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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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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Sep 09. 2018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1.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은영이와 밤늦게 만나 술집을 기웃거렸다. 거리에서는 흔한 캐럴도 들리지 않아서 내일이 크리스마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을 만큼 고요한 전야였다. 그래도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었다.
영하의 추위에 몸은 떨려오고, 자리가 있으면 무조건 앉자 하고 들어간 가게에서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주문을 하고 언 몸을 녹이는데 전화가 왔다. 소윤이의 전화였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여 보세요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정한 숨소리, 잦게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다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멀고, 경황이 없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말은 해줘야 할 거 같아서.
나는 전화를 끊고 곧장 경주로 내려가는 표를 구했다. 10시에 출발하는 KTX가 아직 있었다.
같이 있던 은영이도 표를 끊었다. 둘 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내가 공통분모로 엮여있을 뿐이었는데 좋은 일에는 못 가도 좋지 않은 일에는 가는 거라며 함께 가겠다고 했다.


12시가 넘어서야 신 경주역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가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빈소에 들어서서 목례를 하고, 분향을 했다.
택시 안에서 급하게 검색해 본 조문 예절에서는 한번 흔들어 끄면 된다던 불이 꺼지지 않아서 검지로 눌러 끄고 말았다.



'금방은 못 본 걸로 해주세요. 어머님.'



곱게 미소 짓고 계신 어머님 사진을 올려다봤다. 10년 지기 친구인데, 아버님만 자주 뵈었지 어머님은 처음 뵙는 날이었다. 참 고우시다고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소윤이 얼굴을 보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씩씩했다. 늦은 시간에 어떻게 온 거냐며 놀란 것도 잠시, 상복이 자신의 몸에 너무 큰 거 같지 않냐며 수다쟁이처럼 말을 늘어놓곤 곧잘 웃었다.
빨갛게 부은 눈을 접으며 웃는 걸 보면서 나는 자꾸 울고 싶어 졌다. 쟤도 안 우는데 내가 울 수는 없어서 같이 웃고 말았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수술하면 괜찮아지실 거라고, 기도하겠다고 했었는데 오랫동안 아프셔서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던 수술도 어머니 몸이 버텨내질 못했다고 했다.
겨우 몇 주 사이였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마음의 준비도 미처 하지 못했을 텐데. 괜한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그새 검지에 작은 수포가 생겨서, 검지를 타고 심장까지 아려왔다.


소윤이 오빠는 내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빈소에 우두커니 빈소에 앉아있었다.
저렇게 계속 놔둬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이 우리 오빠 생일이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어제구나."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은 크리스마스였다.
누군가에게는 처음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 있구나.

그게 무엇이든.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날이.


소윤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님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길게 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나눈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은 어머님이 아프실 때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해서 힘들지 않았다 하시던 것.


“아영이 너도 뭐든 기꺼운 마음으로 해라. 그러면 다 괜찮아. 그게 전부야.”


아침까지 있으려 했지만 너네가 있으면 우리도 잠을 못 잔다는 아버님 말에 밖을 나섰다.
어스름한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길을 은영이와 나란히 걸었다.


살면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싶은 일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사람이 가슴속에 쌓이는 일일 것이리라.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보고 싶은 사람이 가슴속에 쌓여만 가는 일.


                                                                                             

불 꺼진 거리에 알전구를 휘감은 트리가 반짝,

반짝하고 나타나서 반짝하는 사이 지나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거리는 고요해서 누구를 위한 날이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2.
때로는 지는 게 이길 때도 있단다
젖은 눈으로 말하던 어른
지나온 날을 담담히 되짚으며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 마

기꺼이, 기꺼이 하면 돼
하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가시덩굴을 헤집고 그곳에 닿았나요.
자꾸 문드러지고, 형체를 알 수 없이 되어버려요.
헐어버린 마음에 새살이 돋고, 아물면 나도 어른이 되나요.                                                   








3.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요행 따위 기대하지 않고 부디 오늘 하루가 평온하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내 예쁜 사람들. 눈물은 한 손으로 쓱 닦고 웃고 마는 씩씩하고 밝은 사람들이 속으로 너무 많은 눈물 흘리지 않고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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