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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병사 밥상은 어땠을까: 강진 전라병영성의 밥상

by 길가영
강진 전라병영성_11.30.png 조선시대 전라병영성의 밥상


전라병영성은 태종 17년(1417)에 전라도 연안 방비를 위해 광산에서 강진으로 옮겨졌다. 조선말 폐영(1895)까지 500년 가까이 전라도와 제주 53주 6진을 총괄하던 육군 최고 지휘거점이었다.


성곽과 해자, 옹성, 우물과 연못, 관아시설이 촘촘히 배치된 거대한 군사도시였고, 이곳의 일상은 군제와 행정, 교역과 민생이 한데 얽힌 생활세계였다. 그런 만큼 “무엇을 먹고 어떻게 버텼는가”라는 밥상의 문제는 군영 운영의 핵심이었다.


문헌과 군영 영지 자료를 종합하면, 조선 후기 군영의 식사는 신분과 직책에 따라 격이 달랐으나 공통적으로 곡물·장류·김치·젓갈이라는 보존성 높은 기본 구조를 가졌다.


지휘관층은 쌀밥과 나물, 젓갈, 어육 전, 쇠고기장국까지 갖춘 비교적 풍성한 상차림을 받았고, 하급 장교는 밥과 무짠지, 장국 정도, 일반 병사는 밥과 간장 혹은 기름기 적은 국, 젓갈 한두 가지의 소박한 식단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재정과 보급을 우선해야 했던 군영의 합리적 선택이자, 이동과 저장을 전제로 한 ‘군대형 반찬’ 시스템의 필연이었다.


강진의 전라병영성에서는 이 기본 틀에 남도 식재료와 조리법이 겹쳐졌다. 군량미를 아끼려 보리밥·잡곡밥이 널리 쓰였고, 된장국과 쑥된장국, 갓김치·배추김치, 들·산나물무침, 토하젓 같은 강진산 젓갈류가 상을 채웠다. 특히 옴천 토하젓은 조선시대부터 이름난 젓갈로 알려져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 식재료로 기능하였다.


병영은 또한 교역의 허브였다. 세곡과 베, 종이, 약재, 땔감 등 각종 물자가 집결하는 구조 속에서 ‘병영상인’이 태어났고,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병영상인은 군영과 연계된 집산·유통망을 토대로 남부 상권을 장악했고, 병영 주변에는 장시와 주막, 숙박, 음식업이 번성하였다. 이들의 이동과 거래는 곧 밥상의 풍경을 바꾸었다.


장거리를 오간 상단이 병영으로 돌아와 흰쌀밥이나 잡곡밥에 고기·생선구이, 기름진 전과 탕, 각종 젓갈과 나물을 곁들여 회포를 푸는 ‘병영상인 밥상’이 이야기로 축적되었고, 현대에는 병영면 일대의 연탄 돼지불고기 상차림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검소한 병사 밥상과 후덕한 접대 밥상이 병영 도시 한복판에서 공존했다는 점이 강진 음식문화의 중요한 층위를 이룬다. 발굴조사와 유적은 이 밥상의 현장을 눈앞에 그리게 한다. 성벽과 해자, 옹성, 관아시설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특히 해자 내부에서 함마갱으로 불리는 말뚝 함정이 다수 확인되어 사료 기록과의 대응이 이루어졌다.


해자와 망루를 내려다보며 보리밥 한술과 된장국을 들이켰을 병사들의 긴장과 일상의 교차는, 군영 음식이 단지 영양을 넘어서 전투태세 유지라는 목적에 봉사했음을 말해준다. 더불어 관찰사와 문인들의 기행문은 병영의 위엄과 장터의 활기, 군졸의 고단함과 민가의 음식 냄새까지 포착하며, 군사·상업·음식이 맞물린 강진 병영 도시의 생활사를 입체적으로 증언한다.


오늘날 강진군은 전라병영성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병사 밥상·병영상인 밥상을 스토리화하고, 병영 면 소재지의 식당가와 연계하여 음식관광 자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실록·지리지·영지·문집·발굴보고서 등 검증가능한 기록을 토대로 “어땠을 법한” 식생활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한 시도이며, 전통 군사도시의 일상을 음식이라는 매개로 현재화하는 문화콘텐츠 작업이 될 수 있다.


강진의 전라병영성 밥상은 검소함과 넉넉함, 군영의 규율과 남도의 인심이 한 상에서 만나는 남도 음식인문학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국가유산포털, 「사적 강진 전라병영성(康津 全羅兵營城)」, 문화재청 발간 자료.

조선왕조실록(국사편찬위원회 DB), 태종·문종·효종조 전라병영 설치·이전·방비 관련 기사.

『호남병영영지(湖南兵營營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해제.

『대동지지』, 김정호, 19세기, 전라병영성 규모·시설 관련 기술.

『여지도서』, 18세기 후반, 전라도 강진현 병영 관련 항목.

전라병영성 발굴조사 보고서 및 관련 조사자료,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기관.

연합뉴스, 「강진 전라병영성서 조선시대 죽창 함정(함마갱) 다수 확인」 등 유적 발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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