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 활동은 일 년, 이 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통스럽고 짜증 나는 일이 되어갔다. 그림에 대한 욕심이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냥 예쁜 그림이 아니라(이것도 쉽지 않지만) 한 장이라도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고 싶다, 내 삶의 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그림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게 하고, 또 쉽게 마무리짓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각과 감정의 섬세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진부한 구상력과 투박한 표현력 때문에 낙담해서 중간에 그림을 관두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표현의 어려움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나'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왜 그러한 내면을 갖고 있는가를 묻게 되고, 자신의 기질과 성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추적하게 되고, 결국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거쳐온 시간 속으로 끝없이 침잠하다 보면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어두운 면, 덮어두고 외면했던 나의 보기 싫은 면들이 서서히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욕심이 결국은 '나'라는 큰 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이란 결국 자신의 어둠,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회, 분노, 증오, 미안함, 자기혐오, 자기 연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뒤범벅된 나의 그림자.
때때로 새벽 네다섯 시가 다 되도록 끙끙대며 그림을 그리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조잡한 그림을 확인하면 간밤에 무슨 사기라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은 출근이 '나'라는 사기꾼으로부터,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로 느껴졌다. 처음 퇴근 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그림이 고단한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처였는데, 언젠가부터는 현실(출근)이 '나'라는 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 그날그날 마쳐야 하는 사무실에서의 정해진 일과가 내게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바쁜 현실 속에 매몰되어 '나'를 잊게 되는 것이 '나'를 탐구하는 것보다 더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림을 전업으로 하는 것을 오랫동안 망설인 데에는 꼭 경제적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보다는 정신적인 이유, 그러니까 나를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 오직 '나'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중단 없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런 어정쩡한 생활 방식을 관두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는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림을 계속 취미의 영역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