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질문은 방향성을 갖는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라는 대상을 향한다. 또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하기도 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식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 질문은 생각함으로써 형태를 갖추지만 말로써 표현된다. 질문은 기본적으로 '말(言)'이다. 그렇기에 상황과 대상에 따라 질문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좋은 질문'이라는 평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은 받는 사람에게 적절할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평가의 기준은 대상에게 적절한 질문, 현재를 파악하게 해주는 질문,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의 관계나 평가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질문임에도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질문임에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질문이 대화의 도구, 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얘깃거리로 삼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나 관계가 편하지 않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진심어린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질문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기에 질문은 궁금한 마음과 더불어 함께 수를 찾기 위해 모색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대화이기 때문에 상대의 태도에 따라 질문의 의도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훈수를 두기 위한 말들의 나열이 아니라, 함께 수 놓기 위한 탐구의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늪에 빠져 있다는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너, 생각의 늪에 빠져 있어"라고 명제를 말해주는 것보다는 "내가 생각의 늪에 빠져 있다"라고 상황을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질문의 역할이다. 평가와 판단을 받는 것은 불편하지만 스스로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피동적이지만, 후자는 능동적이기에 그렇다. 이를 '깨달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일 것이다.
질문은 대화의 한 형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계가 없는 상태나 경청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예리한 질문일지라도 그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질문에 불과하다. 신뢰할 수 없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의 말은 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경청하지 않고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예리한' 질문은 불가능하다. 상황을 파악해야 예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 파악을 위해서는 경청이 전제되어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리한 질문은 '팩트폭행'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결심하도록 돕는 질문이다. 상대의 얘기와 상황을 경청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이유이다.
질문은 대화의 한 형태인 동시에 생각의 통로이다. 표현방식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좋은 질문은 기본적으로 '열린' 성격을 갖는다. '예, 아니오' 등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이유를 말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이다. 마음껏 얘기할 수 있도록 대나무 숲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생은 정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존심 덩어리다.
그래서 남의 말을 따르기는 싫어하지만, 자신이 결정한 것에는 기꺼이 따른다.
그러므로 남을 움직이려면 명령하지 마라. 스스로 생각하게 하라.
이것이 닫힌 질문보다는 열린 질문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본인이 깨닫도록 돕는 것이 유익한 이유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질문이 자신을 향하든, 타인을 향하든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다. 어떤 질문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 질문이 왜 불편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불편했다는 감정과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이유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같은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질문은 상대방 역시 조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요인들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대상은 나와 같은 잠재력이 충만한 한 사람이다. 이 점을 기억하며, 진정으로 한 사람을 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