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 (1906~1978)
Dear.my Kurt Friedrich Gödel!
당신의 답장을 기대했으나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한 때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했었습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 고통은 용기로 바뀌곤 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오랜 안식처인 괴팅겐 대학으로 당신을 만나러 가는 오후, 하늘에는 비 실은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한바탕 소나기를 쏟을 거 같았습니다. 사위가 잔뜩 어두워지는 거리를 나는 당신을 만난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당신에 대한 첫인상은, 깊은 특유의 표정 속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러면서도 묵직한 힘을 느꼈어요. 그 당시의 나는 '수학의 거인'이라고 불릴 때였어요. 그 말에 취한 적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마당에 그런 건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학의 이상세계의 체계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꿈에 젖어 있었죠. 그건 수학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본분은, 많은 '참'인 문장을 찾아내어 그것을 도구로 모든 문제를 증명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확립되면 수학뿐만이 아니라 철학, 과학도 논리적으로 모순을 제거하다 보면 언젠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당신과 나의 그런 의기투합으로 '우리를 위해 칸토어가 만들어 준 이 낙원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내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라는 구호까지 만들었었죠. 이제 그때의 의기투합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날은 정확히 기억납니다.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당신의 《『수학원리』와 관련 체계들의 형식적으로 불가능한 명제들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집어 들기 전까지, 나는 꿈에 취해 있었습니다. 나의 주장에 동참하는 동료 수학자들이 많아지고,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괴팅겐 대학 교정으로 가는 길은 궂은 날씨임에도 내 마음은 봄날의 축제 분위기였어요. 비단결 같은 푸른 하늘에, 물이 솟아오르는 광장의 분수에 , 황색 꽃가루는 바람에 실려 메마른 입술에 붙어 간지럽고, 교정은 반짝였어요. 환상 속을 거닌 거죠. 나의 연구실에서 당신 이름의 논문을 봤을 때는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일 거라 예단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당신 스스로도 놀랐겠지만 충격적이었어요. 수학은 완전하다고 믿던 터에 '수학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주장은 나의 꿈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었어요.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당신의 논문을 읽고, 읽고, 또 읽고 내가 쓴 것을 모조리 검토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정확성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죠. 처음에는 배신감도 느꼈고, 원망도 했어요. 그렇지만 당신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 어떻게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가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내 마음을 뒤흔들기에는 아직도 그 충격은 채 아물지 않고 내 마음을 헤집고 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 후로 칩거하면서 고독 속에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지나쳐 버렸던 기억이 떠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죠. 수학자로 촉망받던 시절, 수학자의 무리를 이끌었던 시절, 20세기 수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시절, 멈출 수 없는 연구열을 당신과 함께 느끼던 시절, 그리고 나의 가족이 떠올랐어요. 내가 유태인과 여성의 차별에 반대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었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나의 유일한 아들을 정신지체아라는 이유로 병원에 보내고 독일의 정책에 의해 거세 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그리고 내 행위의 정당성에 어떤 합당한 대답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짓눌렸습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엷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다시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여전하더라고요.
그런 참담한 심정에서, 당신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의 논문으로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지만, 괴델,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나의 삶에도 어느 정도 초인적인 측면이 있어 결코 평범할 수가 없었죠. 그렇지만 당신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천재입니다. 당신의 주장에 이제는 동의합니다. 수학의 불완정성을 수학의 체계 안에서 증명해내는 비범함은 누구라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나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당신의 '불완정성 정리'는 수학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괴델!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듣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교정을 아인슈타인 박사와 산책을 한다더군요. 기회가 되면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로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단숨에 하니 숨이 차오르네요.
sincerely, David Hilbert
낭만- 촛불 켠 부엌에서 춤추는 것
당황- 소풍 가는 날 막 집을 나서는 데 비가 올 때
독자 -이제는 멸종된 종족, 한 때는 서점이란 곳에 출몰했다고 함
데카르트(1596~1650)
'근대 철학의 아버지' 라 불리며 합리론과 해석 기하학을 창시했다. 그는 공리를 세우고 공리로부터 연역하여 철학적 질문의 답을 구했다. 그의 제1 공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그는 생각의 주체를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끌어내었다. 인간을 중심에 세웠다. 그는 기하학의 새로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넓게는 우주, 좁게는 자연에 진리가 있다면 도형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도형에 연결시켰다. 그런 과정에서 모든 도형의 근원인 점에 착안하여 점의 위치 설정에 고민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좌표계이다. 그러면서 도형을 수식으로 바꾸었다. 우주를 수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덕에 과학자는 세상을 기술하는 새로운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리듬감
아무도 모르게 나의 글 속에 은밀한 심장박동 소리를 담아내려는 것
리만 가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350년이 지난 후에 증명이 되었다. 페르마의 교활한 영업전략으로 수많은 수학자들이 낚였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여백이 좁아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라는 말이 어찌 보면 맞을 수도 있다. 현대 수학을 총동원하여 1994년에 1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증명이 되었으니 좁은 건 맞다. 그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떡밥이 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에게 누군가 질문했다.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서 살아남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문명을 재건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딱 한 문장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말을 남겨야 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그만큼 원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수학에서도 과학에서 원자만큼 중요한 게 있다. 그건 2,3,5,7,11,... 같은 소수이다. 수학자들의 소수에 대한 집착은 과히 병적이다. 그 병적임은 우주 속의 숨어있는 수학적 진리에 대한 갈구이다. 모든 물질이 레고 블록을 결합하듯 몇 가지 원소의 결합에 따라 물체의 형태가 달라지듯 수학은 수로 되어있고 존재하는 모든 수들은 소수의 곱으로 되어있으니 소수의 비밀을 밝히려고 하는 것은 이해는 간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우주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
이미 2300년 전에 유클리드는 소수가 무한함을 증명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소수에는 규칙이 있는가가 모든 수학자의 최고의 관심사이다. 오일러는 소수곱으로만 표현된 식에서 원주율 파이(π)를 이끌어 냈다. 소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도형중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도형인 원과 연결이 될 수 없다. 수학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무질서하게 생각한 소수에 규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후 가우스는 어떤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가 몇 개인지를 알려주는 소수 정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가우스의 제자인 리만이 등장한다.
그는 가우스의 소수 정리가 성립함을 밝히고, 오일러의 식을 변형하여 함수를 만들고, 함수의 0이 되는 값이 일직 선위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리만 가설은 소수의 규칙성에 관한 이론이다. 리만 가설이 참이라는 가정하에 성격도 급하게 수백 개의 논문이 나왔다. 미리 돈을 땡겨쓴 거나 다를 바 없다. 리만 가설은 아직 증명이 안되었지만 수많은 수학자들은 리만 가설이 맞다는 전제하에 많은 문제를 풀어왔다. 그리고, 리만 함수의 0이 되는 값을 구하여 소수의 간격을 나타내는 식을 만든다. 어느 날 수학자와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와 밥을 먹다가 대화 도중, 소수의 간격을 나타내는 식이 양자역학의 식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한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수의 거리에 대한 식이 양자역학의 에너지 분포의 식과 일치한다는 것은 수학적인 관념의 식과 실제의 세계(미시세계)가 같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수가 현실과 연결이 된다. 이러니 천재들은 미친 듯이 풀고 싶다는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수와 원자가 연결된 것이다.
힐베르트는 죽어서 만약 천년 뒤에 살아난다면 눈을 뜨자마자 '리만 가설은 풀렸나?'라고 질문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수학자는 외계인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리만 가설이 증명되는가' '너희들은 리만 가설을 아느냐'라고.
리만 가설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학계의 악명 높은 난제이다. 이것을 풀다가 많은 수학자들이 미쳐버리거나 죽거나 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는 창조주의 비밀을 밝히려는 인간에게 '어딜 감히 인간 따위가 신의 섭리를 넘보려 하느냐'며 경계를 하는 것일 수 있다. 하늘에 닿으려다 무너져버린 바벨탑 같다고나 할까. 신의 입장에서는 데모크리토스, 뉴턴, 아인쉬타인, 하이젠베르크까지의 인간의 집단지성은 봐줄 만했지만 더 이상 우주 설계의 비밀이 누출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신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것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은 신만이 가져야 하고, 이 영업비밀은 절대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특허권에 대한 견제일 수 있다. 특허는 이미 신에게 있는데 인간이 신이 가진 특허권을 넘보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