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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주사위는 잘못 던져졌다'

<6화> 머리말을 대신하여

이제부터는 아들집사에 대해 말하겠다. 추론의 근거는 그의 페이스북과 블로그의 글, 그리고 내가 살펴본 것들이다. 이야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간단한 신상(머리말을 대신하여)

(2) 사라진 것들의 대충 연대기

(3) 몇 가지 사실과 수수께끼


혹시 여러분은 내가 아들집사를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이야기를 꾸며 댈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기는커녕 이 글을 읽다 보면 정반대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좀 더 그럴듯한 인간으로 꾸밀 수도 있었지만 진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간단한 신상


외모

본인 생각만큼 잘생기진 않았다.


출신 

나의 신세나 집사의 신세나 별반 다르지 않다. 뼈대 있는 가문출신이 아니다. 출생환경은 그의 평생을 쫓아다닐 것이다. 물론, 글로서는 자신을 품위 있는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지만 말이다.


나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눈은 더 이상 맑지 않고, 머릿결은 더 이상 윤기가 흐르지 않고, 피부는 더 이상 탄력적이지 않다. 요즘 그의 눈에는 웬만한 사람들이 젊어 보인다. 애석한 일이지만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더 애석한 일은 제대로 늙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길모퉁이를 돌다가 어떤 사랑의 꿈이 그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인들이 그에게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볼품없는 수컷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간혹 젊은 여자의 거만한 시선을 받으면 그의 노화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마치 햇빛을 쐰 뱀파이어 같다. 그녀들 앞을 스치듯 지날 때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은 가빠진다. 그녀들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것만 같다. 만약, 아름다운 노래에 취해 플로어에서 춤을 춘다면 젊은이들이 하나둘 플로어에서 사라질 거다.


외적인 변화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도 있다. 수직적 세계로의 동경은 수평적 세계로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타인들은 그래 봤자 힘 잃은 자의 자기위안이자, 자기기만이라고 조롱할 수도 있다. 상관하지 않는다. 그도 자기 위안과 자기기만을 일삼는 사람을 경멸한다. 예컨대, 다른 인간을 위한다는 인간, 각자의 조국을 위해 폭력을 일삼는 인간, 인간문명의 존속을 위한다고 파렴치한 짓을 하는 인간,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악스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이다. 바닥모를 구토가 난다. 아직도 유일한 실체는 자신의 영혼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 아직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미학적 유혹에 빠져있는 인간들에 대한 구토이다. 미학적 유혹에 빠지지 않는 인간들이 하는 행위란 세상으로부터 무던해지는 일이다.


가족관계

아버지도, 아내도 있었지만 그들을 끝내 잘 몰랐다.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있지만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는 가족과의 계약(자식의 도리, 가장의 책임, 멋진 집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행위,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파기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여인과 도망쳤어야 했다. 더 나아가 획일화된 관념이나 억압된 감정과 유치한 감수성, 그리고 다양성을 부정하는 모든 것들(이념, 종교, 헛된 진리)로부터 탈출을 감행했어야 했다. 식탁 위에 파리가 앉지 못하도록 씌우는 그물망 커버처럼 그의 존재를 답답하게 옥죄는 그물망으로부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들어앉아 떠나지 않는 유아적인 감성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지워버렸다. 결국에 그의 영혼은 무거운 짐을 둘러맨 인부처럼 구부정해져 갔다. 


말투

살펴볼라치면 말을 할 때 투박하고 짧다. 투박하고 짧음은 냉소적으로 들린다. 간혹, 주변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다.


재주

누구나 한 가지씩은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에게도 남들 못지않은 특별함이 있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재주이다.


표정

다정스럽고 온화한 미소, 눈부시고 매력적인 상쾌함,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는 몸가짐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듯한, 세상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인생은 하나의 슬픈 동화라는 걸 깨달은 듯한, 세상풍파에 시달려 지쳐버린 듯한, 그가 바라던 인생으로 복귀할 수 없는 무능력에 실망한 듯한, 표정이다. 


간혹, 어떤 순수함이 세상과 충돌할 때 견뎌야만 하는 복합적인 표정이 보인다. 좀 더  살펴보면 무관심과 좌절감이 그의 얼굴을 딱딱하게 감싸고 있지만 뭔가 막연한 지적인 기운이 스며있기도 하다.


성격

딱히 나쁘다고도,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지만 좀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필라멘트처럼 빛과 열기가 있던 젊은 시절, 고집스럽게 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같은 방향을 향했다. 자침을 붙드는 힘은 어설픈 열정과 약간의 유용함이었다. 그랬던 열정은 사라지고 유용함은 소용없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생기라곤 없다. 모든 기대는 다시 절망으로 이끌기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자의 겁먹은 듯한 목소리다.


과거의 일

'모순'이란 단어는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먼저 드는 생각은 '참, 거짓이 동시에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오랜 기간 수학강사라는 이력 때문이다. 수학강사란 정의(定義)를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는 사람이다. 물론, 말로만이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말은 괄호 속에 넣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랬더랬다. 수학선생들이 즐겨 쓰는 말 중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가르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수학의 권위뒤에 자신의 무능을 감추는 것이다. 수학은 원래 왕도가 없으니 쉼 없이 줄곧 풀다 보면 될 수도 있다는 무책임한 자기 고백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 만하다. 심한 것은 자기가 받은 교육을 누군가를 내리누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도  자유롭지 않다.


그는 학원일을 빼고는 잘하는 것이 없다. 학원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면 사기당하기 딱 맞지만 학원이라는 좁은 새장 안에서는 잘난 척한다. 학생들에게, 자기에게도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이 존재했음을 들먹이며, 너희들의 젊음도 한 때라고 질투 섞인 말을 하며,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너희들도 나와 같은 동일한 범주에 묶이는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새장에서만 사는 새들은 새장 문을 열어두어도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 날갯짓하는 법을 까먹은 거다. 누군가 새장에서 내동댕이 치면 한쪽 구석에서 가까스로 날갯짓하는 법을 기억하고서 다시 새장으로 들어가려고 새장 주변에서 푸드덕거릴 것이다. 딱 그의 처지다.


현재의 

그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죽지 않으려는 일이다. 급전직하된 상황에서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면서 살아야 할 이유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는 찾지 못할 자신을 되찾으려 글을 쓰고, 누군가는 세상에 속아왔음을 글로 쓰지만, 그는 단지 살기 위해서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가운데 살고 싶은 마음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서다. 


그 나름의 치밀한 계획과 심사숙고한 행동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은 돌이켜보면 허황함과 미숙함과 졸렬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바라던 극적인 반전도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에 깨달은 것은, 그는 기대했던 그가 아니었다. 한때는, 그가 아닌 그를 동경했지만, 이젠, 그가 그인 것에 지쳤다. 결국에는 그를 굴복시킨 것은 그였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망가져 버린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다. 엉덩이를 의자에서 조금 틀어 사물을 바라보고 삶을 관조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글을 쓸 때마다 보잘것없는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지만 다 쓰고 나면 다시 보잘것없는 글이 된다. 한올씩 풀리는 듯하지만 이내 길을 잃고, 단 한 번도 본질에 침투하지 못한다. 침투할수록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들러붙고 방향을 다시 잃는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얽히고설킨 문제들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간혹 아름다운 글귀를 쓰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빛나는 몇 분이다. 


글쓰기에 덧붙여 산책을 한다. 그의 곁을 끊임없이 찾아준 햇살과 몸을 휘감는 산들바람과 금빛으로 어른거리는 저물녘과 아득한 별들에게 감사한다.  글쓰기와 산책, 이 두 가지는 하루를 그리움과 불안감으로 시작하여 지루하기 그지없는 망할 놈의 세상과 느려터진 시간을 견디는 자구책이다. 한 때는 빌어먹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놀렸다. 다른 사람의 성공담에 억지로 기뻐하고,  슬프지 않은 이야기에 부자연스럽게 비통해하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때는 그런대로 시간은 견딜만했다.


친구

나에게 고양이 친구가 없듯이 그도 인간 친구가 없다. 천생연분이다. 그런 소설이 연상이 된다. 세계가 멸망한 후 개와 주인공만 나오는 소설. 그가 처음부터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정이라는 것을 실감해 본 적이 있긴 한 거 같다. 잘못 알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겼다. 외롭지 않으려 낄낄거리며 같잖은 유머를 해대며 만나다가 수상한 이유로 깨져버렸다.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때는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그 후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존재가 떠난 빈자리를 다른 존재가 그 공허를 메꿀 일이 없다. 원래 실망스러운 존재인 인간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거둔 거 같다. 잘한 결정이다.


따지고 보면 상실은 모래사장에 써놓은 이름이 사라지듯,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었다. 간혹 가슴이 뜯겨나가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견디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당연했던 일이 다르게 다가왔다.


연인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비슷한 목적을 가진 두 여인을 사랑했다. 한 여인과는 이별을 경험하고, 또 한 여인과는 고별하였다. 한 여인은 분홍색 솜사탕 같은 여인이었고, 또 한 여인은 분홍색 솜사탕처럼 보이는 유리섬유 같은 여인이었다. 예쁘다고 함부로 만지면 손을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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