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 생활 동안 차를 가까이하며 많은 글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호가 다산(茶山)이 되었다고 한다.
강진을 음식 문화적 관점으로 보면, 양반가의 반가음식, 궁중음식, 차 문화 등 발굴할 내용이 상당히 많아 보여서 매우 관심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첫 번째 주제는 ‘강진 한정식’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한정식’이라는 말은 전통 용어가 아니다. 원래 ‘정식(定食)’은 일본에서 서양식 식사인 타블도트를 번역한 말로, 일제강점기 조선 음식점에서 사용되면서 정착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음식’의 ‘한(韓)’과 결합해 ‘한정식’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 전통에는 반상(飯床), 진찬(珍饌), 성찬(盛饌), 향찬(饗饌) 등 상차림을 나타내는 고유어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전통 한식 상차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을 모색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극복하고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강진 한정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일화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 후기 수라간 상궁이 강진군 목리로 귀양 와서 부녀자들에게 궁중의 요리법을 전수하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강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가 발견된 이후, 일본 총독을 대접하기 위해 궁중요리사를 초빙하면서 한정식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설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강진 한정식의 기원을 궁중음식에 두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뚜렷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강진의 음식문화는 굳이 궁중 전래설에 기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자체의 역사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교역과 군사의 요충지였던 강진은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사족과 향반, 향리, 관아 관리, 그리고 유배객들의 입맛이 축적되며, 반가의 민가에서 전승된 음식은 점차 강진 고유의 향토성이 짙게 밴 음식문화로 발전하였다.
강진 한정식은 남도의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조선 궁중음식의 전통이 결합하여 형성된 독특한 향토 음식문화이다. 남도의 땅은 예로부터 산과 들, 강과 바다의 자원이 고루 갖추어져 다양한 식재료를 제공하였고, 여기에 조선 후기 강진의 유배문화가 더해지면서 한정식이라는 특별한 상차림이 탄생하였다.
강진은 삼한시대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마한의 소국인 구해국이 이곳에 있었고, 신라 말기 장보고가 개척한 청해진과도 연결되면서 국제 무역의 무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대구소와 칠량소에서 고려청자를 대량 생산하여 개경과 동아시아에 수출하며 교역의 번영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강진 일대에서 발굴된 청자 가마터는 200여 개소에 달해, 국내 확인된 청자 요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조선시대에도 강진은 풍부한 물산을 기반으로 발전했는데, 『세종실록지리지』는 “땅의 3분의 1이 비옥하고 풍속은 고기를 잡기를 좋아한다”라고 기록하였다. 전복, 미역, 숭어, 김, 해삼 등 다양한 해산물이 공물로 지정되었고, 작설차는 조선 초기부터 중앙에 올리는 특산물이 되었다.
강진만 깊숙한 곳의 남당포는 남해안 최대의 포구로, 제주에서 올라오는 귤과 각종 해산물, 그리고 강진의 물산이 집결하는 교역의 거점이었다. 개성의 송상들이 내려와 상업 활동을 할 정도로 번성하였고, 이를 통해 강진의 농수산물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조선시대 전라병영이 광주에서 강진으로 옮겨오면서 군사 요충지로서 기능했는데, 수백 년 동안 병영 성곽과 상공업이 발달하며 물자와 인구가 유입되었다. 자연히 접객업과 유흥업이 포구와 병영 주변에 자리 잡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진 고유의 향토음식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역적·역사적 배경은 강진 한정식이 자리를 잡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조선 후기 강진은 유배객들의 고장이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수많은 사대부가 머물렀고, 왕실에서 내려온 수라간 궁녀들이 궁중의 조리법을 전하였다.
강진의 부녀자들은 궁중의 12첩, 9첩 상차림을 배우고, 이를 지역에서 나는 전복, 낙지, 꼬막, 들나물, 한우 등과 결합하여 오늘날의 한정식 형태로 발전시켰다. 궁중의 엄격한 격식이 강진만의 풍부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만나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정식 상차림에는 전복찜, 광어회, 소고기육회, 한우떡갈비, 보리굴비, 꼬막찜, 간자미초무침, 낙지호롱구이, 간장게장 등 수십 가지 반찬이 오르며, 전통적으로는 32가지에 이르는 음식을 세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내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손님을 예우하는 의례적 성격을 지닌 연회이자, 강진인의 삶의 미학이 응축된 상차림이었다.
또한 강진은 고려청자의 본산지답게 한정식 상차림에 청자와 자기류를 활용하여 음식의 품격과 미적 가치를 높였다. 은은한 청자의 빛깔과 풍성한 음식이 어우러진 강진 한정식은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강진에는 예향, 다강, 돌담한정식, 강진만한정식 등 한정식 전문점들이 전통의 맥을 잇고 있으며, 지역 관광과 연계하여 남도 음식문화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전통음식』, 국립민속박물관, 201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020.
한국학호남진흥원, 『호남학연구총서: 전라남도의 음식문화』, 2018.
국립민속박물관 문화콘텐츠, 「강진 한정식」, 국가문화지식서비스(ncms.nculture.org).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창비,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