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의식

'트랄팔마도인'의 후손

by 김영


다섯 번째는 그들의 의식에 대해서다. 인간은 자아라는 의식이 있다고 확신한다.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은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인식하려고 한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냄새를 맡고, 만져보고, 맛을 보기도 한다. 이처럼 나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이다. 의식은 어쩔 수 없이 대상과 끊임없이 투쟁한다. 투쟁의 결과 대상을 알게 되면 소유할 수 있다. 아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소유를 굳건히 하기 위해 이름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나의 차, 나의 강아지, 나의 여자, 나의 집, 나의 땅, 나의 지구. 인간이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트라팔마도인은 자아는 서로 다른 지각(知覺)들의 다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독립적이고 병렬적인 무수한 지각의 꾸러미라는 것이다. 그런 지각도 유전적으로 습득하고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의식을 생성하는 중앙 처리 본부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나라는 의식은 무수한 뉴런이 주고받는 전기신호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착각이고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은 축소도 확장도 가능하고 분리와 융합도 가능하다. 네트워크와 연결을 하여 의식을 확장할 수 있고, 컴퓨터에 의식을 업로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 중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트랄팔마도어인의 유전자를 일부 물려받은 후손들이다. 그들은 자아가 소멸된 사람들이다. 자아가 소멸된 사람들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하고, 모든 것은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 중에는 명상을 즐긴 사람들이 많은데 석가나 잡스 등이 트랄팔마도어인의 후손이다. 앞서 트라팔마도인들이 지구의 보존과 붕괴에 대해서 1초의 여유를 주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대강 이렇다. 그들은, 그들의 DNA를 지구가 탄생할 때부터 곳곳에 뿌려 놓았다. 연구목적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창조주일 수 있다. 지구의 유기체가 진화를 거쳐 여러 생물이 되었듯이 그들의 유전자는 생물학적 우연과 온갖 종류의 종합적 혼란으로 여러 곳에 다양한 생물로 퍼져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 중에 우리가 알만한 생물은 '점쟁이 문어 파울'이라는 놈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한 경기만 예측이 빗나갔다. 여전히 펠레의 저주는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그 한 경기도 일부러 틀린 거다. 혹시나 인간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아 정체가 드러날까 봐서다. 물론 트라팔마도인의 현재, 미래, 과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그리고 평화주의자들이나 영원회귀나 윤회를 믿는 사람들은 트랄팔마도인의 유전자가 흐른다고 의심해 봐도 좋다. 그들에게 놀라운 점은 흙이나 돌, 이끼, 나무토막, 벌레와 동물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구처럼 자연이 인간에 대하여 비인간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 중에는 판다도 있다. 인간들은 판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눈 주위를 동그랗게 화장하는 것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영원히 순환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 사람이 죽으면 육체에서 이탈된 영혼이 다른 생명체로 들어가 환생한다는 피타고라스도 트라팔마도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또한 트라팔마도인의 유전자는 우리의 뇌에도 영향을 미쳤다. 좌뇌와 우뇌가 바로 그것이다. 더 진화가 되면 트라팔마도인처럼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끊겨 독립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좌뇌와 우뇌가 각각 다른 자아를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마치 의식이 좌뇌에도 우뇌에도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것은 미래, 과거, 현재를 동시에 보는 기능의 출발이다. 천재 피아니스트들도 트랄팔마되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양손 독립이 가능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의식을 지각 덩어리 내지는 정보의 덩어리로 생각하는 트랄팔마도인은 불면증이 없다. 왜냐하면 의식의 네트워크를 끄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전원 스위치를 끄는 것과 같다. 따지고 보면 지구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게 두 가지 있다. 잠들 때와 잠에서 깨어날 때다(트럴팔마도인들은 '잠들 때'는 '너 자신을 잊어'라든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라고, '잠에서 깨어날 때'는 '너 자신을 기억해내'라든지 '세상으로 마음을 뿌려'라고 말한다). 말똥말똥하던 나의 의식을 한순간 집어삼킨 다음, 다시 원래대로 뱉어낸다. 달리 생각해 보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한눈을 팔았다가 원래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간혹, 잠에서 깰 때 불쾌하게 깨어날 때도 있다.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놀라서다. 어쨌든,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고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를 쥐락펴락하는 무서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것뿐이다.


<우주 대백과 사전> 9574837쪽에서 4974847쪽 사이의 '또 다른 행성'편의 '아리까리 행성'편의 <의식과 무의식의 쓸데없는 대화> 편에 다음의 대화록이 기록되어 있다.


"어이, 친구." 의식이 말했다."그동안 꿈쩍도 안 하고 무얼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갈 데가 어디 있겠어."시큰둥하게 무의식이 말한다. "두뇌 제일 깊은 곳에 있었지."

"너무 어둡지 않아?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할 게 뭐가 있다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 같은데"

"미결 서류와 결재서류와 보류 서류와 보안문서를 분류하고 있었어.'

"근데 요즘에 일처리가 더디고 서류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잘 못하고.."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눈을 흘기며 무의식이 말한다. "이런 이야기 하려고 나를 끄집어낸 거야?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 일이나 잘해! 네가 기껏해야 한 두 가지 일을 할 때 나는 열 가지도 넘는 일을 처리해. 일이 마치지도 않았는데 너는 또 다른 일을 넘기면서 닦달만 하고 있어. 내 책상에는 아직도 처리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렇게 말하면 널 도와주는 것도 이젠 끝이야."

"네가 하는 일이 많은 건 나도 알아."

"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줄이나 알아? 너는 기껏해야 두세 개 중에 고르는 일이나 간혹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하지만 나는 네가 하기 어려운, 귀찮은, 숨기고 싶은, 무시무시한 일을 드러내지 않고 일하고 있어. 네가 양지를 지양할 때 나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거 몰라?"

"알지, 단지 나는 너와 더 친밀해지고 싶어 이러는 거야."

"너는 내가 하는 일의 대충만을 알고 있어."무의식이 의식에게 푸념한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두 개의 물건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일을 하지만 나는 한꺼번에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은 복잡한 사항을 짧은 시간에 결정을 내려. 그걸 두고서 사람들은 '감'이라고 얘기하지. 그리고, 사람들이 학습이 끝난 다음 습관화된 것들을 나에게 떠넘겨. 예를 들어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의식을 사용하지만 습관화되면 나한테 운전대를 넘겨. 그래도 이런 건 떳떳한 일이라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어디에 부딪쳤을 때 쌍욕이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것도 참을 만 하지. 그런데 불쾌해서 숨기고 싶은 것, 억압받는 모든 것, 열등한 모든 것, 그리고, 억압된 소망, 세련되지 않은 충동, 도덕적으로 열등한 동기, 콤플렉스, 낮은 자존감, 추악한 생각, 잔인한 생각, 원한의 감정, 불합리한 편견, 자신감 없는 행동, 폭력적인 생각, 어린애 같은 환상, 부끄러운 생각, 미친 생각, 엉큼한 생각 등 네가 하기 싫은 모든 것을 내가 다 맡고 있어. 어떤 것들은 나도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서 바닥을 뒤적거리다 못해 손톱이 부러져라 파헤치고 있는 것도 있어."

"너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거 아냐. 내가 너에 비해 일거리가 적은 건 인정하지만 그 대신 나는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조금만 일해도 금방 피곤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는 하루 종일 흥얼대도 피곤하지 않지만 의식적으로 노래를 한 시간만 배워도 땀범벅이 돼. 처음 운전을 배울 때도 손에 땀이 흐르고, 병원에서 환자를 수술할 때는 기진맥진해져. 내가 하는 일들은 심적 자원을 많이 사용하는 일이라서 그래. 너는 양에 치이지만 나는 단 시간의 초집중으로 일을 처리해야 되어서 여간 힘든 게 아냐. 이처럼 너와 나는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관계야. 그림자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좀 더 친해지고 싶은 거야."

"그래 맞아! 나는 그림자 같은 존재야. 그런데 너는 내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거를 알면서도 때론 나를 감추려고만 하는 거 같아. 내 모습 뒤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 헐크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거야. 나를 인정하지 않은 서운함이야.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게 아냐. 피터팬 이야기 알지? 피터팬이 웬디네 집을 방문하고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당황해해. 그림자는 즐겁게 놀지만 피터팬은 그림자를 잡아서 붙이려고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붙일 수가 없었어. 그런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웬디가 그림자를 꿰매어주어. 그렇게 해서 분열된 감정을 회복해. 어쩌면 인생은 나의 그림자를 대신 꿰매어주는 단 한 사람을 찾는 과정인 거 같아. 그러니까 나를 뇌 속에 처박아 두려고만 하지 마!"


나는 그들의 5가지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학습에서 벗어났다'. 학습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그들의 사고를 배웠다는 이야기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말하면 심한 인식론적 단절을 겪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모든 일은 정해진 것이고, 우주는 패러디일 뿐인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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