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아빠는 방송국에서 교대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낮에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많았다. 아빠와 보낸 시간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같은 동화책을 수도 없이 읽어주셨던 아빠 목소리다. 나중에는 책을 외우셨는지 책을 보지 않고도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러면 나는 아빠 정말 대단하다며 또 읽어달라고 했고 아빠는 그러자며 같은 동화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주셨다. 아빠와의 시간에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섯 살 때의 이 기억만은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가족은 총 7명, 엄마, 아빠, 내 위로 언니 오빠가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두 살 터울이었던 장난꾸러기 오빠와 나는 하루종일 밖에 나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늦게 들어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들은 날도 셀 수 없다. 길에 홀로 남겨져 있던 새끼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자고 졸랐던 일,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끄럼틀이며 그네를 타며 술래잡기하던 일, 더 어릴 때는 과수원 비닐하우스며 나무를 타고 놀았던 일, 손주 주려고 멀리 떨어진 시골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 왔는데 맛없는 것만 사 왔다며 투정 부렸던 날들, 전화 거는 법을 몰라서 전화기를 앞에 두고도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못해 슬펐던 일 등. 시골의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부모님의 안전한 테두리에서 정말 마음껏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사춘기가 되면서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면서부터는 부모님과의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는 설, 추석,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등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빠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조카를 중심으로 한 만남이 간혹 있었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집과 회사밖에 몰랐던 아빠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할머니를 모시느라 자유롭지 못했던 엄마와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한 첫 번째가 '여행'이었다. 엄마 아빠와 여행을 간 게 언제였을까?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만 떠오를 뿐이었다. 레오와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곳을 가게 되면 시댁, 친정 부모님과 함께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생각만 하지 말고 진행해 보자 생각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너무 맘에 들어 매년 찾게 되었던 제천의 리조트를 예약했다. 산속에 위치해 있던 리조트는 안에서 즐길 거리가 풍성해 호캉스를 즐기기에 최고의 숙소였다. 점심 즈음 도착한 우리는 숙소 체크인 전에 스파를 먼저 이용했다. 부모님이 수영복을 입은 것이 얼마만이었을까? 엄마는 교회 성도들과 발리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아빠는 바닷가와 계곡에서 물놀이를 한 것을 제외하면 처음이었으리라. 수영복은 나와 레오가 미리 부모님 것을 한 벌씩 더 챙겨갔다. 처음엔 무슨 수영이냐며 손사래를 치던 부모님도 물에 들어가 온천을 즐기니 너무 좋다며 즐거워하셨다. 숲 속에서 이렇게 스파를 즐기는 것을 즐기시는 것 같아 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진도 여러 컷 찍고, 점심 즈음이 되어 매점에서 간단한 스낵을 주문했다. 스낵바인지라 간단한 음식들이었다. 순대, 떡볶이, 소떡소떡, 어묵탕 그리고 맥주와 물을 주문했다. 주로 집밥을 드시기에 이런 분식류를 입에 맞아하실까 걱정했는데, 떡볶이가 참 맛있다고 하신다. 발은 물에 담근 채 수중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며 떡볶이를 먹는 이 순간을 좋아해 갈 때마다 고정 코스였는데, 떡볶이를 맛보며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렸다. 이게 뭐라고. 한 번을 함께 못했을까?
스파를 마치고 엄마와 함께 사우나를 하면서 등도 밀어 드리고 개운하게 씻은 뒤 숙소로 향했다. 몇 년 전 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했던 엄마는 걷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후로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숙소는 트윈 침대가 있는 전망이 좋고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린 큰 방과 안쪽에 더블침대가 있는 방 그리고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숲 전망의 큰 방을 부모님께 내어 드리고 우리는 작은 방을 썼다. 온전히 각자의 침대를 쓴 일이 있으셨을까? 처음 이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면서 잠을 너무 잘 자서 침대 매트리스를 시몬스로 바꾼 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어두면 바깥에서 산바람과 새소리가 들리는 숲 속인지라 숙면에도 힐링에도 최고의 숙소였다. 베란다에 수영복을 널어두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뒤 주변 산책도 하고 저녁을 예약해 둔 바비큐 장으로 갔다. 항상 웨이팅이 있어 먹기 힘들다는 금돼지 식당에 납품하는 고기를 파는 리조트의 바비큐 식당은 예약이 정말 치열했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예약 오픈 날 신청을 해 성공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달빛바비큐였는데, 지금은 더그릴 000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비큐 예약 타임은 5시와 7시가 있었는데, 달빛바비큐를 즐기기에는 7시 타임이 제격이다.
바비큐와 산책, 아침 조식 뷔페까지 풀코스 호캉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엄마가 너무 아쉬워했다. 하루만 묵는 게 못내 아쉬우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먼저 댁으로 출발하고 우리도 서울로 출발했다. 2박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루만 묵었던 것은 이틀이라는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낼 자신이 아직 없어서였다. 엄마는 잔소리가 정말 많은 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잔소리' 다른 말로 '애정의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자랐던 터라 다 큰 지금도 엄마 보시기엔 내가 어린애 같은지 그렇게 잔소리를 하신다. 스스로 결정해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려서부터 시켜서 무언가 하는 것을 싫어했다. 공부를 하려다가도 그에 앞서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한 반항심이 생겼다. 내가 하려던 것을 시켜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였다. 이러한 성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도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먼저 필요한 일을 기획해서 하곤 했다. 아무튼 엄마는 정말 작은 것 하나도 쉬지 않고 이래라저래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고 난 뒤로는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니(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잠깐 만나는 동안 듣는 잔소리도 싫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시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려는 나의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에는 서울 오빠집에 와 계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에 다녀왔다. 보려던 영화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나)"아빠 내일 극장에 가서 영화 볼래요?"
(아빠)"응? 영화? 몇 신데?"
(나)"아침 8시 반부터 시간대별로 있어요."
(아빠)"여보, 내일 영화 보러 갈려? 아침 8시 30분 영화래"
(엄마)"내일? 어디서 하는데?"
(아빠)"어디서 하냐?"
(나)"상암에서 하는데 우리가 차로 집에 모시러 갔다가 영화 보고 집에 다시 모셔다 드릴게요"
(아빠)"그려, 영화는 뭔데?"
(나) "베테랑 2에요. 1은 봤어요?"
(아빠) "글쎄. 모르겠다"
(나) "암튼 내일 아침에 갈게요"
이렇게 엄마의 허락하에 함께 극장에 갔다. 극장에 가는 차 안에서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극장에 언제 갔는지 물었다. 아마도 30대 초반이었으리라. 엄마는 아빠를 만나기 전 극장 매표소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봤다며 영화 제목을 나열했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는 두 분 다 OCN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제외하고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던 터다. 멀티플렉스 극장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내가 예약한 영화는 돌비사운드 극장이라 사운드가 최상이었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극장에 들어간 우리는 2시간 동안 몰입해 영화를 봤다. 어두워 잘 보지는 못했지만 아빠는 설레는 표정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화가 어땠는지 물었다. 엄마는 소리가 너무 커서 힘들었다며 엄청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듯이 이야기를 했다. 반면 아빠는 좋았단다. 사운드도 빵빵하고 액션도 너무 멋있다며 이런 액션은 예전 성룡 나오는 중국영화에서만 봤는데 요즘 한국영화도 화려하다며 흥분하신 듯했다. 레오가 아빠 이야기에 거들며 동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심 좋았지만 괜한 반어법이었는지 영화관이 정말 시끄러웠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엄마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아빠와 극장에 종종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도 엄마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얼른 댁에 모셔다 드리고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거나 무작정 대화를 해야 하는 시간보다는 무언가 함께 하며 주제가 있는 대화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더 즐겁다. 그냥 있는 시간은 아직도 어색하다. 이렇게 함께 하는 무언가가 늘어나다 보면 함께하는 시간도 어색함이 줄어들겠지...? 어릴 때 나의 모든 처음을 함께해 주셨던 부모님. 이제는 엄마, 아빠의 또 다른 처음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