를 고쳐 백숙집으로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동생은 이곳에 가면 마당에 있는 자갈돌을 주워 호수로 돌 수제비 띄우고는 했다. 어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깔아 두고 윷놀이를 했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이곳은 무서워지기는커녕 더욱더 예쁘게 느껴졌다. 얇은 이불을 깔고 대청마루에 누워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나에게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풀벌레 우는소리는 마치 고요함 속에서 웅장하게 울리는 클래식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귀뚜르르-귀뚜르르- 쓰윽쓰윽- 휘릭휘릭-
그렇게 풀벌레소리를 자장가 삼아, 별들을 이불 삼아 잠들었던 그 밤이 참 좋았다.
대만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야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나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맞닥뜨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상상 속 내 모습은 예쁜 정장을 입고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출근을 한다. 해외바이어들과 미팅을 하고 잦은 해외출장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화려한 커리어우먼을 꿈궜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신입사원으로 뽑히기에는 30대 초반이었던 내 나이가 많았고, 경력직사원으로 뽑히기에는 사회경력이 부족했다. 이력서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 중화권에서 학위를 받아왔음에도 다시 중국어 자격시험을 쳐야 했다. 영어가 필수인 시대에서 토익점수와 영어말하기 점수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목록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하고 돌아왔지만 졸업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날들을 보냈다.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일본어와 스페인어도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 써냈다. 겨우 인사말 정도 하는 수준이었지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이력서의 공백들을 메꾸고 싶었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사이의 거리를 서서히 좁혀가며 구직을 한 결과 부산의 한 중소기업 무역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게 된 나는 입사교육을 받으며 유레카를 외쳤다. 중국, 동남아, 중남미가 주요 거래처이기에 잦은 해외출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 바로 여기다!' 딱 내가 상상하며 그려왔던 모습의 일인 것 같았다. 중국어 전공을 살려 실무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했다.
무역 관련 업무가 생전 처음이었지만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나의 주요 업무는 견적송장을 작성해 바이어들에게 발송하고, 구매요청이 들어오면 제품목록을 공장으로 발송했다. 물건이 해외 바이어에게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결제요청 메일을 보내는 등의 일반적인 서류 업무들이었다. 새로운 바이어와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기존의 히스토리대로 해내면 되는 것들이었다. 입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나자 업무는 금세 적응되었다. 그러나 내가 정작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이 회사의 회식문화였다. 2세 경영자인 사장님을 필두로 거의 매일이 회식의 연속이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당연히 회식하는 날이다. 문제는 신입사원들이 너무 자주 들어오고 금방 그만둔다는 점이었다. 과장님이 기분이 좋아서 회식, 비가 와서 회식, 바이어가 물건을 받고 결제대금을 송금해주지 않아 속상해서 회식, 전지적 사장님 시점에서 모든 날들이 회식해야 할 이유로 가득했다. 이건 뭐 회식을 하려고 회사에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했던 건강검진에서는 40이 정상범위인 간수치가 300까지 치솟았다. 신입사원의 패기였는지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를 둔 자신감이었는지 술 앞에서 자만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회사의 문제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의 재정적인 문제로 부채는 더 늘어났고 결국 본사를 제외한 다른 공장들을 축소해야 했다.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해외출장은 고사하고 직원들의 월급도 미뤄지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사장님의 인성이었다. 회사가 힘든 시기임에도 늘 회식을 강요하며 직원들을 하수인 부리듯이 막대했다. 특히 남자직원들에게는 폭행과 폭언을 일삼기도 했다. 나와 입사동기였던 남자직원도 회식자리에서 사장님에게 뺨을 맞은 이후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꿈꿨던 이상적인 모습에만 눈이 멀어 회사의 겉모습만 보고 입사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나도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도시의 수많은 불빛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선명하게 보이지 못하게 한다. 도시의 수많은 소음들은 땅의 풀벌레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 나는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모습에 부합하려 스스로 화려한 불빛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나의 조명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진짜 '나'의 빛을 잃어갔다.
힘들게 유학 뒷바라지를 해준 엄마에게 좋은 직장에 취업해 보답하고 싶었다. 늘 엄마 곁을 지켜주던 이모들에게도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남동생에게도 든든한 누나가 되어주고 싶었다. 모두에게 잘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를 억압하고 짓누르던 그 모든 것들은 다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가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댄다.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엄청 큰일이 있었어. 글쎄 지훈이가 내가 오늘 끼고 간 산리오 반지가 너무 좋았나 봐. 그래서 자기 가방에 몰래 넣은 거야. 그래 가지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난리가 났어."
"그래? 반지 잃어버려서 하린이 많이 놀랐겠네?"
"응. 내가 엄청 소중하게 아끼는 반지잖아. 근데 선생님이 나한테 사과하라고 해서 지훈이가 엄청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지훈이가 사과하고 나서 하린이는 뭐라고 했어?"
"지훈아 내가 산리오 반지를 유치원에 갖고 와서 네가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는 있어. 그렇지만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는 건 나쁜 행동이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작고 동그란 입을 오물조물 거리며 말하는 아이가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도토리를 양 볼가득 물고 있는 다람쥐 같은 아이의 두 볼이 미치도록 귀엽다. 조잘거리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딸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이 반짝인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하루의 이 순간이 눈부시게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