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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Apr 12. 2024

사랑받지 못한 집을 골랐다.

사랑을 했다. 이 집을 만나.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됐다.

   집을 팔았다. 이제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한다. 아이 둘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동산 사장님과 집을 보러 다녔다. 1월 초였다. 3월에 복직할 예정이었던 나보다 부동산 사장님이 더 열정적이었다.(내가 계약 취소할까 봐 그러셨는지...) 두 달 만에 계약에 잔금에 이사까지 끝내야 했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사가 처음이니까. 원룸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첫 번째 집. 집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

공실이라고 했다. 처음 갔을 때는 비밀번호가  들어가지 못했다. 두 번째 찾아갔을 실이라던 집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전기장판과 침낭. 설거지 세제와 전기주전자가 보였다. 집주인은 아들이 거기서 종종 머무는 것 같다고 했다. 분이 쎄~했다. 아들은 왜 한겨울에 여기 침낭을 깔고 잘까? 해가 잘 들어오는 널찍한 집이었다. 따뜻해서 그런가 싶었다.

  아파트는 길 건너 초등학교와 공원이 있고, 남편 회사 셔틀이 바로 앞에 서서 좋다. 하지만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에 지하주차장이 없었고, 30년 넘은 아파트라 녹물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을 접었다.


  두 번째 집. 이 살고 있었다. 이번에 SKY에 진학한 아들 학교 근처로 이사 가기 위해 집을 전세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에서 기운이 좋은 집이라고 했다. 길 건너 공원에 근거리 초등학교, 남편 셔틀버스 주차장 근처에 아이들 어린이집도 도보로 5분이 옵션을 다 두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집은 저층은 아닌데 뷰가 최악이었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알 수 있기 때문에). 지역난방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이 있지만 연결되어 있지는 않아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세 번째 집.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남편 회사 셔틀버스 정류장은 멀었지만 내 직장과는 도보로 10분이었다. 집 근처 개천이 흐르고, 아파트 앞뒤로 공원이 있었다. 집 앞 공원에 있는 도서관까지 1분 컷.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하고,  중심상가와 학원가까지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처에 버스가 많이 다녀 교통이 편리하다.


  집을 보러 가니 마침 학생만 있었다. 학생 책상 위에 무심히 던져놓은 것 같지만 일부러 올려놓은 듯한 외국어고 합격증이 보였다. 아, 이런 세팅과 설정이라니... 아이만 있어서 대강 둘러다. 확장 안된 24평, 실평수18평 거실에 소파와 피아노, 안방에는 , 헹거, 화장대, 침대있다. 짐이 많아 집이 더 좁아 보였다. 아이 방은 옷장, 침대, 책상을 놓으니 문 열 공간만 남는다. 지하주차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동네가 마음에 들어 남편과 한번 더 오기로 했다.


   밤 7시. 퇴근한 남편과 집을 보러 갔다. 집주인이 와 있었다. 집 앞뒤에 베란다가 있고 수납장도 있어 짐을 보관하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가구가 적으니까 현재 세입자들의 가구를 덜어내면 집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이상했다. 깜깜한 었음에도 실내에서 새까만 글라스를 벗지 다.


  결국 동네 분위기도 좋고, 직장 근거리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 이사 가기로 정하고 계약을 했다. 두 달 뒤, 이 세입자가 이사를 가고 이삿짐을 뺀 후 우리는 집주인이 저녁 내내 선글라스를 낀 이유를 알았다.


'집  정 말 더 럽 게 썼 구 나!!!!!.'

   집은 최악이었다. 내가 닦고 가꾸며 산 집과는 차원이 달랐다. 칠은 벗겨진 채로 시커맸다. 화장실은 곰팡이가 슬어있고, 싱크대도 더러웠다. 그 사람이 여기 4년을 살았다고 했다. 사랑받지 못한 집이 불쌍해서 내가 사랑을 주기로 했다. 쓸고 닦고 정리하니 그래도 집이 점점 예뻐졌다. 집주인도 이렇게 말했다.

"얼마든지 고쳐 써도 좋아요. 인테리어 하거나 집을 칠하거나 마음대로 하세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집을 보러 다니면서 나름 깨달은 점이 있다. 전세로 사는 동안 내가 원하는 집과 환경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사는 집은 내가 원하는 조건과 최대한 가까운 아파트를 골랐다. 집 근처에 공, 도서관, 학교가 있을 것. 편의시설이 가까울 것. 30평대로 남향으로, 뷰만큼 동간 간격이 중요함. 지금 전세 사는 아파트는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다만 딱 한 가지, 평지가 아니라 아쉽지만. 


   요즘 이사 갈 동네를 살펴보면서 남편과는 이런 대화를 종종 한다. '우리가 덜컥 집을 사서 이사했으면 집값은 올랐겠지만 집 보는 눈이 생기지 않았으니 나중에 망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 전세 살아보길 잘했다'라고 말이다.


   아, 그래서 새로 이사 간 곳에서 우리 부부가  즐겁게 살았느냐고? 아니... 집이 없어진 우리는 오르는 집값을 보며 서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집을 팔고 3개월 후에 우리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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