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언어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by 김영


네 번째는 그들의 언어에 대해서다. 언어는 소통과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지혜로운 자인 커트 보니갓 조차도 언어 체계를 만들면서 고심을 거듭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트랄팔마도인은 흩어졌던 언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나서 환호했다. 언어의 통일은 각기 다른 문화를 차츰 동질 하게 만들고, 생각하는 방식마저 비슷하게 만들어 갔다. 그들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처럼 자신감에 충만하였다. 그들은 기쁜 나머지 거대한 기념탑을 만들기로 하고 프로젝트명을 '혼돈을 넘어'라고 명명했다. 탑의 설립 취지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산재된 언어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긍지의 표현이고, 둘째는 예술가들의 창작 열망에 대한 욕구를 풀어주는 데 있고, 셋째는 라쿤데력 17457년에 있었던 대홍수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했다. 그 당시를 설명하는 기록을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집채만 한 비가 오는 착각이 든다. 간악무도한 세계를 물로 쓸어버리려는 듯이 바람은 사방에서 불고, 노기충천한 하늘은 비를 한 달 넘게 세차게 뿌려댔다. 준비도 없이 모든 것들이 들썩이는 물에 휩쓸려 떠다니거나 가라앉았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날 무렵 새들이 올리브 잎을 물고 날아들었을 때야 비로소 태양의 신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이유로 어떤 홍수에도 끄떡없는 거대한 탑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도시와 하늘을 연결하여 신과 맞짱 뜨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다. 이를 본 신은 이들이 그다음에는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탑이 완성되기 전 그들의 통일된 언어를 혼란시켜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 언어뿐만이 아니라 민족도 여러 개로 나누어졌다. 그래서 '혼돈을 넘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분열로 좌초되었다.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각 부족들은 의도치 않게 다시 제각기의 언어를 가지고, 땅과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그 후 힘을 가진 부족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약소국의 국민을 노예와 군사로 만들고, 자기들의 언어와 종교를 약소국에 강요하였다.


지구인에게 언어란 공유된 경험과 공통된 기억이다. 그런 선(先) 경험과 기억이 없다면 언어를 공유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어떤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단어를 사용하면서 의미가 바뀔 수도 있고, 문장에서 반복되는 말을 동의어로 고치면서 의미가 미묘하게 바뀌는 경우도 있고, 같은 말이라도 억양이나 말 사이의 공백의 길이, 음운에 강세를 주면서 품사가 바뀌고 다른 의미로 바뀌기도 했다. 한마디로 모호함이 많은 언어다. 반면에 고심 끝에 만들어진 트랄팔마도인의 언어는 표음문자나 표의문자 같은 인간의 언어와는 확연히 다른 문자언어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존재와 사물을 본뜬 회화(繪畫)문자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농경의 발전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영토를 확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다른 부족들과의 충돌과 통합이 일어났다. 수천 년 동안의 문화의 융합과정 속에서 다양한 언어가 생성되고 사라졌다. 그들의 언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이웃 부족 중에는 아라비크족과 샨트크리트족이 있다. 아라비크족은 수많은 부호와 숫자와 수식을 생각과 사물에 연결하여 무한에 가까운 의미를 만들어내었고, 샨트크리트족은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바퀴 모양의 비선형 언어를 사용했다. 트랄팔마도인에게는 문화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수식을 포함한다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을 순차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합하는 언어는 처음에 그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 언어의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트랄팔마도의 언어학자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나눈 대화를 잠깐 소개하겠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만나면 나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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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 우리의 언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음성언어가 아니라 문자언어이다. 우리의 문자언어는 인간처럼 앞에서 뒤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먹물을 뿌리듯이 문장의 처음과 끝을 한꺼번에 원형으로 그리는 비선형 문자이다. 음성언어는 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순서가 생기고 음성이 덧붙여지면서 의미가 확장되지만 우리의 언어는 처음과 끝을 알고 있는 비선형 문자이다. 끝을 알고 있다는 말이 생소할 것이다. 끝을 안다는 것은 결과를 안다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비선형적 언어인 것이다.

나: 시작과 동시에 끝을 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너 말할때 결과를 대충 알면서 말하지 않아? 다만 말을 할 때는 순차적으로 말하지만..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알지만 지구인 중에도 이런 논리를 생각한 페르마라는 수학자가 있다고 우주 대백과사전에 나오던데. 결과를 안다는 것을 최단거리와 최단시간의 원리로 이해하면 대충이나마 감이 올 것이다. 잘 들어봐. 빛은 직진하다가 통과할 수 없는 물질을 만나면 최단 경로로 반사를 하지만 빛이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면 굴절을 한다. 컵에 담긴 젓가락이 휘어져 보이는 것이 바로 굴절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최단거리가 아니라 최소시간의 원리를 따른다. 마치 이런 거다. 해변가에 노련한 안전요원이 위험해 빠진 수영객을 구할 때는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고 난 후 헤엄쳐 구하지 않는다. 우선 해변가를 따라 위험에 빠진 수영객에 가까운 곳까지 달려가서 물에 뛰어든다. 제아무리 헤엄치는 게 빠르다고 해도 달리기보다 빠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헤엄치는 것보다 달리기가 빠른 곳에서 최대한 달려서 이익을 보고, 헤엄을 쳐야 하는 느린 곳은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다. 그래야지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다. 돌고래라면 육지에서의 거리는 줄이고 물속에서 거리는 늘이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깐 빛이 매질이 다른 곳을 통과할 때는 최단거리가 아니라 최단 시간으로 가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떠나기 전에 목적지가 이미 정해진 것이다. 빛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이것으로 지구인처럼 시간을 순차적으로 인식하는 인과론적 인식과는 달리 결과가 정해진 목적론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을 통달한 것이다.

나 : 결과가 정해져 있으면 어떤 행위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냐?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냐.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그 일이 일어나.

나 :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 : 결혼식을 생각해 봐. 신랑이 입장을 하고, 이어서 신부가 입장을 하고 떨린 마음으로 주례자 앞에 설 때 하객들 모두는 '이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라는 말이 나올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들어 준다. 말의 발화가 수행의 과정이다. 알고만 있어서는 의미가 없고 말을 해야만 미래의 일이 수행되는 것이다.

나 : 대충은 알 거같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그래. 훌륭하다.

나 : 그럼,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고 예전에 배웠는데, 당신들의 언어를 배우면 정말로 시간을 초월할 수 있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실은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 지구인에게도 가능한 지가 궁금해. 인간이 우리와는 생물학적으로 다른데 본능적으로 우리의 언어를 느낄 수 있을지가 궁금해.

나 : 나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데이터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 그럼 나말고 인간이 더 있어?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물론,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간들이 있다. 각각의 경험과 유전적 정보가 다른데 언어의 습득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궁금해서 다양하게 선택한 거야. 우리의 언어를 어느 정도까지 습득할 수 있나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야. 아니 학습이 어느 정도가 가능한지. 학습은 3단계로 구성이 돼. 첫째로는 우리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와 학습이고, 둘째는 학습된 언어의 유지이고, 셋째는 그럼으로써 예견된 결과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지가 목표야.

나 : 생물학적으로 다른 건 이해하는데 언어의 습득이 유전적 정보와 관련이 있는 건가? 언어의 습득은 행위에 보상이 주어지고 다시 보상은 행위를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습득되는 거 아닌가? 그런 경험의 과정이 언어 훈련이 아닌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언어는 경험에 앞서는 내장된 프로그램이 몸 안에 있는 거다. 처음에 보잘것없던 트랄팔마도인이 현재처럼 되기까지는 어떤 사고 혁명이 있었다. 새로운 언어체계를 이해하고 사용한 일단의 트랄팔마도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뇌를 구성하던 배선이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패턴이 완전히 뒤틀였다. 이로써 foxp12라는 새로운 유전자가 미래세대에 전해져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하였다. 그리고, 변화는 누적되어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한 세대의 지식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이전 시대의 지식을 고스란히 지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현재를 사는 트랄팔마도인은 과거도 획득하고, 미래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시간의 동시성을 확보한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그리워할 필요를 점점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건 이미 정해진 일이 일어난 것뿐이니깐.

나 : 누군가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다고, 그거 좋은데. 근데 내면에 언어능력이 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한번 생각해 봐. 인간들이 모든 문장을 들어본 것도 아닌데 처음 듣는 문장을 이해해서 대답을 하고, 처음으로 쓰는 문장인데도 어려움 없이 쓰잖아. 그 신비한 능력이 내재되어 있는 거야. 그건 수학과 관련이 있어. 예를 들어 a^2 + 2ab + b^2 식이 있다고 해봐. 하나의 식이 있지만 a와 b에 어떤 값을 넣느냐에 따라 무한히 많은 값이 나오게 돼. 예를 들어 a에 1을 넣고, b에 1을 넣으면 값은 4가 되고, a에 1을 넣고, b에 3을 넣으면 값은 16이 되잖아.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몇 개의 규칙으로 무수히 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생각해 봐. 인간들은 언어의 작동 방식을 모르면서 그냥 사용하잖아. 마치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모르면서 사용하는 것과 같아. 그리고 의미를 바꾸지 않고 어떤 요소를 이동하거나 교체, 첨가, 삭제를 통해 하나의 문장을 여러 다른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은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와 '하늘을 지은이가 바라보았다'처럼 단어의 이동은 있지만 의미는 같잖아.

나 : 너희들의 언어는 상당히 복잡한 거 같아.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실은 더 복잡해. 그냥 이미지와 수식과 통합된 시제가 들어간 원형 구조의 QR코드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야. 중간에 이미지를 집어넣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긴 했지만.

나 : 그게 뭔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이미지와 대상 간의 의미론적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과 같은 이미지의 언어는 지금 말하고 있는 현실성에 '그곳에 한때 존재했었음'의 과거성 즉, 비현실성을 뜻한다. 말하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지는 단점이 있다. 과거와 현재의 비논리적 결합이다. 그래서 기호를 추가했다. 우리는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했지만 거기에도 생각지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기호가 가지는 자의성뿐만이 아니라 기호 안에 숨은 문화의 이데올로기이다. 예를 들어 소꿉놀이라는 기호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소녀가 아이들 옷 입히고 밥 챙겨주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이미지이다. 그 기호 안에는 어른이 되어서 해야 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역할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세계에 종속당하는 처지이다. 이런 오랜 기간의 혼란을 걸쳐서 현재와 같이 비선형적 문자언어가 되었어. 시간에서도 벗어나고 수식과 연결되어 정확성과 수학적 아름다움이 있는 언어이다. 우리 언어의 동시성은 마치, 물질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가능성이 서로 겹쳐있는 것과도 연결된다. 여하튼, 처음과 끝이 없는 동시성은, 예고된 결과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강한 긍정의 언어이다. 물론 듣지 못해서 이미지 형태의 홀로그램이나 뇌파로 소통한다. 물론 너는 우리의 학습을 거부할 수도 있다.

나 : 아냐, 배워보고 싶어.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알겠어, 고맙다. 근데 너가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언어를 배우면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입장이 바뀌어 스스로 자책하는 버릇이 덜 할거다.

..


여러분은 내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시제가 통합되었다는 말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감이 오지 않아 내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그들의 언어가 수식으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각 숫자는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0은 가족, 1은 동료, 2는 연인, 6017은 배설물이다. 예를 들어 <You're like a dream come true. 당신을 보니 꿈이 현실이 된 거 같네요.>라는 말은 트랄팔마도적 표현이다. 미래와 현재가 중첩되어 있다. 이 말을 트랄팔마도인의 언어로 바꾸면 <12. η. 56.η. 32. 75∝. >이다. 이것을 원래의 순서에 따라 인간의 언어로 구글링 하면 <기대는 꿈이 당신과 같이 있네요>라는 말이 되고, 언어학자인 '노안 참시키'는 <소외된 대중이 무지하고 오지랖이 넓은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이상적인 자유가 주어졌다.>라고 간단히 번역했다. 끝이 없는 수와 20개의 기호로는 무한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0개의 수와 기호의 조합은 10!= 10 × 9 × 8 ×7 × 6 × 5 ×4 × 3 × 2 ×1= 3,628,800 가지이다. 수와 기호를 아무렇게 조합을 해도 전후 문장이 있다면 최적의 표현이 만들어진다. 다 양자컴퓨터(트랄팔마도의 백과사전에는 '무질서도 반복되면 질서가 된다'라는 기계로 되어있다) 때문이다.


인간의 문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트랄팔마도는 발전된 아날로그 방식이다. 발전된 아날로그 방식이란 인간에게 '신의 도구'로 여기는 '양자컴퓨터'의 발전된 방식이다. 당신이 양자역학(트랄팔마도의 백과사전에는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라는 이론으로 되어있다. 이름을 짓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있었긴 했다. 물질이 갖는 이중성, 즉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과 같은 존재이지만 관측하면 입자가 된다는 믿기지 않은 현실을 이해하는 게 우선 급선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하나를 특정하는 순간 다른 하나를 특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은 두 가지을 동시에 특정하고 싶은 욕심이 깔려있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를 '하이잔베르크'는 나름 쉽게 설명했다. '나무를 보면 숲이 보이지 않고, 숲을 보면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나무는 입자이고, 숲은 파동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적확한 설명이 이해 안 된다면 사랑하는 그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와 만나고 있을 때의 그녀와 나를 만나지 않을 때의 그녀는 다르다고. 그런 의미에서 '귀신이 곡할 노릇 이론'이라고 명명하자고 했지만 '어밀졸라'는 귀신이라는 섬뜩한 용어를 쓰면 교육상 안 좋다고 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다'를 주장했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는 술래를 향해 슬금슬금 파동처럼 다가오다가 뒤를 돌아보면 입자처럼 멈칫하는 행동에 딱 맞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의미에 방점을 두면서 시적인 표현인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를 선택했다.)을 이해할 가능성은 없지만 어쨌든 트랄팔마도인은 5세대 양자컴퓨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명함 크기라서 휴대도 가능하다. 인간이 만든 기존의 컴퓨터는 0 또는 1중에 하나를 사용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0과 1을 차례로 넣고 결과를 차례로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0과 1이 중첩된 상태로 동시에 계산해서 초단시간 내에 모든 결과를 내놓고, 그중에 최적의 답을 산출한다.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200초면 끝낸다. 이 정도는 지구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면 갈림길에서 하나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몇 개의 길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게 되어 미로가 복잡해져도 최적의 답을 찾아낸다. 잘못 들어가면 다시 되돌아와서 다른 길로 갈 필요가 없어 시간도 절약된다. 그들의 5세대 양자컴퓨터는 공존할 수 없는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특징인 양자 중첩이 연속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트랄팔마도인에게 양자역학은 그들의 언어뿐만이 아니라 공간이동도 가능하게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양자역학은 관측을 하면 입자가 되고 관측을 안 하면 파동이 된다는 이론이다. 입자성과 파동성의 두 성질을 가지려면 입자가 작아야 한다고 하지만 트랄팔마도의 과학은 큰 입자에 대해서도 입자와 파동을 갖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파동(트랄팔마도인들은 '비물질화되는 경험'이라고 한다. 약간의 현기증과 구역질이 난다.)을 경험한 최초의 생명체이다. 트랄팔마도인의 공간이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겠다. 양자역학을 이용한 공간이동 이후로는 '우주의 미아가 되었다'라는 말과 '우주선이 불시착되었다'라는 말은 사라졌다.


그들의 언어가 수식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지구인들은 의아스러운 것이 있을 거 같다. 트랄팔마도인들의 새로운 취미인 소설 쓰기의 지속성에 대해서다. 문학적인 글을 읽다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수식을 통한 글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의구심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수식뿐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각종 정보가 들어간 언어이다. 수식만이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지구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리듬감도 느껴진다. 그들의 언어가 수식(數式)을 담고 있다고 하니까 수식어(修飾語)가 난무하는 지구인의 언어에 비해 텅 빈듯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다한 수식어를 배제하다 보니 오히려 담백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음식으로 말하면 과한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아 더부룩하지 않다. 낭만적인 감정의 분출보다는 사실적인 차가움과 조화, 균형이 배어있다. 그렇다고 미적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식에는 투명한 아름다움과 완벽함이 있다. 어떻게 수식이 아름다울 수 있느냐고 말하는 지구인이 있을 거 같다. 예를 들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사랑이 지나가면'같은 지구인의 노래는 양자역학의 수식에 다 담겨있다. 뿐만 아니다. 그녀의 수도 없이 변하는 마음의 상태나 위치는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설명하고, 그녀의 이중적인 마음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설명하고, 세상이 무질서해져 결국에는 무의미한 세상이 된다는 것은 '엔트로피 법칙'이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대칭식이 가지는 아름다움도 있고, 수식을 조금씩 달리 표현하면서 생기는 미묘한 리듬감도 있다. 마치 이런 거다.

수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이론과 법칙의 토대 위에 있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이론과 법칙의 토대 위에 있다.

이론과 법칙의 토대는 수학뿐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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