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의 어느 날, 퇴근 후 화방에 들러 작업대며 물감이며 갖가지 그림 도구를 사던 때의 설렘이 생각난다. 석사 졸업 후 한 박물관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서 일을 시작한 지 두어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무척 들떠 있었는데, 그건 힘들었던 첫 직장 이후 3-4년의 준비기를 거쳐 다시 얻은 일자리였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드디어 취미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누군가의 지시나 상업적 목적 없이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이건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갈망해 온 그림 방식이었다. 디자인과 학생으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다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나는 진정 나의 것이라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작업의 동기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었고, 더구나 팀 작업일 경우에는 나의 기호가 온전히 반영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했으면서도 이것이 나의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보지 못한 것이 큰 한으로 남아있었다.
소박한 월급일지언정 출퇴근 시간이 명확한 일이 생겼고, 남는 시간에는 '자유 주제'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이 상황이 이제 그 한을 풀 장이 마련된 것처럼 기뻤다. 일과 취미생활을 균형감 있게 병행하다 보면 언젠가 작가라는 꿈에 다다를 수 있겠지,라는 낙관적인 미래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취미로서의 그림이 즐거웠던 것은 처음 몇 달뿐이었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그림에 쏟아붓는 이런 형태의 삶은 중간에 직장을 옮기고 30대 후반에 퇴사를 하기까지 이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즐겁고 뿌듯한 때보다 괴롭고 짜증 나는 때가 잦아졌고, 그래서 점점 성실성의 농도가 흐려졌다.
그 원인은 어느 시점부터 그림에 대한 욕심이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냥 예쁜 그림이 아니라(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한 장이라도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담고 싶다, 내 삶의 한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그림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게 했고, 또 쉽게 마무리 짓지도 못하게 했다. 감정의 섬세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진부한 구상력과 투박한 표현력 때문에 낙담해서 중에 그림을 관두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표현의 어려움보다 나를 훨씬 더 힘들게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나'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왜 그러한 내면을 갖게 되었는가를 묻게 되고, 기억과 욕망을 추적하게 되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기 안으로 끝없이 침잠하다 보면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어두운 면, 덮어두고 외면했던 나의 보기 싫은 면들이 서서히 의식의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라는 욕심이 결국은 '나'라는 큰 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면의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있던 것들, 후회, 부끄러움, 증오, 분노, 자기혐오, 미안함...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슬렁어슬렁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이란 결국 자신의 어둠,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때때로 새벽 네다섯 시가 다 되도록 끙끙대며 그림을 그리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조잡한 그림을 확인하면 간밤에 무슨 사기라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은 출근이 '나'라는 사기꾼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로 느껴졌다. 취미로서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그림이 고단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였는데, 언젠가부터는 현실(출근)이 '나'라는 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 그날그날 마쳐야 하는 사무실에서의 정해진 일과가 내게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바쁜 현실 속에 매몰되어 '나'를 잊게 되는 것이 '나'를 탐구하는 것보다 더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전업 작가의 삶에 과감히 뛰어들지 못한 건 꼭 소속에 대한 집착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계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보다는 정신적인 이유, 그러니까 '나'를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오직 '나'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중단 없이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따금 가열되는 도전 정신을 식히고 한 자리에 계속 맴도게 했다. 나는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림을 계속 취미의 영역에 가두어 놓으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