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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그린 콜라병과 수프 그림은 현재까지도 최고가 경매가 이루어지는 예술작품이며, 많은 전시장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입니다. 이로 인해 앤디 워홀이 만들어낸 코카콜라병 모양은 전 세계에 보급된 저렴하고 패스트푸드 시장을 장악한 미국적 생산품이면서도, 고급문화를 대표하는 뮤지엄과 아트 옥션을 장악한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팝아트란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등장해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미술 운동입니다. 팝아트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에 내재한 과도한 주관성에 반대하며, 미술이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대량 소비사회의 풍경이었으며, 그들이 소재로 삼은 것은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과 같은 대량 소비 상품, 연재 만화, 신문 사진, 광고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을 재발견해 일반 시민에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스퍼 존스 등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인물은 워홀입니다. 워홀은 에드워드 호퍼와 함께 20세기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힙니다. 호퍼가 20세기 전반을 대표했다면, 워홀은 후반을 대표하는 셈이지요.
워홀이 대표하는 미국적인 미술이란 미국 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미술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다양한 이주민들이 세운 국가로, 종교적 자유를 얻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을 떠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동시에, 엘리트층이 주도하는 유럽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워홀의 성장기를 짧게 언급하자면, 그는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났는데요. 194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상업 미술을 공부한 후 잡지 및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 워홀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앤디 워홀’로 개명하고. 1952년 뉴욕의 휴고(Hugo)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2년 후 뉴욕의 로프트(Loft) 화랑에서 첫 단체전을 열 때까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와 보그(Vogue) 등의 잡지에서 상업 미술가로 일했으며, 밀러 구두 회사를 위한 광고 일러스트레이터, 오프 브로드웨이 극단을 위한 무대 디자이너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일했던 패션 잡지, 구두, 브로드웨이라는 배경들은 1950년대 미국 자본주의 시장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흔히 대중문화가 가장 발전한 사회라고 평가받습니다. 이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 온 대규모 인구가 존재했다는 점과, 미국 사회가 반(反)엘리트주의적 성향을 띠었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미국에서는 대중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며, 영화와 TV 등의 대중문화는 화려하게 발전해왔습니다.
20세기 들어 미술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추상파와 초현실주의 등 현대 미술은 지나치게 전위적이거나 과도하게 심오한 경향을 띠었고, 이는 대중과의 괴리를 초래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잭슨 폴록이 주도한 추상표현주의가 상당한 관심을 모았지만, 대중이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팝아트가 등장하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팝아트 작가들은 추상적인 소재가 아닌 구체적인 소재에 주목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화폭에 담아 미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려 했습니다. 존스는 미국 국기를,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겨 놓았습니다.
워홀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코카콜라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다양한 맛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기에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어려울 수 도 있지만, 어느 나라에 살던 어떤 계층에 속하여 있어도 우리는 늘 같은 콜라맛을 즐길 수 있는데요. 이것은 미국이 가진 대량 생산과 소비문화의 힘입니다.
대중문화와 결합한 민주주의적인 소비 방식인 것이죠! 워홀은 미국 문화가 지닌 가치를 잘 캐치해냅니다.
가장 미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앤디 워홀의 주요 모티브인 캠벨 수프 통조림과 콜라병은 미국 사회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와 소비 패턴의 주요 기호로 기능합니다.
워홀의 명성 덕분에, 워홀의 작품들이 전세계를 돌며 전시되고 대중들에게 회자 될때마다, 코카콜라와 같은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인식될 수 있는 대표적인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워홀은 상업 미술로 시작해 팝아트 운동을 주도했고,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미술을 대중화하는 데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부와 명성도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는 예술가들 또한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앤서니 E. 그루딘(Anthony E. Grudin)은 자신의 글 "A Sign of Good Taste: Andy Warhol and the Rise of Brand Image Advertising"에서
"워홀이 자신의 명작을 위해 차용한 코카콜라, 캠벨 수프, 브릴로의 모티브가 미국의 내셔널 브랜드임을 강조합니다....이 이미지들은 예술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고, 칠하고, 인쇄했습니다."
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는 워홀의 작품이 예술의 영역에서 뛰어난 광고 효과를 발휘하며 국가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코카콜라 병의 브랜드 이미지는 워홀의 작품을 통해 더욱 보편성을 획득했으며, 이는 일본 팝아트 작품에서도 코카콜라 병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루딘은 워홀의 작품을 팝아트의 완벽한 예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쓰인 요약이나 의역, 그리고 그 주위에 짜인 이론의 그물은 이 작품이 동시에 뜨겁고, 차갑고, 잔인하고, 재미있고, 생생하고, 지루하고, 슬프고, 터무니없고, 검소하고, 기억에 남고, 장난스럽고, 멍청하고, 독창적이고, 투박하고 등등."
이러한 묘사는 워홀의 작품이 단순한 소비재의 반복적 재현이 아니라, 현대 사회와 문화가 지닌 다양한 양면성을 드러내는 아이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