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물리적 독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나는 어느 날 독립의 기회를 얻게 된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3-4개월 동안 다른 곳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살 곳이 필요했던 나에게 3-4개월 동안 다른 집에서 지내는 것도 모자라 그 뒤에 다시 원래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게 뻔했다. 다시 숨쉬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참에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고 가족에게 말했고, 그다음 날 직장 근처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나의 첫 독립이었던 것이다.
이제 숨죽이며 나를 흉보는 소리, 눈치 주는 시선들, 죄책감, 부담감 느끼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돼.
이제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내 것을 마음껏 쓰고 훔쳐보던 그 시선들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이제야 숨 좀 쉬며 내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정말 잘했어요. 거기서 진작에 벗어나야 했어요.”
내가 독립했다는 소식에 상담 선생님은 잘했다고 연신 칭찬을 하셨다. 그에 이어 상담선생님은 알코올 의존 배우자나 가정폭력을 일삼는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가족’이라는 명분아래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홀로서기가 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한 환경에 처해있으면 도망칠 줄도 알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줄도 안다고.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환경에 있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치 가정폭력이 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이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똑같이 자기 자식에게 권위적인 모습을 일삼듯이. 그리고 그러한 가족을 떠나 자기 자신으로 설 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위협하는 그 가족이라도 붙들고 살고 있는 거라고. 이렇게 애증의 감정으로 뒤덮인 것이 상호의존관계라고 했다. 나 또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들을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나 스스로도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주변 환경에 저항하지 못한 채 그저 순응하기만 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갔던 것이다.
이런 대물림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의식 중에 잠겨있는 나의 감정과 내면아이를 만나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바로 정신분석 상담의 핵심이다. 이 당시 나는 이렇게 집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 물리적인 독립을 하면 가족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 물리적인 독립은 내가 상호의존관계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첫 시작이었음을 이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