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하건대, 나를 데리고 간 것도 이해 불가한 인간에 대한 연구 중 하나일 거다. 그렇게 밖에 그들이 노리는 것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내게 그들은 미지의 공포 자체였다. 대충이라도 그들의 정체를 알았거나 의도를 짐작했다면 약간의 안도감은 있었겠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가장 켰다. '데려가려면 다른 사람도 함께 데려가든지.. 내가 지구에서 무슨 호사를 누렸다고 하필, 빌어먹을, 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죽이지 않고 다시 지구로 데려다 줄지 궁금했다. 물론, 헛된 희망일 수 있다. 나를 놓아주려고 잡아가진 않았겠지라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위키디피아'에서 트랄팔마도를 최초로 경험한 인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젠장, 반어적 표현이다.
다음은 처음으로 그들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쉬운 말로 요약하겠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스티로폼 같은 무르고 탄력이 있는 직사각형의 탁자에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마치 수술대 위에서 마취에 막 깨어난 듯, 잠깐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른 시간의 파도에 두둥실 떠올랐던 나는, 지구의 환영과 이곳의 낯선 음영으로 속이 메슥거리고 정신은 어지럽게 헤엄쳤다. 우주여행의 시차 때문이다. 곧이어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빛 속에 서 있는 하나의 윤곽이 보였다. 그 옆으로 삐뚜름히 서있는 또 하나,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는 또 하나. 식은땀이 났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서서히 다가온 생명체는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소리는 늘어선 비디오 모니터에서 나왔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놀라지 마!'라고 했다. 해칠 생각은 없다고.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연하다.
그들 2: 여기는 안전한 곳입니다. 기분이 어떠나요?
나 : 여여기는 어디인가요? 당신들은?
그들 1: 여긴 은하계의 정치적 중심지인 트랄팔마도이다. 헤칠 생각은 없으니 놀라지 마.
나 : 은은하계..중심지..트트랄팔마도?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복창했다. 목구멍을 떠나 입술에 닿은 자음 하나 모음 하나는 입술의 끄트머리에서 맥없이 툭툭 떨어졌다.)
그들 2: 들어보세요.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트랄팔마도에 있는 동안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나: 지금 장난해? 유서도 쓰지 못하고, 오늘 직장 못 나간고 말도 못 했는데..
그들 2: 직장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 1초는 지구의 2백 년이라서 무단결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출근 전에 지구에 다시 가게 될 것입니다.
나: (돌려 보내준다는 말이다. 이것 봐라, 하는 희망 섞인 느낌이 들어 머뭇거리면 말했다) 보내줄 거면 나를 왜 데리고 왔어?
그들 1: 차츰 알게 돼. 서로를 알아가는 처음은 힘겨울 거다. 됐다.
.......
그 후로 그들은 나를 <풀린 시간>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나의 첫인상이 그랬다는 얘기다.
시간 왜곡으로 트랄팔마도어의 몇 년은 지구시간으로 고작 몇 백 분의 1초에 지나지 않는다. 두 곳을 경험한 나로서는 거의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었고, 어딘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내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지구인들이 말하는 평행우주 같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하나의 현실이 선택되면 다른 현실은 사라지는 그런 거 말이다. 여기에서 트라팔마도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 이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구인들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변하는 순간이 현재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트라팔마도인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마치 실에 서로 다른 시간의 구슬이 끼어 동그랗게 연결이 된 것과 같다. 현재, 미래, 과거가 평등한 관계를 맺고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한다. 시간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니다, 시간이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인간에게 묻지 않을 때는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물으면 답하기 곤란한 게 시간이다. 인간들은 균일하게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맞물린 것이 시계이고, 시계의 움직임을 시간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잠깐만 달리 생각해 보자. 시간은 사건이라고. 예전에 천재 과학자가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했다. 그것은 개개인이 경험한 사건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이고,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해결이 어려운 것이고, 시간이 사라진 듯한 느낌은 사건에 몰입한 것이고, 시간이 지루한 것은 사건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이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사건의 시작과 종말이다. 인간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한 것이 모래시계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사건이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지구인의 사고방식과 빈곤한 어휘로는 그들의 시간 개념을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없다. 언어의 한계가 인식의 한계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그들에게는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미래의 예측이라는 말은 미래의 기억이라는 말로 표현하는게 낫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건의 나열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생명체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 그 일은 전에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기에, 그리움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잠시 나쁜 순간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트랄팔마도인들의 시간을 보는 방식은 인간의 자유의지도 별 볼일 없게 만들었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면 결과는 원인에 지배당하고, 미래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래, 과거, 현재를 동시에 인식을 한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우주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우주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 자유의지도 우주원리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이나마 그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게 나을 거 같다. 트랄팔마도의 전모는 천일 밤을 새워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다섯 가지만 축약해서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