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당시 남친은 집이 있었다. 그것도 33평 새아파트. 하지만 이 집 하나로 우리는 두 번 망(?)했다. 두 번 망해봐서 우리는 아직 무주택자다. 한 채로 부동산 두 번 망한 썰을 풀어본다.
때는 2007년, 남친(현,남편)은 집을 사려고 했다. 남편의 아파트 조건은 딱 2가지였다.
1. 새집일 것
2. 교통이 편할 것(통근버스 장소로 다니는 마을버스가 있을 것)
이 조건에 맞는 아파트가 두 군데 있었고, 남편은 그중 하나를 골랐다. 원하는 아파트를 고르는 대로 사는 것을 보니 돈이 엄청 많나 싶겠지만 실상 남편은 부동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아파트 매수 조건을 봐라. 다시 봐도 아찔하다)
아파트는 수원에 처음 와보는 시부모님과 이 동네를 잘 모르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진 시댁의 먼 친척분이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골랐고, 단지 내 부동산에서 매수했다.
그 당시는 결혼 전이었으므로 나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살 아파트를 보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기도 했고, 내 돈 들어가지 않으니 내 것이 아니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재개발된 아파트를 들어가는데, 옵션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선물이랍시고 거기 티브이랑 냉장고를 채워줬다(분양권을 가진 매도자는 건설회사에서 준 냉장고며 세탁기며 티브이를 모두 자기 집으로 옮긴 후였고 우린 그것을 몰랐다-분양권을 가지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동생이 가전을 건설회사에서 모두 사줬다는 말을 듣고 그때 알았다).
집 근처에는 유흥가가 있었다. 아파트를 살 때 부동산에서 여기초등학교가있기 때문에 유흥가는 정비사업을 시작해서 3년 내 없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사는 14년 동안 가게 이름만 바뀌고 동네는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남친은 부동산을 몰랐다. 10년 넘게 군인으로 살며 모은 돈을 모두 넣었음에도 자신이 살 집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를 하던 먼 친척분은 그 아파트를 추천해서 계약서를 쓰는데 함께했고 중개 수수료도 똑 같이 받아가셨다(그 이후로 뵌 적이 없다)
이 과정이 어딘가 닮았다. 맞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월급 160 받던 내가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을 통해 11만 원가량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역시 그 이후로 뵌적은 없다). 다만 종신보험은 월 11만 원짜리고 부동산은 3억 3천만 원이었다는 것이다. 그 돈을 쓸 때 남친은 남의 손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긴 것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고, 남친 빚은한참 남았지만, 집값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3억 3천을 주고 산 아파트가 2억 7천까지 떨어졌다. 떨어진 아파트 가격과 상관없이 남친은 빚을 계속 갚았다.
나는 남친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결혼 후 통장을 늦게 합치는걸 툴툴대고 있었다. 결혼 3년 뒤에 대출완납 통지서가 왔고, 그때 나는 처음 남편에게 빚이 있었다는걸 알았다. 집을 살 때 진 빚과 대출이자를 모두 냈음에도 그때까지 우리가 살던 집의 시세는 2억 8천이었다. 남편은 가끔씩 부동산에 들러서 시장 상황을 살폈고 부동산 사장님은 그때마다 '모른다'고만했다(하긴 우리가 팔 때도 본인들은 '모른다'고만했었다). 3년 내에 주변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부동산의 말은 거리 정비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벽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화분이 놓였지만 여전히 유흥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