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남미녀모친 Apr 05. 2024

하락 탈출인가 했더니 지옥이었다.

한 집으로 두 번 망한 이야기

  아파트 친구와 함께 집을 내놓았다. 간간히 집을 보러 온다고 할 때마다 황급히 돌아와서 집을 치웠다. 평소 미니멀리즘 살림을 실천했기에 집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인테리어가 별로 없었다. 대신 '집이 깨끗하다', '관리가 잘 된 집이다' '다른 집보다 넓어 보인다'라는 말은 집을 보러 온 모든 사람에게 들었다. 하지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집이 나가지 않으니 평소 느끼지 못했던 집의 단점이 크게 보였다.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집 보러 다니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뭔가가 있나 싶었다. 이제 12년 차 되어서 집을 한번 바꿀 때가 되었는데 바뀐 게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대청소를 시장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창틀과 부엌의 벽과 문틈까지 빡빡 닦았다. 몇 주 뒤 손가락이 너무 아파 정형외과에 갔다. 병명은 손가락 관절염. 청소를 그만해야 한다고 했다.




  집을 사는 이유가 집의 상태보다 부동산 경기, 동네, 가격, 교통과 주변 환경(편의 시설과 학교)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나름 만족하며 살았던 이 집이 안 팔리는 이유를 나한테서 찾았다. 게다가 근처에서 대규모 아파트 분양을 시작하을 보러 오는 사람이 확 줄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내년에 복직을 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이사를 해야  그러려면 집을 팔아야 했다.


  집을 내놓고 짐을 줄일 생각에 우리는 없는 집에 그나마 있던 가구도 하나씩 없앴다. 신혼 때 산 앤틱 책장 세트는 동네 맘카페에 올린 지 한 달 만에 40만 원에 팔렸다. 가로 150cm가 넘는 엔틱 책상은 개업하는 친척 사무실에 갖다 주었다. 대리석처럼 보여서 대리석인줄 알고 산 식탁도 친척집으로 보냈다. 시댁에 티브이가 고장 나서 집에 있던 티브이를 떼어다가 시댁에 갖다 드렸다. 짐은 더 줄었고 집은 더 가벼워졌으며 훨씬 넓어졌다.

  2019년 12월 24일, 어떤 가족이 집을 보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집을 보러 다니나 싶었다. 외출 중이었지만 돌아와서 집을 간단히 정리했다. 역시나 '관리가 잘 되었네요, 깔끔하네요, 깨끗하게 사용했네요'를 연발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가족들을 데리고 한번 더 와본다고 했고, 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계약을 하기로 했다. 집은 처음 매물로 놓았을 때보다 1천만 원 깎았지만 최근 1년 시세 중 최고가로 팔렸다.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남편이 2007년 3억 3천에 빚을 지고 매수한 아파트는 대출금을 모두 갚고 다시 3억 3천에 팔렸다. 우리는 2007년에 집을 사서 12년의 하락을 겪었다. 남편이 집을 샀던 2007년은 분명 부동산 상승기였다. 계속 오를 것 같던 집값은 일 년 만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하락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위치로 되돌아오는데12년이 걸렸다.


  이제 집을 팔면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던 나락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팔자마자 3개월 뒤 집값은 폭등했다. 우리는 1억을 남겨 25년 된 아파트 24평 전세로 들어갔다. 남는 돈은 몽땅 배당주를 샀다. 지옥은 이제 내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이전 02화 신은 헬리콥터를 보내 주었지만 우리는 보트를 기다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