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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이어온 밥도둑, 강진 토하젓의 비밀

by 길가영
강진 토하젓_10.05.png 강진 토하젓


강진 토하젓은 남도 음식문화 속에서도 유난히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젓갈이다. 강진군 옴천면에서 생산되는 토하젓은 예로부터 궁중에 진상될 만큼 귀한 식품으로 여겨졌으며, 조선시대 문헌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강진 지역의 특산물로 다양한 젓갈류가 언급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토하젓은 10월에 담가 올리던 젓갈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토하젓이 이미 조선 초기부터 지역 특산품으로 체계적인 생산과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강진 옴천면 일대는 청정한 1 급수 하천이 흐르고, 논두렁과 도랑마다 토하가 풍부해 예로부터 젓갈 재료의 산지로 알려져 왔다.


강진 토하젓의 유래는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옴천면 주민들은 살아 있는 토하를 껍질째 소금에 절여 발효시켰는데, 이렇게 만든 젓갈은 오랜 숙성 끝에 독특한 감칠맛을 내며 밥도둑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올랐으며, 그 귀함이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전통은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와, 현대에도 옴천면 일대에서는 여전히 전통 방식의 토하젓 제조가 유지되고 있다.


강진의 토하젓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천일염을 사용해 최소 석 달 이상 염장하는 전통 염장 토하젓이고, 다른 하나는 갓 잡은 토하를 염장하지 않고 양념에 바로 버무려 먹는 ‘벼락젓’이다.


염장 토하젓은 숙성 기간이 길어 깊은 맛과 향을 내며, 벼락젓은 신선한 토하의 단맛과 바다의 짠맛이 어우러진다.


옛사람들은 토하젓을 ‘소화젓’이라고 불렀는데, 밥에 비벼 먹으면 밥알이 삭을 정도로 부드럽고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특히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체내의 기름기를 잡아주어 궁합이 좋다고 전해진다.


문학 작품에서도 강진 토하젓은 남도의 대표적인 맛으로 등장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밥도둑』에서 강진의 토하젓을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게 만드는 남도의 신비한 젓갈”이라 표현했다.


이처럼 토하젓은 단순한 반찬을 넘어 남도의 음식철학, 즉 자연과 조화로운 삶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강진의 토하젓이 특별한 이유는 그 맛뿐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지역의 환경과 사람들의 삶 때문이다. 강진의 하천과 논두렁, 갯벌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은 토하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옴천면 주민들은 매년 가을이면 도랑에 통발을 놓고 토하를 잡아 염장하였으며, 그 기술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금은 지역에서 생산된 천일염으로, 강진의 기후와 바람이 숙성을 도왔다.


오늘날에도 강진 토하젓은 남도의 전통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한때는 사라질 뻔한 전통 제조방식이 지역 주민과 농어촌 명인들에 의해 복원되었고, ‘옴천 토하젓’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명성을 얻고 있다.


강진 토하젓은 남도의 바다와 들, 그리고 사람의 손끝이 빚어낸 시간이 담긴 음식이다. 한 숟가락의 젓갈 속에는 강진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남도의 정성이 함께 녹아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 세종 28년(1446) 편찬.

『동국여지승람』, 성종 15년(1484) 편찬.

한국학호남진흥원, 『호남학연구총서: 전라남도의 음식문화』, 2018.

황석영, 『밥도둑』, 창비, 2002.

강진군청 지역문화자료, 「강진 옴천 토하젓」, 2020.

농림축산식품부 향토산업육성사업 보고서, 「전남 강진 옴천 토하젓 명품화 연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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