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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밥상 이야기 (1)

by 길가영
강진 정약용 유배밥상 1_11.09.png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밥상


1801년 11월, 40세의 정약용이 강진 땅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따뜻한 환대가 아니었다. 강진 사람들은 유배된 죄인을 싫어하여 죄인이 머무르는 집 대문을 부수거나 담장을 허물어뜨리기도 했기에 그 누구도 그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천주교 박해라는 정치적 풍파에 휘말려 조정의 총애받던 개혁가에서 천덕꾸러기 유배객으로 전락한 다산에게, 이제 남은 것은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뿐이었다.


그러나 이 절망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조선 실학의 결정체를 낳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밥상'이 있었다. 다산의 유배 밥상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 절제의 철학과 남도의 풍요, 그리고 자기 수양의 도구가 된 특별한 식문화였다.


다행스럽게도 의(義)롭고 정(情) 많은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철저히 홀로 된 정약용을 보고 측은히 여긴 주막집 할머니가 거처할 방 한 칸을 내준 것이다. 강진 읍내 동문 밖 샘 거리의 토담집, 바로 정약용이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곳에서 유배 생활의 첫 4년이 시작되었다.


유배 초기 기력을 잃었던 다산에게 주막집 할머니와 표서방 가족이 호박죽 등 음식을 챙겨주며 회복을 도왔다. 남도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호박죽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 유배객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 생명의 양식이었다.


정약용은 누구 하나 말 걸어 주는 사람도 없는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실의에 빠져 몇 날 며칠 술로 마음을 달래며 힘든 유배 생활을 시작하지만 "나는 겨를을 얻었구나"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끝내 붓을 든다. 이 시기 다산의 식생활은 극도로 소박했을 것이다. 주막의 거친 밥상, 변변치 않은 반찬들이 전부였겠지만, 그는 이를 통해 검소함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산은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려 하면 결국 변소에 힘을 쏟는 것일 뿐"이라며 절제된 식생활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금욕주의가 아니라, 유배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용적 지혜이자 자기 수양의 방법론이었다.


정약용은 채식 위주의 밥상을 즐겼으며, 상추 등 직접 기른 채소와 콩, 두부, 만두 등 콩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과학적인 식생활이었다. 육류가 귀한 유배지 환경에서 식물성 단백질을 적극 활용한 것은 다산의 실학적 사고가 식생활에도 적용된 사례였다.


외가인 해남 윤 씨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강진 만덕산에 있는 초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다산초당이다. 1808년 봄, 47세의 다산은 드디어 안정적인 거처를 얻었다. 정약용이 온 뒤 배움의 열기 가득한 학당이었다는 다산초당에서, 그의 식생활도 한층 풍요로워졌다.


참고문헌

투데이광주전남, "[정약용 이야기 4] 전남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18년의 여정", 2022.08.28, https://www.todaygwangju.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584

세계일보, "다산 정약용 유배지 강진에서의 삶과 음식", 2025.02.27,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227515212

대한민국 구석구석, "아버지 다산을 만나다,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길", 2016,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97065305-e9e7-425e-8dfa-558b5bcfc83c

우리 역사넷, "차 한 잔의 인연, 다산과 초의",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10_0070_0040_0010

다산정약용유적지, "다산 정약용", http://tasan.or.kr/tasan/tasan4_c1_cn01.asp

강진군청, "강진 정약용 유적", https://www.gangjin.go.kr/culture/attractions/region?mode=view&idx=79

위키백과, "강진 정약용 유적", https://ko.wikipedia.org/wiki/강진_정약용_유적

쿠키뉴스, "남도음식 1번지, 강진 가면 무얼 먹을까?", 2018.09.17,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1809170187

KTX매거진, "가을 남도의 맛, 강진·해남·영암", https://ktxmagazine.kr/가을-남도의-맛-강진·해남·영암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전복탕(全鰒湯)",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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