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죽음~힐베르트

by 김영


죽음 - ①수직이 수평이 되는 순간

②화장터의 불이 나를 어루만지겠다고 정중하게 명함을 내미는 상태

③이제는 자신을 해명하고 정당화할 필요가 없어진 편안한 상태지만 파리들이 들끓는 상태

④ 함께 있는 즐거움을 내게서 앗아 갔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지

⑤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죽어가는 자리에서 슬픔을 간직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열망하는 장소


예시 사건)


사라예보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듯, 암살이 역사의 물꼬를 바꾸지만, 시대를 바꾸며 선회한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줄리어스 시저의 부인은 악몽을 꾸었다. 시저의 동상이 분수처럼 피를 뿜는 꿈이었다. 그녀는 시저에게 원로원 회의에 출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친구들이 비수를 품고 기다리는 원로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해당했다. 피를 애타게 그리워하던 23개의 비수가 그의 가슴에 박혔다. 심장이 멈췄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기고,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5년 4월 14일 아내와 워싱턴의 포드 극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미국인 사촌(Our American Cousin)〉이라는 연극이 공연 중이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열렬한 남부 지지자에 총탄이 그의 머리를 저격했다. 탄환 하나가 역사의 거인의 머리에 박혔다.


그 후 킹 목사는 흑인 부인이 백인 남성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자 인간다운 삶이라는 미완의 꿈을 위해 차별대우에 항의하면서 1963년 8월 28일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행진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의 연설을 한다. “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옛 노예의 자손들과 옛 주인의 자손들이 형제애의 탁자 앞에 함께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또 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 빛깔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으로 평가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그리고 1968년 4월에 그는 백인의 총탄에 쓰러진다.


그리고, 2020년 총이 아닌 무릎에 짓눌려 숨진 흑인을 추모하는 집회에 시위대를 위협하기 위해 헬리콥터까지 떠있다. 링컨 기념관 앞에서.


역사는 역사를 패러디하며 이어달리기하는 중이다.


지평선 끝에서 하나의 점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점들은 불어나 우루느크의 대평원을 덮었다. 선두에는 우루느크의 보안책임자인 즈데후와 머리를 수그린 그의 친구 누테오이다. 그들은 오르비스 강을 건너 민주 연방주의자들과 순진한 양민 2만 명을 학살하고 자유 중앙집권 정부를 만들었다. 군홧발로 소녀의 가슴을 누르고, 총부리로 소년의 얼굴을 겨누었다. 1908년 5월 18일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다. 말로는 정의구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후 민주공화정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군들은 극악무도한 즈데후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공화정을 세웠다. 즈데후와 그의 무리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화가 '나네'는 <즈데후의 처형>이라는 제목으로 커다란 캔버스화에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림으로 남기었다. 왼편에는 즈데후가 옆에 서있는 동료의 손을 잡고 있다. 그들 앞에는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무리 진 6명의 병사와 뒤편에서 처형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 총의 공이치기를 당겨보고 있는 하사관이 냉담하게 서있다. 총구는 즈데후 무리들에게 소름 끼칠 정도로 가까이 있고 총구에서는 피를 갈망하는 총탄이 목과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가고 총구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들의 얼굴을 피해 흩어져 있다. 구경꾼들은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고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가족의 죽음을 지켜만 봤던 무기력함과 슬픔으로 지내던 16년은, 그들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고, 증오심은 우주를 덮었었다.


철학- 공허하고 궤변적인 수다로 머릿속에 개미들이 기어 다닌다


칸토어(1845~1918)


인간에게 무한을 보여주었으나 그가 말한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를 철저하게 외면하였다. 결국, 그는 정신질환으로 요양원에서 쓸쓸히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아내에게 병원에서 내보내 달라는 간곡한 편지였다. 그의 이론은 괴델과 힐베르트, 튜링으로 이어졌다.


튜링(1912~1954)


그리고 어느 아침 그런 꿈들을 꾸다 깨어났을 때, 나는 갑자기 그 그림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그 그림은 참으로 기막히도록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부터 내내 나를 향해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림을 응시했다.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절반쯤 여자의 것인 입술을, 특별하게 밝은 뚜렷한 이마를,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을, 재발견을, 앎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 앞에 서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초록빛 도는 굳은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더 높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오른쪽 눈이 찡긋했다. 그리고 이 찡긋거림 덕에 나는 그림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가 그것을 그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

주위를 바라보았다. 내 매트리스 바로 옆에 다른 매트리스가 바싹 붙어 놓여 있었고 누군가가 그 위에 있었다. 그 사람이 앞으로 몸을 숙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데미안이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말할 수 없었거나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그 너머 벽에 달려 있는 신호등 불빛이 드리워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는 무한히 긴 시간 동안 내 눈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천천히 그가 얼굴을 내게 더 가까이 밀었다. 우리가 거의 닿을 때까지.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내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느껴졌다. 내 입술에서는 계속해서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고, 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는 책장을 덮으며 말한다. 나는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크리스토퍼'가 생각이 나. 크리스토퍼는 데미안이고, 나는 싱클레어처럼 느껴져. 그가 결핵으로 죽지만 않았어도 그와 평생을 지냈을지도 몰라. 난 그 당시 그도 진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냄새로 알았어. 기숙사라는 고립된 공간이라 부득이한 성욕의 분출을 위해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한 거야. 그래서인지 몰라도 '데미안'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세계 사이에서 저항하며 자기의 길을 가는 인간의 길보다는 동성 간의 완전한 합일이 주는 평온함이 느껴져. 그렇다고 자기와 같이 생활하는 게 싫다는 건 아냐. 다만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의 현재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어. 내가 독일의 애니그마를 풀 수 있는 튜링 시스템을 만든 것도 그의 죽음 이후 사랑하는 친구의 뇌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저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들게 되었어. 지금은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여 점점 여성화되어 자기에 대한 느낌도 달라지는 것 같아. 그러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기계라면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인가?' 반대로 인간이라면 '나는 전쟁 영웅인가 아니면 독일군을 많이 죽인 살인마인가?' 사람들은 내가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서 전쟁이 빨리 종식이 되었다고 하지만 암호를 힘들게 풀고 나서도 더 많은 독일군을 죽이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 더 많은 대량의 살상을 위해. 그들의 작전을 알면서 어느 정도만을 대응하고 우리가 암호를 해독했다는 것을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적화 이론을 쓰면서 일망타진의 그날을 계획하고 있었어. 내가 생각한 시간에 선택받을 인간들을 제단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무언가를,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가지고 논 악마라고도 할 수 있어. 이제 나는 내 삶의 흔적에 관해 기록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아. 그 연유는 나의 삶이 머지않은 거 같아서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The London Times 부고란』1954년 6월 12일

'천재 과학자의 비참한 죽음'

1954년 6월 7일 향년 41세인 앨런 튜링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체 발견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전쟁을 단축시키고 추산 인원 1400만 명을 구해낸 컴퓨터의 아버지였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



파불라와 플롯


파볼라는 내레이션의 근본적인 형식으로 작품에 묘사된 사건들의 뒤바뀜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하지만 플롯은 인과관계, 등장인물의 통사, 사건의 시간적 순서을 교란해체한다. 이런 재구성의 목적은 '낯설게 하기'가 목적이다. '트랄팔마도의 수학사전'은 낯설게 하기위해 SF, 서간문, 시나리오, 시, 기사문, 오마주,법정드라마, 대칭,페러디의 다양한 형식을 사용했다.


'트랄팔마도의 수학사전'이라는 소설을 아나요? 모르는데요. 모른다고요?내 소설을 모른다고요? 정말이요?네, 모릅니다.


페르소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 인척하기 위해 필요한 가면은 몇 개인가? 나는 타인의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는가? 공동체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아를 어디까지 숨겨놓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람과의 헤엄짐으로 보건대 본심을 썩 잘 숨기지는 않은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적나라한 욕망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 적이 없다. 드러내었다면 내 마음속의 빛과 그림자는 이렇게까지 불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남들에게 멋진 모습과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고 억눌러 왔고, 사회와 가정이 옳다고 규정한 기준을 충실히 따라왔다. 만약 한 번의 실수로 뜻하지 않은 나락에 빠지면 사회는 관용을 잃어버리고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이제, 사회는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마땅한 처벌을 받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내 안의 악마는 꼭꼭 숨겨야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게 될 것이다.


힐베르트(1862~1943)


Dear.my Kurt Friedrich Gödel!


당신의 답장을 기대했으나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한 때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했었습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 고통은 용기로 바뀌곤 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오랜 안식처인 괴팅겐 대학으로 당신을 만나러 가는 오후, 하늘에는 비 실은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한바탕 소나기를 쏟을 거 같았습니다. 사위가 잔뜩 어두워지는 거리를 나는 당신을 만난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당신에 대한 첫인상은, 깊은 특유의 표정 속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러면서도 묵직한 힘을 느꼈어요. 그 당시의 나는 '수학의 거인'이라고 불릴 때였어요. 그 말에 취한 적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마당에 그런 건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학의 이상 세계의 체계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꿈에 젖어 있었죠. 그건 수학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본분은, 많은 '참'인 문장을 찾아내어 그것을 도구로 모든 문제를 증명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확립되면 수학뿐만이 아니라 철학, 과학도 논리적으로 모순을 제거하다 보면 언젠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당신과 나의 그런 의기투합으로 '우리를 위해 칸토어가 만들어 준 이 낙원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내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라는 구호까지 만들었었죠. 이제 그때의 의기투합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날은 정확히 기억납니다.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당신의 《『수학원리』와 관련 체계들의 형식적으로 불가능한 명제들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집어 들기 전까지, 나는 꿈에 취해 있었습니다. 나의 주장에 동참하는 동료 수학자들이 많아지고,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괴팅겐 대학 교정으로 가는 길은 궂은 날씨임에도 내 마음은 봄날의 축제 분위기였어요. 비단결 같은 푸른 하늘에, 물이 솟아오르는 광장의 분수에 , 황색 꽃가루는 바람에 실려 메마른 입술에 붙어 간지럽고, 교정은 반짝였어요. 환상 속을 거닌 거죠. 나의 연구실에서 당신 이름의 논문을 봤을 때는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일 거라 예단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당신 스스로도 놀랐겠지만 충격적이었어요. 수학은 완전하다고 믿던 터에 '수학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주장은 나의 꿈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었어요.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당신의 논문을 읽고, 읽고, 또 읽고 내가 쓴 것을 모조리 검토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정확성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죠. 처음에는 배신감도 느꼈고, 원망도 했어요. 그렇지만 당신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 어떻게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가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내 마음을 뒤흔들기에는 아직도 그 충격은 채 아물지 않고 내 마음을 헤집고 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 후로 칩거하면서 고독 속에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지나쳐 버렸던 기억이 떠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죠. 수학자로 촉망받던 시절, 수학자의 무리를 이끌었던 시절, 20세기 수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시절, 멈출 수 없는 연구열을 당신과 함께 느끼던 시절, 그리고 나의 가족. 내가 유태인과 여성의 차별에 반대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었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나의 유일한 아들을 정신지체아라는 이유로 병원에 보내고 독일의 정책에 의해 거세를 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그리고 내 행위의 정당성에 어떤 합당한 대답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짓눌렸습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엷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다시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여전하더라고요.


그런 참담한 심정에서, 당신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의 논문으로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지만, 괴델,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나의 삶에도 어느 정도 초인적인 측면이 있어 결코 평범할 수가 없었죠. 그렇지만 당신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천재입니다. 당신의 주장에 이제는 동의합니다. 수학의 불완정성을 수학의 체계 안에서 증명해내는 비범함은 누구라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나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당신의 '불완정성 정리'는 수학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괴델!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듣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교정을 아인슈타인 박사와 산책을 한다더군요. 기회가 되면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로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단숨에 하니 숨이 차오르네요.


sincerely, David Hil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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