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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3

봄 꽃에서 희망을!

2021년 3월 21일



와! 

봄이구나!

진달래가 언제 핀 거지?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때가 되니 이렇게, 너의 존재를 알리는구나!

누가 이름 불러주지도 않았는데도, 봐주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꽃을 피우는구나!


그런데,

진달래가 이렇게 슬펐던가?

바람에 살랑살랑 너를 내어놓은 것이 이렇게 눈물 흘릴 일이던가?

아름다워서 슬픈 건가?

슬픈 거 맞나?

기뻐서 눈물 나는 거 아닌가?

슬픔은 기쁨인 건가?

이 놈의 공황장애는 사람 헛갈리게 만든다. 


진달래를 뒤로하고, 걷던 수락산 길!

이 길은 또 왜 이리 슬픈지,,, 왜 걷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눈물이 날까?

그래도 열심히 사진 찍어야 해!

안 그러면 또 생각이 날 것이고, 생각이 나면 또 눈물이 날 테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생각, 눈물!

공황장애에는 무조건 움직이고, 무조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래도 저 길 참 슬펐다.

한참을 서서 울었다.

혼자여서 슬펐고,

막막해서 슬펐고,

외로워서 슬펐고,

힘들어서 슬펐다.


몸이 힘들면 괜찮겠지 싶어서, 숨 생각은 안 하고, 막 뛰어 올라가다가 잠깐 걸터앉은 나무계단!

바람이 엄청 셌다.

여기서 제일 많이 울었다.

보는 사람 없어서, 꺼이꺼이 소리 내어 엄청 울었다.

정확히 저 장면을 보면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생긴 거냐’며 서럽게 통곡하는데, 

콧물은 왜 그리 많이 나오는지,,,,

코를 푼 내 손에 바람이 세게 와 닿으며 말하는 듯했다.

‘많이 힘들지? 너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며 차가움으로 내게 위안하는 듯했다.

그 차가움 덕에 ‘적어도 나 혼자는 아니구나!’라는 생각!

참 별일이다.

이제는 산바람과도 이야기를 나누다니..

공황장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발견, 그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존경을 가능하게 하는 듯하다.


저 산, 저 하늘, 저 구름, 저 나무, 저 정경, 저 봄!

저 포근함, 저 따스함, 저 청명함, 저 애닯음, 저 처절함, 저 아름다움!


저 산이 저렇게 아름다웠었나?

저 하늘이 저렇게 아름다웠었나?

모든 아름다움들은 슬퍼야 보이는 거였던 건가?


누가 사랑해주지 않아도, 

누가 아름답다 말해주지 않아도,

묵묵히 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들에 존경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발견, 대화, 존경은 다시 시작되나 싶었는데, 여지없이 찾아드는 너란 녀석!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또 눈물, 콧물 쏟아내며 기도했다.

“제발 이 힘든 시기 무사히 건너게 해 주세요!”

“이 고통 이겨내어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니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 주세요!”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고, 갈구했다.


내가 많이 힘든가 보다.


내려가는 길에 잠시 손을 얹은 나무. 

거기서 또 미친놈처럼 울었다.

봄인데, 날씨 좋은데, 왜 눈물이 계속 나는 걸까?

내가 많이 울고 싶었나 보다.

집에서는 흐느낄 수 없어서, 산에 이렇게 와서 

아름다움을 배경 삼아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엄청 힘들다고 

토로하고 싶었나 보다.

꽃은, 길은, 계단은, 산은, 하늘은, 구름은, 나무는 내 얘기를 무작정 들어줄 거라고 믿었었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보이는 것마다, 가는 곳마다 눈물이 나는 것이겠지!

그들이 ‘울어도 괜찮아!’라고 따스한 빛으로, 온건한 바람으로, 눈에 담고 싶은 아름다움으로 토닥여주는 기분이었다. 

산은 울기에 딱 좋은 곳이다.

봄에 특히 더 그렇다.


그렇게 엄청 울고 나서,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고,

‘그래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다시 한번 오열했다.

마치 나 같아서,

쓸모없어 버려진, 잘리고, 잊혀진 것이 꼭 나 같아서,,,,,

옆에 앉아서 마음껏, 정신이 나갈 것처럼, 아니 세상에서 처음으로 슬퍼했던 것처럼 목을 놓아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었는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부끄러울 새가 없었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그 슬픔, 그 고통 온전히 내 안에 새길 듯이 조각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끝까지 가고 나니, 돌아올 힘이 생기더라는 것이었다.

뭐든 끝까지 가 보기!

그게 우울하고,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치유법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 


잘려 나간 나무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너도 힘들었겠다. 얼마나 아팠니?”

나도 힘든데, 나도 죽겠는데 나무를 위로했다.

그제야

위안이 되고, 안정이 되는 느낌?

내가 위로한 건데, 내가 치유를 받은….


산을 내려오는 길은 한결 받아들임이 가능한 나를 발견했다.


‘아름다운 것들이 도처에 있었다’

‘끝까지 가 봐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힘들지만, 남을 위로하자’

가 내가 배운 공황장애 치료법이다.


이런 것들을 배워서일까? 오늘은 꽤 괜찮은 날인 것 같다. 


그래도 당분간은 슬플 예정!


#공황장애 #우울증 #진달래 #수락산 #자연 #하늘 #산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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