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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Mar 29. 2024

신은 헬리콥터를 보내 주었지만 우리는 보트를 기다렸다.

한 집으로 두 번 망한 이야기

  우리는 열심히 돈을 모았다. 난임으로 휴직을 했고, 일 년 만에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가 출산에 임박했을 무렵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길 건너 재개발 구역에 살던 분이 이주를 해야 해서 우리 아파트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사장님은 간간히 시세를 확인하러 들렀던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고 남편은 별생각 없이 부동산에 갔다.


   우리 동호수가 마음에 든다는 노부부는 우리 집을 한번 보고 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하여 매매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며칠 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덜컥 가계약금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펄쩍 뛰었다. 남편에게 화가 났지만 계약을 무르려고 하니 상대방도 완강했다. 어쩔 수 없이 계약금의 2배를 주고 거래를 무마시켰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부부는 귀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신은 우리에게 헬기를 보내주며 집을 갈아 탈 좋은 기회를 주었는우리는 보트를 기다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생아를 안고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청약을 넣기 시작했다. 당시 동탄 2 신도시에 청약이 한창이었다. 미분양도 많아서 모델하우스에 가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집에는 모델하우스에 받은 일회용 비닐팩과 갑 티슈가 나날이 쌓여갔다. 구축 매매가 아닌 청약에 도전한 이유는 살던 집이 10년이 되어가자 고쳐 써야 할 것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헌 집에 돈 쓰기 싫었던 우리는 청약을 통해 새집으로 이사 가는데 생각이 일치했고, 그렇게 청약 릴레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은 동탄역 더 센트럴 2차였다. 남편 회사와 가깝고 근처에 초중고도 있어 좋아 보였다. 결과는 탈락.

다음 동탄 2 신도시 힐스테이트... 락.

동탄 더샵 레이크 타운...

린스트라우스 더 레이크...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 3차... 탈락...

청약을 넣은 모든 아파트에서 탈락했다. 대기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청약은 나랑 상관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주말마다 부동산에 갔다. 사장님이 시범 반도 유보라 1차에 매물이 있다고 가서 보자고 하셨다. 집은 중간에 기둥있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가격이 나빴다. 이 아파 호가는 우리의 전 재산을 살 수 있었다.


   우리는 고민하지 않았다. 빚을 지거나 가진 현금이 없으면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도 있는데 치킨값 고민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음을 접었다.

  그즈음 남편 회사 동료가 남동탄 아파트를 3천만 원 피를 붙여 사라고 만 우리는 그 제안도 거절했다(치킨값이 헬리콥터도 이겼다).



 

 의왕, 오산, 안양, 수원, 화성... 당시 집주변 분양하던 모델하우스에는 거의 다 다녔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안 했다. 그리고 그렇게 콧방귀 뀌던 아파트들은 3년 뒤 감히 내가 생각하지도 못할 가격이 되었다. 3년간 모은 돈을 다 합쳐도 살 수 없을 만큼 가격이 올라버린 것이다.  청약이 되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신도시에서 아이 키우며 어깨에 힘 좀 주고 살았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그대로 남았다.


  6층 쌍둥이 엄마가 동탄 2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학령기가 되니 이곳에서 키우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였다. 사를 떠나는 이웃에게 나는 책과 장난감을 많이 받았다. 남아 있는 나에게도 남는 것이 있었다.

 



  몇 달 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아파트 친구 엄마가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파트 입주할 때부터 10년을 넘게 살았던 집이었다. 며칠 전 딸과 근처 공연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24시 미인 항시 대기가 뭐야?"


   길로 집을 바로 내놓았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도 고민 안 하고 집을 내놓았다. 아이가 글을 알게 되면 읽게 될 동네의 모습5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집값보다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9년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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