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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초이 Aug 11. 2024

추어탕 못 드세요?

추어탕


2013년 봄. 내 나이 서른여섯. 나는 둘째 아이를 가졌다. 첫째를 낳고 7년 만의 임신이었다. 임신 2개월이 지나갈 무렵, 음식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입덧의 시작이었다. 냉장고를 여는 것부터 곤욕스러워서 식구들 밥 차리기가 버거웠다. 나물을 무치거나 찌개를 끓이는 동안에 구역질이 나서 꾹 삼켜야 했다. 그리고 간을 보는 것은 엄두가 안나 대충 감으로 넣었다. 

첫째 때는 입덧을 시작하고 2주가 지나니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2주가 지나도 메슥거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24시간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 떠있는 배를 타고 있는 듯했다. 나는 한 달 동안 밥을 아예 못 먹었다. 그나마 주스와 과일을 조금 먹었는데 그마저도 게워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서 입덧 완화제와 포도당 링거 수액을 맞았다. 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아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는데 눈이 부셔서 뜨지를 못했다. 방에 커튼이 다 쳐져있어 컴컴한데도 눈이 따가웠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응급실에 갔다. 의사는 영양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대상포진이 눈으로 온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임신 중이라 치료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수액을 맞았더니 눈 아픈 게 덜했다. 의사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보라고 했다. 병원에 더 있는다고 달라질 게 없어 집으로 왔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했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 나는 누워있다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추어 아이의 영어학원 가방을 챙겨 들고 학교로 갔다. 그리고 아이와 같이 학원 버스에 올랐다. 일주일에 세 번, 아이와 학원에 같이 다닌 지 반년정도 되었다. 10여분을 타고서 학원에 도착했다. 아이는 수업에 들어가고 나는 빈 강의실에 있었다. 종일 빈속이라 기운이 없었다. 이대로는 쓰러질지도 몰랐다. 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근처에는 식당이 많았다. 혹시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지 살펴보기로 했다. 수업은 한 시간 반동안 진행되어 시간은 충분했다. 


스무 개 남짓한 식당이 늘어선 골목을 천천히 돌았다. 평소에 좋아하던 돼지갈비도 순두부찌개도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서 간판을 보니 추어탕을 파는 식당이었다. 냄새는 참을만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먹을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일단 들어가 보자. 도저히 못 먹겠으면 돈 내고 나오면 그만이지.' 하고 용기를 냈다. 식당 안은 깨끗하고 조용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뒤라 한 테이블에 손님 두 명만 있었다.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추어탕은 두 종류가 있었다. 미꾸라지가 통으로 들어있는 것과 갈아서 들어있는 것. 나는 갈아서 형태가 없는 것으로 주문했다. 공깃밥과 밑반찬이 나왔다. 콩나물무침과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생부추와 양파와 고추, 쌈장이었다. 식당이 넓어서 환기가 잘 되어서 그런지 바로 앞에 음식이 있어도 괜찮았다. 그래도 밥뚜껑은 열지 못했다. 직원분이 뚝배기를 들고 와서 내 앞에 두며 말했다.  

"부추 넣어서 드세요. 더 필요하면 말씀하시고요." 

"아, 네."  '아, 부추 넣어서 먹는 거구나.'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추어탕과 마주했다. 국물은 색이 진한 된장찌개 같았고 냄새도 비슷했다. 밥 먹는 게 뭐라고 긴장되어 숟가락을 쥔 손이 미끄러웠다. 국물을 숟가락에 묻혀 혀로 핥아보았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부드러웠다. 이번에는 국물과 잘게 썰린 시래기까지 한 숟가락 먹었다. 먹을만했다. 조심스럽게 밥뚜껑을 열었다. 새하얀 쌀밥이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순간 밥 냄새가 확 나서 멈칫 헸다. 마음을 가다듬고 밥 한 숟가락을 퍼서 추어탕 국물에 적셔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었다. 한 달 만에 먹는 밥이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밥 1/3 공기와 추어탕 반그릇을 먹었다. 한동안 먹은 게 없으니 위가 줄어서 배가 엄청 불렀다. 오랜만에 든든하게 먹었으니 잘 소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수업을 마칠 때까지 주변에 공원을 걸었다. 이후로 나는 집에서도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이토록 소중한 일이라니. 매일 감사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동네에 추어탕을 파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내가 밥을 잘 먹으니 뱃속의 아이도 무럭무럭 자랐다. 그 해 겨울 나와 둘째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다.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기온이 30도가 넘고 에어컨은 종일 돌아간다. 여름에 보양식으로 내게는 추어탕이 일등이다. 그러나 남편과 첫째는 추어탕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와 둘이서 말복에 추어탕을 먹기로 했다. 먹으면서 나와 뱃속에 있던 둘째와 추어탕의 첫 만남을 들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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