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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녹차 – 남도의 푸른 잎에 깃든 천년의 향기

by 길가영
강진 녹차_10.12.png 강진 녹차



강진의 녹차는 남도의 온화한 기후와 맑은 물, 그리고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 전통의 맛이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강진의 차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공식 문헌에 기록될 만큼 뚜렷한 역사를 지닌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강진현의 토산품으로 작설차를 바친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신 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강진 백련사와 다업(茶業)에 관한 기술이 나타난다. 이는 강진이 이미 조선 초기부터 차 산지로 공인된 지역임을 보여준다.


강진의 차 문화는 단순히 재배와 음용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깊이를 더한 사유의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 차를 가까이하며 학문과 사색의 동반자로 삼았다. 다산은 제자들과 함께 차를 나누며 ‘다신계(茶信契)’를 결성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차문화사에서 가장 이른 형태의 차회(茶會)로 평가된다.


다산의 제자였던 초의선사는 차와 선(禪)을 결합해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정신을 세웠으며, 그의 사상은 강진을 비롯한 남도 일대에 차의 문화적 가치를 확산시켰다.


강진의 차 전통은 근대기에 이르러 ‘백운옥판차’로 계승되었다. 백운옥판차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백운동 옥판봉에서 자생한 찻잎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 등록 녹차이다.


이를 만든 인물은 다산의 학맥을 이은 이한영(1868~1956)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산 차가 국내 시장을 점령하던 시기에 우리 차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백운옥판차’를 창안하였다.


‘백운’은 찻잎을 따낸 산 이름이며, ‘옥판’은 옥처럼 맑은 찻잎을 뜻한다. 이한영은 찻잎 채엽, 덖음, 비비기, 건조 등 전통 제다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근대 제다의 표준을 세웠다.


이한영은 다산과 초의선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강진 차인의 대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제다법뿐만 아니라 차를 통한 정신 수양을 강조하였고, 그의 제자 이면흠과 후손들은 그 정신을 이어 백운옥판차의 명맥을 이어왔다. 오늘날 강진군은 월하리 일대에 이한영 생가를 복원하고, 1,400평 규모의 전통 차밭을 조성하여 백운옥판차의 재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강진의 차문화는 또한 자연환경의 혜택을 온전히 품고 있다. 월출산과 백련사 일대는 해풍이 적당히 불고, 아침 안개가 짙어 차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찻잎의 색을 진하고 향을 깊게 만든다.


『농정신편(農政新編)』에서도 차나무가 남쪽 온난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강진의 기후 조건을 설명하는 대목과 일치한다.


오늘날 강진군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차의 고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1980년대 초부터 대규모 다원이 조성되면서 현재는 141헥타르 이상의 면적에서 녹차를 재배하고 있으며, 설록다원 등 현대적인 시설이 들어서 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전통 제다법과 현대적 제조공정이 결합되어 품질 높은 강진 녹차가 국내외로 수출되고 있다.

강진의 녹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남도의 삶과 철학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한 잔의 차에는 강진의 청정한 물, 다산의 학문, 초의선사의 정신, 그리고 이한영의 장인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다. 천년을 이어온 강진의 녹차는 오늘날에도 남도의 향기를 머금은 채, 세대를 잇는 정신의 음료로 존재하고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세종 28년(1446), 강진현 작설차 기록.

『신 증동국여지승람』,성종 15년(1484), 강진 백련사 및 다업 관련 기록.

안종수,『농정신편』, 1885.

강진군청 농업기술센터,「백운옥판차 복원사업 보고서」, 2021.

남도문화연구논총,「강진 백운옥판차 고찰」, 2016.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차(茶)』,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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