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빅뱅~신

by 김영


빅뱅


너무 어려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빛과 시간과 공간과 여러 가지 살림살이들이 머리카락 한가닥도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었다. 아니, 응축되어 곤죽이 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친구를 찾거나 그들의 근황을 알아보거나 내가 누구인지 알릴 틈도 없었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라. 서로 접착제처럼 붙어서 꼼짝 못 하고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상황을, 서로의 몸이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는 상황을, 끈적거리고 불쾌한 체취가 진동하는 상황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테레사 수녀가 있다고 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아주 작은 빈틈이 생겨서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미친 듯이 격렬한 탈출을 감행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밝은 세상에 눈을 뜨지 못했지만 그래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유를 만끽하며 더 멀리, 더 빠르게, 팽창하고, 팽창하고, 또 팽창했다. 그리고 또 팽창하면서 공간을 만들었다. 최초의 한 점에 있었던 가족들을 찾겠다는 생각도 없이 다시 팽창했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겠는가? 그렇게 해서 허망한 비존재의 공백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 가끔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날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러 볼 뿐입니다.


사과-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과일


에덴동산의 사과는 인간이 최초로 신을 배신하게 만든 금단의 열매이며, 뉴턴의 사과는 인류에게 우주의 내밀한 비밀의 실마리를 풀게 해 준 열매이며, 튜링의 사과는 청산가리를 주입해 자살의 도구로 사용한 열매이며, 애플사의 사과 로고는 튜링의 사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혁명을 이끈 사과도 있다.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나는 순간의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다”라고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 세잔은 말했다. 물론, 이런 바람은 이루어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세잔의 사과를 보고 있으면 그것이 커지는 것 같아 살아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고 했다. 아마도 선악과 (善惡果)처럼 태초의 인간을 무섭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거 같다. 그 힘은 입체감과 색체를 통해서 나온다. 그의 사과를 보면 빨간색 말고도 군데군데 노란색과 초록색이 나타나는 데 이것은 원래 사과의 색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과의 색채를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입체감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빨간색은 사과를 앞으로 나와 보이게 하고, 초록색은 뒤로 물러나 보이고 노란색은 중간의 위치를 나타냄으로 입체적이면서 동적인 효과를 낸다. <사과와 오렌지>에서는 높이 솟은 중앙의 과일 그릇과 꽃병은 옆에서 바라본 관점에서 그렸고, 아래의 사과와 접시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렸다. 여러 시점으로 본 사물을 한 화면 아래 구성하여 중세시대 이후의 단일 시점을 통한 원근법을 무너뜨리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사물은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보아야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미술을 통해 말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세잔이 보는 식으로 보고 있을까? 남프랑스 시골마을에 살던 화가를 꿈꾸던 세잔에게 소설가를 꿈꾸던 에밀 졸라가 고마움의 표시로 건네준 사과는 결국 미술사의 혁명을 이끌었다.


사랑


그녀가 나이가 들어감에도 끈끈한 정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이성 간의 우정이다. 사랑은 그녀가 비록 나이가 들어 팽팽한 피부와 몸의 실루엣과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버릴지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인다면 사랑임에 틀림없다. 설령 그들 삶에 뜻하지 않는 불협화음이 있더라도 쓸 것과 못쓸 것을 체에 올려놓고 흔들거나 까불러서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장면에 불쑥 던지는 유머로 치환한다면 그들의 우수 어린 사랑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선고- 나의 목에 굵은 밧줄을 간절히 고대하는 것


선택-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우리를 반기는 것


섹스 -① 숨이 붙어 있는 사람끼리 붙어먹는 것.

② 새로운 생물을 만드는 땀나는 행위.


수직- 삶. 트랄팔마도의 수학 사전의 소재중 하나.


수평- 죽음. 트랄팔마도의 수학 사전의 소재중 하나.


수학, 그까짓 거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따뜻한 욕조는 더 이상 웅크린 너를 가둘 수가 없다.

황갈색 배는 꿈 툴 거리고 욕조 구멍으로 낯선 백묵 같은 빛이 들어온다.

너는 그 좁은 구멍으로 빨려나가 한계가 없는 넓은 세계를 처음으로 만났다.

부력을 느끼던 너는, 이젠 온몸으로 중력을 느꼈다.

허공에서 너는 사막의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과 첫 입맞춤을 했다.

어느덧 너의 서사가 탄생되고, 어미는 눈물을 흘린다.


이 위대한 경탄의 순간을 생각하며 담배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다. 담뱃불은 붉게 타오르고, 가벼운 어지럼증이 몽환적이다. 연기는 중력을 거슬러 구부러진 길을 따라 헤엄치듯 올라가며 흩어진다. 흩어진 연막 속에는 환희, 영광, 상처, 그리움, 두려움, 분노, 절망, 애정, 이해, 잔혹함, 슬픔, 욕망, 정열, 회피, 후회, 미움, 충돌, 희망, 회한, 상실, 충만, 연민이 숨어져 있다. 너의 특이점의 상태는 산산이 부서져 필연적인 세계에서 우연의 세계로 '툭' 던져졌다.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마! 네 몸에 흐르는 유전자에는 승리의 기억이 새겨져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봐도 증명이 돼. 앞으로 너는 차츰 변하게 될 거야. 방향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변화는 네가 성숙하는 것이니 너의 세계를 멋있게 재창조해! 설령 멋있게 창조를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어. 어떤 이가, 실망할 수도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 대신 멋지게 변명해주었어. 비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고귀한 목적을 이루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거야. 사람들이 말하는 소명의식 같은 건 생각하지 마. 우리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이자, 운반자로서의 기계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어진 소임을 다한 거 아니겠어? 네가 이 말에 동의를 하든 동의를 안 한 든, 그렇다는 거야.


잘 따라오고 있는 거지? 그럼, 이쯤 돼서 조그만 깊이 얘기할 께.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얘기야. 사람들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주제야.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에 대한 답이 가치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가치판단은 개인의 환경적, 철학적, 종교적인 관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아직은 종교를 믿지 않아 미숙한 과학적 사고로 말해볼게. 과학은 '왜'가 아닌 '어떻게'라는 생각이 많은 학문이야.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 잘 들어봐! 소중한 너는 사랑하는 부모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어. 이 유전자는 너의 기원이야. 아직도 생명의 기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질문의 사슬을 타고 내려가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나게 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엘리스는 지하에 있는 꿈의 세계를 발견하는데 그곳에서는 동물과 식물, 물체들이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용기 있게 모르는 세계를 계속 탐험해. 공간이 접히고 시간이 팽창하고, 자의식이 있는 것의 세계로. 동화 같은 아주 작은 미지의 세계에는 양자역학이란 놈이 버티고 있어. 양자역학은 20세기 초반 물리학에서는 혁명 같은 사건인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만큼 믿기 힘들어. "잘 따라오고 있는 거지?" 양자역학에서 모든 것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어. 이와 같은 이중성 때문에 아주 작은 입자, 즉 원자는 한순간 한 곳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야.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건 알아.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원자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이상한 거라고.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들은 너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었던 건 많았던 거 같아.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면 정상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왔어.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해가 지고, 하루가 24시간인 것도 지구에서는 일어나지만 우주에서는 비정상적인 일이야. 어쨌든 양자역학에 따르면 너는 어딘가에도 존재할 수 있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거야. "너무, 멋있지 않니!" 너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말.


어이가 없을 거야. 물론 나도 어이가 없어. 그렇지만 넓은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자! 이상한 이야기보다 이해할 수 있는 수학 얘기를 해볼게. 물론 싫겠지만. 너희들은 수학만 생각해도 불안하지? 수업시간에는 질문을 받을까 봐 두렵고, 시험을 볼 때는 극도로 긴장하여 시험지를 받기 전부터 떨고, 시험지를 받으면 심장은 빨리 뛰고, 처음 보는 문제를 보면 앞이 캄캄해지지. 아는 문제도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가 많고, 지문이 긴 문제를 보면 뇌 정지상태에서 눈만 읽어 내려가지. 시험시간은 부족할 거 같고, 샤프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많이 나서 샤프를 놓칠 때도 있어. 샤프심은 자꾸 부러지고.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손톱도 물어뜯어서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아. 그나마 피를 안 보는 게 다행인 거지.


그렇지만 희망 섞인 얘기 하나 해줄게. 이 모든 증세는 실은 나의 증세야. 갑자기 동료애가 생기지 않니? 고백하지만 나도 수학이라는 게 무섭고 두려워. 단지 지금은 경험도 쌓이고 오랫동안 수학을 해왔고, 수업 준비를 미리 해서 그나마 나아진 거야. 그럼 수학이라는 과목을 특별히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궁금해할 거 같아. 그런데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런 건 없으니깐. 나도 물론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홀로 위험에 맞서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너희들에게 보이고 싶어. 한 때는 나도 그런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슬프게도 아니더라고. 만약 수학을 이미 잘하고 있다면 박수를 보낼게. 반대로 수학을 못한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어. 수학 말고도 너희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근데 이왕 수학을 하고 있다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지는 말어. 그런 너희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이 상황을 바꿀만한 대안이 없어서 마음이 더 무기력해지고 아프단다. 너희들이 무기력한 이유는 알아. 끝없는 서열화, 획일적인 평가, 승자독식의 시스템의 결과겠지. 너희들의 잘못은 아냐. 단지 지식 위주의 입시 경쟁 교육에 매몰된 사회에 문제가 있어. 시험문제를 열심히 반복해서 풀면 학력이 높아지고, 명문대학에 몇 명 더 보내는 것으로 교육의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한 잘못이야.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하다 보니 선생님은 가르치는 존재로, 너희들은 가르침과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사라지게 되었어. 미안하게 생각해.


그러면 희망이 없는 건가? 그건 아니야!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가 수학이라는 학문의 쓰임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어. 수학은 항상 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절대적이고 확실하고 엄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맞지 않아. 나의 말이 아니라 위대한 수학자들의 생각이니 의심은 하지 마. 그런데 우리는 영문도 모른 체 정의와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기만 해. 수학에서 어떤 문장은, 참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고, 거짓말이라고 하면 참이 되는 것도 있어. 우리가 역설이라고 말하는 것이야. 이것뿐만이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선은 만나지 않고,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만 이것이 적용이 되지 않는 기하학도 있어. 그리고, '괴델'이라는 천재 수학자는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문장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 이전의 수학자들은 모든 수학적인 문장은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고, 그것들을 계속 찾아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어. 그것이 깨진 거야. 과학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많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고 하고, 그것을 주류 이론이라고 할게. 그런데 주류 이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정적인 데이터가 나온다고 해서 주류 이론이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아. 주류 이론을 부정하는 데이터가 충분히 나오기 전까지는 과학자는 주류 이론을 계속 믿다가 부정적인 테이터가 넘칠 때 새로운 이론으로 갑자기 움직여.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볼게. 이론을 건물이라고 하고, 이론에 어긋나는 데이터를 지붕에 있는 돌이라고 할게. 계속 지붕에 돌이 쌓이다 보면 집이 무너지는 현상과 같아. 이런 과정을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 이동'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아예 진리는 없는 것인가?'에 대해 혼란스러울 거야. 다시 수학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볼게. 수학의 쓸모는 확실한 답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를 묻는 학문이야.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정의를 내리고, 왜 그런 연산 규칙을 따랐는지를 묻는 학문이야. 수학의 발전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을 의심하고 질문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어. 그런 '태도'를 배우면 되는 거야. 앞으로 너희들은 수학 문제보다 복잡한 문제,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닿을 때가 많을 거야. 그때 피하지 말고, 질문하고, 비판하고, 수긍하면 되는 것이야. 이게 수학의 진정한 쓸모야. 앞서서 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 모두가 앞으로 갈 때 혼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느리다고 방향을 상실한 건 아니니까. 결국에는 자기 발견이 중요해. 그래야지 나이 들어서도 이 세상을 잘 견디면서 살아낼 수 있어.



활동 보고서

① 작성일자 : 2022년 5월 28일 보고자 : 이지은

② 제목 : 숲 속의 사계절

③ 활동기간 : 2021년 5월~ 2022년 4월

④ 활동 목적 : 우리 주변 환경의 관찰을 통한 자연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⑤ 주요 내용


숲은 사계절이 확연히 다르다. 봄을 알리는 소리는 철새들로부터 시작된다. 봄이면 생명력이 다시 태동하고 푸른 대지 위로 흰 구름은 흘러가고, 햇살은 화사하고 부드럽다. 나무와 평화로운 언덕, 그리고 봄의 요정들이 춤을 추는 듯한 축제의 분위기이다. 다들 들떠있다. 그런 봄이 짙어지면서 여름이 시작된다. 여름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 푸르름과 싱그러움, 에너지가 넘친다. 낮동안의 열기는 흙냄새를 뿜어내고, 꽃과 풀 냄새를 사방에 퍼뜨린다. 여름은 특유의 끈적이는 관능이 있다. 간혹 넘친 에너지를 천둥과 폭풍우가 식혀 준다. 여름은 열정이 넘치는 계절임에는 확실하다. 이런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의 수확은, 가을이 담당하고 있다. 불타는 듯한 단풍이 숲을 물들이며 울긋불긋한 무대를 만들고, 가을은 수확의 기쁨을 노래한다. 마지막으로 겨울은 세상의 흔적을 순백으로 덮는다. 눈보라가 몰아치면 숲은 겨울잠에 들어가고, 새들은 떨어진 씨앗이나 나무 열매를 먹기 위해 눈밭에 내려앉는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콜필드'는 호수의 얼음이 얼면 오리와 물고기는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한다.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살이 오른 물고기가 겨울이 되어 속까지 언 얼음 속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나도 궁금하다.


숲에 대해서는 아직 할 말이 많다. 먼저 생각을 넓혀 지구를 생각해 보자. 일단 반구 모양의 케이크가 있다고 하고 위에서부터 정가운데를 칼로 자른다. 단면은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부터 핵, 맨틀, 지각이다. 핵은 아마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가지고 온 불을 숨긴 장소 같다. 매우 뜨겁다. 이 열을 막기 위해 맨틀이 있고, 이중으로 막기 위해 지각이 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수박의 단면이 설명하기에 나을 뻔했다.


지각은 식물들 덕에 초콜릿 케이크 같은 땅에 녹색 외투를 입었다. 푸석한 초콜릿 케이크 같은 토양에는 수많은 생물이 산다. 곤충과 미생물은 식물의 잔해와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분쇄해 처리하고, 각종 쓰레기를 토양으로 분해한다. 또한 박테리아와 균류는 유기물을 썩게 하고 토양과 대기의 원활한 순환을 만들고 지렁이들은 지표면에 부드러운 토양을 토해낸다. 토양에는 이런 작은 생물뿐만이 아니라 씨앗들이 많이 있다. 씨앗은 가망이 없을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노린다. 그 기회는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도박이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씨 안의 양분을 모두 소진하기 때문이다. 모두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한 토양에 비해 숲이라는 공간은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소리가 있다. 잎과 가지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 지표면과 이파리들의 마찰 소리, 뿐만 아니다. 개골개골 소리, 짹짹거리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사각사각하는 소리, 삐걱거리는 소리, 딱하고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타닥타닥 우두두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있다. 숲에서 듣는 빗소리는 신비스러운 심포니이다. 연못에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은 동심원의 꽃을 만들고, 잎사귀에 떨어지는 비는 갈증을 해소하고 깨끗이 씻겨주는 생명수이다. 땅에 떨어지는 비는 흙먼지를 진정시켜주고 땅을 숨 쉬게 한다.


마지막으로 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무와 꽃이다. 소나무, 플라타너스, 밤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와 목련, 개나리, 벚꽃, 찔레, 장미, 라벤더, 나팔꽃, 들꽃들이다. 나무와 꽃이 없는 숲을 상상해보자. 늪 같을 것이다. 나무는 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잎으로 치장한다. 과일이나 견과 같은 열매를 제공하기도 하고 해먹이나 그네를 제공하기도 한다. 늦가을부터는 거추장스러운 나뭇잎을 벗어던지고 겨울잠을 잘 채비를 한다. 먼 우주에서 날아온 햇빛을 먹고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을 가지고 포도당을 만드는 광합성은 중지되고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일도 봄까지는 그만둔다. 나무는 아니지만 나무의 빳빳함을 동경하는 게 있다. 바로 덩굴이다. 덩굴은 손의 악력이 대단한 녀석이다. 악력으로 뻔뻔스럽게 나무를 타고 게처럼 옆으로 올라간다. 다 귀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미움을 사는 식물도 있긴 하다. 잡초이다. 잡초라는 이름도 인간이 규정한 것이다. '잡초처럼 강하게 살아라'라고 하면서 정작 잡초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놓았다.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서 임시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무와 꽃에서 신기한 게 한 가지 있다. 뿌리는 지상부를 떠받치고 붙들면서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어떻게 높은 곳까지 물을 운반하는지, 중력을 거슬러해에 가까워지는지 놀랍다.


확인처 : 교과 협의회 소속 : 2학년 7반 연락처 : 010 1234 1234 성명 : 이 지은



프로메테우스와의 내통으로 불을 얻게 된 그들은 불을 길들여서 추운 밤 온기를 얻고, 어슬렁 거리며 주위를 배회하는 사자에 대항하고, 화식을 통해 창자는 짧아지고 뇌는 커졌다. 헐벗은 몸은 동물들의 가죽을 입고 가죽끈으로 고정하고, 창의 끝에는 갈아 만든 날카로운 나뭇잎 모양의 돌을 달고, 동굴벽에는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손도장을 찍고, 그들의 꿈을 표현하고, 몸통은 인간이면서 머리는 사자모양의 물건을 만들어 종교행사를 하였다. 수평으로 누워있는 죽음 주위에서는 정적을 깨고 허리가 굽은 생명체의 입에서 파열음이 나오면 뒤이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유령과 정령을 믿어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춤을 추면서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 이런 증거는 그들이 지적 생명체이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상상할 능력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한 때가 되어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하느님께서는 은혜 로우시다>는 '반전 성경'이 탄생한다. 그 신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가져다 줄 하느님의 독생자이자 구세주였다. 그는 12제자를 거느리고 기적을 일으켰다. 문둥이의 병을 고치고, 벙어리의 입을 열게 하고, 미친 자의 정신을 돌려주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렸다.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었다. 문둥병을 앓던 이는 문둥병에 걸리기 전 살던 곳과 문둥병 마을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입을 열게 된 벙어리는 고자질하기를 좋아하여 배신을 일삼고, 앉은뱅이였던 이는 발 빠른 자가 되어 백성을 학대하는 병정이 되고, 눈을 뜬 소경은 호기심이 많아져 첩자 노릇을 하고, 죽은 자를 되살리니 남의 원수 되는 자가 늘어갈 뿐이었다. 그는 실은 이런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감옥에서 고초를 당해도,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어도, 그들이 모른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을 능멸하는 무수한 자들의 메마른 입술에 버림받는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런 기적을 행한 이유는 그의 성과주의 때문이다. 기적의 대상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구원자로서의 자신의 예언을 실현시켜 자신의 전능함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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