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의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에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 中
자신을 향한 '왜?' 라는 질문이 있어야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말 그대로 왜일까? '왜?'라는 질문은 논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하고 있는 경우는 '그냥'일 때가 많다. 그냥 일하기 싫고, 그냥 하고 싶고,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이런 식이다. 다시 말해, 순간 느끼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순간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의 패턴을 거쳐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건 피곤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닮고 싶거나 누군가의 모습을 모방하고 싶은 이유 역시,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끌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을 보고 반응하는지는 자신만이 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잘 모를 때가 많다. 가령 속이 뻥 뚫리는 바다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감탄이 먼저 나온다. 직접 보고 반응하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 다음에 이유를 덧붙이거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댜. 반응이 먼저고 이유는 다음인 것이다.
"감정에 호소하고 이성으로 설득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감정에 의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논리적으로 상대를 이긴다한들 설득은 별개의 문제일 때가 많다. 논리는 승패를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설득인 동시에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마음에 합리성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논리이다. 다시 말해, '왜?'라는 질문에 따른 답변이다.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해주는 작업인 셈이다.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매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저 합리적이라고 여길 수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고 결정했기에 스스로 '합리적이었다'고 말할 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실질적인 답변이다. 자신에게 있어서만큼은 합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을 논하면 아닐지라도 자신에게 있어서 만큼은 알맞기에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논리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흔히들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논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논리는 대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자신과의 대화나 다른 사람과의 마주함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모르는 것을 발견할 때 앎이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사실, 자신에게 '왜?'라고 묻는 것은 설명할 수 없고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동시에 모름을 인정하고 앎을 채워나가는 여정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씩 정립해 나갈 수는 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왜'라고 묻기를 낯설어하고 동시에 두려워한다. 기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은 납득할만한 이유와 생각의 근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왜?'라는 질문은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다가온다. 추궁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낙심했을 때를 돌아보더라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자연스레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반추(反芻)에 빠지고 만다. 곱씹고 곱씹는 것이다. 껌을 처음 씹을 때는 단맛이 나지만 계속 씹으면 단물은 빠지고 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자신을 향한 반추 역시 비슷하다. 처음에는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이유를 묻지만, 되풀이하면서 추궁으로 변모하고 만다. 이로 인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기비하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향해 '왜?'라고 묻는 이유는 성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추궁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왜?'라고 질문하기에 앞서 다른 질문으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왜?'라는 질문은 논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반추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의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질문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을 먼저 하면 좋을까? 바로 '어떤'과 '어떻게'라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는지' 묻는 미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질문이나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앞으로 움직일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왜?'라는 질문은 과거에 대한 모습이나 생각에 대한 이유를 묻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왜'라고 묻기 전에 자신이 꿈꾸는 모습이나 앞으로 진행할 방법이나 방향에 대한 생각을 그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반추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시간의 모습에 집착보다는 앞으로 움직이기 위한 생각의 토대를 다지는 게 더 유익하다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