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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y 09. 2024

센과 치히로의 지우펀(九份)

ep.8



대만의 지우펀(九份)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의 배경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한다. 대만 영화 <비정성시>, 한국드라마 <온에어>의 촬영지로 이미 유명한 관광지였다. 그런데 나는 세 작품 모두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워낙 유명했던 터라 극 중 나오는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이름들만 대략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에 빠져서 딸아이와 함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게 되었다. 딸아이는 영화가 시작되고 치히로의 아빠엄마가 돼지로 변하고나서부터 대성통곡을 했다. 그만보고 싶냐고 물으니 아빠엄마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꼭 봐야겠다며 손에 땀을 쥐며 영화를 보았다. 엄마아빠는 돼지로 변하면 안 된다며 내 목을 잡고 우는 딸아이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훌쩍였다.


딸아이는 엄마아빠가 돼지로 변할까 봐 손에 땀을 쥐며 보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대만의 지우펀이 떠올라 그리움에 휩싸였다. 예전의 사진들을 뒤져 지우펀에서 찍은 사진 몇장을 아냈다. 








언어중심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지우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한가득 탄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갔다. 버스에 내리고서도 꽤 걸어 올라갔던 것 같다. 해 질 녘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내릴 때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홍등이었다. 좁은 골목을 수놓은 홍등이 이곳에 온 우리를 유혹하는 듯 보였다.


대만에 올 때 이모가 사준 캐논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어머, 이건 찍어야 해.' 하는 포토존들이 걸음걸음 나타났다. 손을 힘껏 높게 뻗어 셔터를 눌렀다. 최대한 골목전체가 나올 수 있게 쭈-욱-.




사진첩에서 찾아낸 그날의 지우펀



그 분위기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사진에 다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람들로 가득 찬 좁은 골목길이 계속 이어졌지만, 지우펀의 거리는 낭만적이고 매력적이었다. 그때 내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지우펀을 방문했었더라면 아메이 차주관(阿妹茶樓)에도 한번 들러보지 않았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며 '이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치히로의 이름을 유바바가 뺏어가고 센이라고 불려졌을 때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치히로가 대견스러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귀 기울여라.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마라.
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중에서-



지우펀(九份)은 오래전 아홉 가구만 살았다고 한다. 먼 곳에서 장을 봐오면 아홉 가구 분량씩 나누어 가져갔다고 해서 지우펀이 되었다고 한다. 장소에도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듯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이름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대만을 간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만에 있는 동안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대만에 갔지만, 되려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대만은 나에게 나머지세상의 문을 열게 해 준 곳이었다.


그때는 몰랐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들이었다.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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