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넘도록 그림 한 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폐지 봉투에 망친 그림들을 담으면서 문득 종이들의 운명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나 같은 주인을 만나서······ 왜 이렇게 안 그려질까.
13x21cm, 엽서 만한 크기의 이 작은 그림에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고 한다. 그날의 어이없는 실수, 터질 듯한 부끄러움, 자기혐오, 그 기억이 불러낸 또 다른 아픈 기억, 어떤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다짐까지도······ 의식을 치르듯 나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 기억들을 소멸시키고자 한다. 아니 소멸시킬 수는 없어도 내게서 떼어 내고자 한다. 기억들이 그림 속에 완전히 안착하여 주인도 잊고 바깥세상도 잊고 그 안에서 영원히 놀기를 바란다. 그렇게 저들끼리 놀다가 시간 속에서 서서히 바래져 사라지길 기대한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건 내가 그리려는 이미지가 이 기억들과 맞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이 기억들이 불러일으키는 온갖 혼탁한 감정들을 다 담기에는 내가 구상한 그림이 너무 심심하고 얌전해서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이라 옮겨가길 거부하는 것이다.
너무 우회적이고 포괄적인 소재를 택한 걸까? 왜 더 구체적이고 참신한 구상을 고민하지 않느냐고, 이 정도 그림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냐고 기억들이 질책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 걸 어찌한단 말인가.
아니다. 솔직해지자. 사실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더 집요하게 파고들기가 귀찮아서 비교적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와 구상을 택했다. 이 약은 마음을 기억들이 알아채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그림을 계속 망치게 하여 계획을 어그러트리는 것이다.
이들과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은 훗날의 과제로 남겨두자. 강제로 성숙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이 기억들과의 대화를 완전히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여러 그림들을 그리고 나서 표현력이 좀 더 나아졌을 때, 그때 다시 그려보겠다는 것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 본 뒤에, 더 깊고 넓은 사유의 폭을 가진 내가 되었을 때, 다시 이 기억들을 불러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은 생각지도 못하는 신선한 구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아직은 이 기억들을 그릴 때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