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래의 땅

by 김영


첫째는 트랄팔마도의 행성과 트랄팔마도인에 대해서다. 생명체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조건은 어느 행성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빛과 물의 존재와 적정한 온도와 기압, 그리고 바람 등이 필요하다. 생명체가 만들어지려면 여러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한다. 화학반응은 액체상태의 물과 태양광이나 화학 에너지 같은 에너지원과 탄소 등이 필요하다. 온도는 화합물이 적절한 열운동을 할 정도로 너무 낮지 않아야 하고, 대기압과 자기장은 우주의 방사선으로부터 피폭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화합물이 화학결합을 유지하여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산소가 필수 불가결하지만 산소 없이 수소와 헬륨만으로 대사가 가능한 물질도 있다. 지구가 '얼음 행성'과의 충돌로 물이 생겼지만(지구인들은 '노인의 방주'라고 하는데 지구의 모든 생명, 핏줄의 근원이다. 방주에 초대받지 못한 동물은 매머드, 시조새, 자이언트 거북, 도도새 등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지구 역사에서 최초의 차별의 현장이기도 하다. 초대된 동물은 입장과 동시에 엉덩이에 도장을 받는다. 밀항하는 동물들을 솎아내기 위해서다.) 트랄팔마도는 얼음띠가 있는 극지방을 제외하고는 별의 대부분이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다.


주홍빛 화염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노려보는, 트랄팔마도를 경험하는 인간이라면 그 어떤 생명체라도 성장이 불가능한 불모의 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은 황금빛 섬광이 호박색 사막 위에 쏟아져 내리고, 흥청거리는 더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이 땅도 비옥했던 시절이 있었긴 했다. 비옥했던 환경이 파괴된 후 행성의 궤도를 수정하고,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환경을 복원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빛 에너지는 충분하여 그 덕에 전력은 넘쳐난다. 이 넉넉한 에너지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한다. 다양한 생명체는 또 다른 다양한 생명체와 얽히고 설킨 관계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이사슬이 만들어져서 행성 전체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중이다. 트랄팔마도의 대기는 산소 15퍼센트, 질소 82퍼센트, 수소 1.5퍼센트, 이산화탄소 0.032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바람 집진기를 통해 공기 중의 수소와 산소를 모아 물집진기로 물을 만들고, 해가 지면 이슬 응결기를 가동해 만들어진 물을 지하의 저수지에 보관한다. 그리고 질소와 황을 모래에 첨가시키고 물을 뿌려 비옥한 땅을 만들고 있다. 그 비옥한 땅에는 이끼, 유칼리나무, 선인장, 야자수류, 포도나무, 올리브 등과 유전자 변형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이런 작업으로 사막의 목초지가 늘어나 초식동물의 출산율이 증가하고, 박테리아와 지네와 전갈, 거북이나 작은 여우 같은 동물이 늘어갔다.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데 긴 세월이 걸렸다. 아직도 계속 땅을 파고 풀과 나무를 심고 있다. 그들의 인내심이 놀랍다. 한 종류의 개체가 집단을 이루고, 집단들이 모여 군집을 만들었다. 그들은 군집들이 행성 전체의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 과정은 실로 고난한 과정이었다. 또한 하나의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리적인 현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렇게 해서 하나의 개체가 만들어지면 하나의 개체가 내부적인 조절 외에 바깥에서 주어지는 외부환경에 따라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이런 반응은 집단을 이루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이런 반응들의 결과는 생명체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렇게 하나의 군집이 만들어지고 이 군집이 어디에 형성이 되느냐에 따라 군집의 성격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고려할 상황이 겁나 많다. 예를 들어 모레 언덕에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느냐에 따라서도 환경이 급변한다. 모래언덕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의 비탈면은 매끄럽고 단단하지만 불어 가는 방향의 비탈은 모래가 거칠다. 바람이 언덕에 막히면 한쪽에는 비가 오지만 반대쪽은 건조하고, 그늘이 지어진 부분은 땅에서 올라온 습기가 증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져서 곰팡이, 이끼, 식물 등이 자라지만 빛이 많이 들어오면 곰팡이, 이끼, 식물 등의 서식이 안 된다.


하여간 트랄팔마도의 환경을 지배하는 것은 모레임에는 틀림없다. 억겁의 시간 동안 모래 폭풍으로 경사는 완만하다. 트랄팔마도의 하루를 지구식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파르스름한 새벽빛은 어둠의 벽을 깨고 사막의 윤곽을 드러내고 이내 붉은색으로 사막을 물들이다. 그리고 난 후 햇빛의 날카로움에 모래는 금빛으로 반짝이고, 부는 바람에 끝없이 펼쳐진 모래는 일렁이는 바다와 같이 물결을 만든다. 금빛의 커다랗고 육중한 비늘 같기도 하다. 모래의 물결 위로는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산이 끝없이 연결된다. 어딘가 모르게 다른 거 같으면서도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모래언덕은 뒤로 갈수록 연한 금빛을 띠면서 첩첩이 이어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이에 두려움마저 들고, 인간의 욕망이나 집착은 거대한 배경 앞에 허망하게 단절된다. 모든 것을 무릎 끓게 한다.


발밑의 감각은 묽지도 단단하지도 않다. 걸을 때마다 모래는 부드럽게 발을 감싸고 지나온 발자국은 바람결에 사라진다. 걷고 걸어도 지평선과 막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열기를 품은 모래 입자는 매우 곱고 손아귀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모래의 감촉은 간지럽다. 그렇지만 한낮의 모래는 젠장 맞게 뜨겁고 열기는 살아있는 어떤 것도 말라죽일 정도다. 주기적으로 굉음을 동반한 모래폭풍이 불 때면 온 세상이 희멀겋다. 회오리바람에 실린 모래는 사방을 문질러 대서 작은 틈도 비비고 들어와 물건마다 얇은 먼지막을 만든다. 그리고, 땅거미가 지면 모레 벌레들이 단체로 돌아다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서로 얽혀서 꿈틀거린다. 커다란 수많은 검은 지네들이 움직이는 거 같다. 이런 광막한 사막에 태양전지 패널을 설치하여 전력은 끄떡없지만 모래폭풍으로 태양 패널이 모래에 파묻히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파묻힌 태양 패널은 이웃 행성의 이주민인 '크사마인'이 모래를 쓸어준다. 뿐만 아니라 온갖 뒤치다꺼리는 그들과 인공지능로봇이 도맡아 한다.


트랄팔마도의 대부분이 모레로 뒤덮여 있다고 했지만 인상 깊었던 몇몇 장소가 있다. 첫째로는 미국의 그랜드 케니언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깎아놓듯이 우뚝 솟은 화산과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행성의 표면을 절개한 것같이 끝없이 펼쳐진 협곡과 수직의 깎아지른 절벽, 불가사의한 모양의 땅도 인상 깊지만 지층의 속살을 보여주는 깊은 용암 동굴이 인상적이다. 용암동굴은 트랄팔마도의 매서운 기후에 지치고, 장시간의 여행에 다리가 쑤신 여행자에게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특히, 동굴 안에서 보는 해돋이나 노을을 보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그런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트랄팔마도를 탐험하는 것은 험악하고 변화무쌍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주여행이라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강한 사람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여행이다. 마치 지상에 살다가 수중생활이라는 급격한 환경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구인으로 살아남으려면 보호장비가 필요하다. 보호장비는 쉽게 말해 작은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의 피부가 늘어나고 피가 끓어 몸이 폭발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적정한 기압과 온도를 유지돼야 하고, 산소를 공급하고, 생명유지 장치 및 전기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행성의 남극이다. 행성의 남극에는 물로 된 얼음과 눈 대신 이산화탄소 눈이 내린다. 이산화탄소 얼음층은 트랄팔마도가 겨울철일 때 행성의 남단을 덮는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이산화탄소 얼음이 녹아 곧장 기체로 변하면서 풍경이 극도로 변하고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이 해동과정의 결과는 상당히 장관이다. 흙위의 반투명한 얼음층은 봄이나 여름이 되면 햇빛이 토층까지 스며들어 흙을 덥힌다. 덥인 흙과 맞닿은 이산화탄소 얼음은 순식간에 기체로 변하기 시작하여 얼음층 아래에 기체의 층이 생긴다. 이 기체는 어떤 식으로든 얼음 아래서 분출하면서 분출구 혹은 간헐 온천을 만든다. '배스킨라빈스 31'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드라이아스를 집어넣은 것을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크기로 확대시켰다고 생각해봐라. 다만 다양한 색의 토양 위의 드라이아이스다. 그들은 이것을 '트랄팔마도의 거미'라고 하는데 수상돌기 하나의 길이가 수백 미터에 달한다. 이곳을 처음으로 본다면 거대한 거미를 닮은 외계 문명이라고 착각하기 안성맞춤이다.


이런 환경에 사는 생명체에는 뭔가 낯선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할 거다. 맞다. 각 행성에서 요구되는 신체 형태는 다르다.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는 몸집이 작고 재빠른 생물이 생존하기 쉽다. 트랄팔마도인이 딱 그렇다. 그들은 성체의 몸길이 1.5 미터로 삼발이처럼 두발과 꼬리로 지탱하는 것이 마치 캥거루 같다. 살갗은 도마뱀의 가죽과 비슷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눈은 접시처럼 작지만 두 개의 눈을 따로 돌려서 동시에 서로 다른 사물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눈썹은 몇 겹으로 북실북실하고, 눈꺼풀은 녹슨 듯한 갈색 눈 위를 와이퍼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코는 둥그런 순대를 붙여놓은 듯하고, 입은 대부분 닫혀 있는 체 입귀를 씰룩된다. 대강 그런 식이다. 그들은 간혹 짐승처럼 그렁그렁하는 소리를 내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뇌파에 의해 작동하고 눈앞의 선글라스에 접속한 내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귀의 기능은 퇴화해서 흔적만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쑥덕거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도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런 연유로 그들에게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은 아예 없고, 말더듬이가 수치심을 느낄 기회도 없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여자를 현혹시키는 놈이 설 땅이 없다. 다행이다. 귀가 퇴화된 이유를 말할 거 같으면, 트랄팔마도의 초기 환경의 영향이다. 지붕 같은 대기가 없어 공기가 희박했다. 희박한 공기는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파동이 형성되지 않아 우주 같은 침묵만이 있었다. 그래서 거의 손짓과 몸짓만 가능했다. 한때는 그랬었다. 그러던 것이 활발한 땅의 운동 덕분에 가스의 분출과 수증기 등이 생겨서 공기의 경계가 생기고 음파를 느끼게 되었다. 귀의 먹먹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는 스스로의 숨소리, 침 넘기는 소리, 심장박동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질구레한 소음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두뇌에는 디지털 신경 전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정보의 습득과 처리 등을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허드렛일은 인공지능로봇이나 이웃 행성인인 '크사마인'들이 대신한다. 트랄팔마도인은 실외에서는 모래폭풍 때문에 망토 같은 사막복과 간단한 방독면을 착용한다. 사막복을 입으려면 물 교환기가 부착된 특수 기저귀를 차야 한다. 사막복은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나 땀과 소변을 식수로 바꾸어준다. 어둠이 내리면 공기 중의 찬 수증기는 이슬 응결기로 대기 중의 수증기를 모으고, 지하 저수지와 하수관으로 물을 저장하고 나른다. 트랄팔마도에서는 물이 귀하여 신성시하지만 그렇다고 물 때문에 외계를 침공하지는 않는다. 물이 귀한 그들에게는 한 뙈기 텃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최대의 부이다. 텃밭에는 대개 포도나무가 있다. 극소수의 트랄팔마도인만이 손으로 흙을 파헤치고 씨앗(그들은 씨앗을 먹는 지구인에 경악을 한다)을 뿌리고, 어린 가지들 주위의 땅을 다독이고, 물을 조심스럽게 뿌리는 행위를 즐긴다. 이런 일들은 귀한 취미 행위라 그들이 직접 한다. 그리고는 이슬처럼 상쾌한 공기 속에 싹을 틔우는 광경을 보고 환장한다. 반대로 나무의 이파리가 갈색으로 변하여 끝이 동그랗게 말린 모습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어지간해서는 물이 귀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그만큼 슬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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